롯크, 통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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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복하기 위해 정부가 생겨났다

존 로크 『통치론』

새로운 체제를 떠받치는 사상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적이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동의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의 정치적 권력에 예속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삶을 살았을까?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과 같은 삶을 영위했다고 착각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인정되고 국민에 의해 권력이 구성되는 시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자각과 그 자각을 뒷받침하는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상이 로크의 국민 주권 사상이다.

로크(J. Locke, 1632~1704)는 영국의 서미싯 주 링턴에서 태어났다. 로크는 11살 때 청교도혁명(1642년)을, 57살 때 명예혁명(1688년)을 경험하였다. 청교도혁명으로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수립되었지만, 공화정이 오래가지 못하고 국왕 중심 체제로 회귀하였다. 35살 때 외과병원을 개원하고 있던 로크는 새프츠베리를 만나면서 정치에 뛰어들었다. 새프츠베리는 찰스 2세에 맞서고 있던 거물 정치인이었다. 새프츠베리가 찰스 2세와 투쟁에서 패배하자, 로크는 네덜란드로 망명하였다. 명예혁명이 일어나 사면을 받은 후에야 로크는 귀국할 수 있었다.

명예혁명으로 절대왕정은 다시 무너졌고 국민주권과 제한군주제가 성립하였다. 그러나 청교도혁명에서 보듯 혁명이 세상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체제가 굳건하지 않으면 언제든 혁명은 뒤집어질 수 있다. 새로운 사상이 있어야 새로운 체제를 굳건히 할 수 있다. 『통치론』은 새로운 체제를 떠받치는 새로운 사상이었다. 『통치론』은 명예혁명 다음 해인 1689년에 출판되었지만, 로크는 이미 1681년경에 이 책을 완성해놓고 있었다. 당시 로크는 새프츠베리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은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 위한 계획으로 집필되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주지 않았다

로크가 『통치론』을 쓸 당시 의회파와 왕당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왕당파는 ‘왕은 신으로부터 권력을 받았다’는 이른바 ‘왕권신수설’을 내세워 찰스 2세의 통치권을 강화하려 하였다. 당시 영국에서 왕당파의 대표적인 이론가는 로버트 필머였다. 필머는 국왕의 권리가 최초의 인간인 아담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로크는 필머의 이론을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특히 신이 아담에게 나라를 다스릴 권리를 준 적이 없다고 하며 필머 이론의 뿌리를 비판하였다.

첫째, 아담에게 자식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위나 이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지배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와 같은 권위나 지배권은 아버지라는 신분으로부터 생겨나는 권리도 아니고, 신이 아담에게 그러한 권위나 지배권을 수여되었다는 흔적도 없다. 둘째, 아담이 그와 같은 권위나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해도 아담의 상속자들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다. 셋째, 아담의 상속자들이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해도 누가 정당한 상속자인지를 결정하는 그 어떠한 자연법도 명문의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배권을 확실히 결정할 수 없다. 넷째, 만약 그런 것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아담의 자손들 중 누가 그 직계의 자손인지 분명치 않다.

– 로크, 『통치론』

신은 아담에게 나라를 다스릴 지배권을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국왕은 아담으로부터 지배권을 물려받을 수 없다. 따라서 국왕의 권력은 신이 준 것이 아니다.

자연 상태에서 국가로

그러면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로크는 정치권력의 기원을 자연 상태에서 찾았다. 자연 상태란 국가가 생기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로크는 자연 상태를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로크의 주장은 자연 상태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일 일어난다고 본 홉스와 주장과 달라진다. 홉스의 주장과 달리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연법의 범위 안에서 자기의 행동을 규율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연 상태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고도 하였다.

자연 상태는 평등한 상태이다. 자연 상태에서 일체의 권력과 지배권은 상호적인 것이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지 않는다. 인간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똑같은 종류와 등급의 피조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아무런 차별도 없이 똑같이 자연의 혜택을 누리고 똑같은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

– 로크, 『통치론』

그런데 화폐가 생기면서 사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화폐는 썩지 않고 얼마든지 축적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는 근면함의 차이가 있어서 재산의 많고 적은 정도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소유물에 차이가 생기면 다른 사람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자도 생겨나게 된다. 그런데 자연 상태에서는 그런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공통의 권력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이 생기게 된다.

로크는 자연 상태의 결함을 세 가지로 말한다. 첫째, 자연 상태에는 옳고 그른 것의 표준이 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판결할 공통의 척도로서 일반의 동의에 의해 승인된 법률이 없다. 둘째, 자연 상태에는 확립된 법률에 따라서 온갖 분쟁을 해결해야 할 권위를 가진 공평한 재판관이 없다. 셋째, 자연 상태에는 판결이 정당했을 때, 그 판결을 지지하고 집행해야 할 권력이 없다. 이와 같이 자연 상태에는 법률, 재판관, 권력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려 해도 매우 불확실하다. 끊임없이 타인으로부터 침해를 받을 위험 앞에 놓이기 쉽다. 이러한 자연 상태의 불편,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의 정치사회가 성립한다. 생명과 자유와 자산이라는 자연권을 안전하게 누리기 위해, 서로 간에 일어나는 분쟁을 해결하고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법률과 재판소에 호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개인적 처벌권을 포기하고 정부에 일임하게 된다.

정치권력은 자연 상태에서 모든 개인의 동의에 의해 성립한다. 그래서 로크는 정치권력을 공공의 복지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권력은 재산을 규제하여 보유하기 위해 형벌을 가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 수 있는 권리이다. 또한 법률을 시행하기 위해,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방어하기 위해 사회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또한 이 모든 권리를 오로지 공공의 복지만을 위해 행사하게 하는 권리이다.

– 로크, 『통치론』

국민주권의 탄생

정치권력의 성립에 관한 로크의 설명은 국민 주권론의 원형을 이룬다. 로크는 정치권력이 생명과 자유와 자산의 보호를 위해 개인들의 자발적 동의로 성립하였다고 보았다. 정치권력의 목적은 국민들의 생명과 자유와 자산의 보호이다. 이 목적을 이루려면 통치기관이 있어야 한다. 로크는 주요한 통치 기관으로 입법권, 행정권, 연합권(외교권)을 제시하였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입법권이 최고의 권력을 가진다. 국민들이 생명과 자유와 소유의 안전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은 법이기 때문이다. 로크는 행정권과 연합권을 군주의 권한으로 귀속시키지만 행정권과 연합권은 입법권에 종속된다고 보았다. 입법권을 가진 기관이 군주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안심할 수 없는 게 권력이다. 권력은 개인을 통제하고 침해하려는 속성이 있다. 이때 국민의 저항, 나아가 혁명이 필요하다. 로크는 저항권과 혁명권을 모두 인정한다. 그러나 저항권과 혁명권의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혁명은 통치가 해체되기 전까지 일어나서는 안 된다. 통치가 해체되는 경우란 군주가 의회를 방해하거나 선거법을 바꾸거나 국민을 외국의 지배하에 두었을 경우이다.

로크의 이러한 사상은 『통치론』의 말미에 요약되어 있다.

각 개인이 사회에 가입할 때 그 사회에 위임한 권력은 그 사회가 존속되는 한 개개인의 손으로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권력은 언제까지나 그 사회의 수중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 사회도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회가 그 입법권을 특정 기구에 위임했을 경우 입법권은 국민의 수중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국민은 자기의 정치적 권력을 입법부에 위임했으므로 다시 되찾을 수 없다. 그러나 국민이 입법부의 존속 기간에 제한을 둔 경우, 또는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실정으로 말미암아 권력이 상실된 경우, 권력의 상실이나 정해진 기간의 종료에 따라 권력은 다시 사회의 수중으로 돌아가게 된다.

– 로크, 『통치론』

로크의 사상은 민주주의의 모태가 되었다. 로크의 사상은 영국의 정치체제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음을 천명하였다. 또한 창조주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권리를 인간에게 부여하였고,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부의 권력은 국민의 동의로부터 온다고도 하였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로크 사상의 축소판이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로크의 사상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라났다. 대한민국은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 의거하지 않고 로크의 『통치론』에 토대한 나라이다.

  1.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키클롭스의 동굴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는 폴리페모스라는 키클롭스가 등장한다. 오뒷세우스는 부하 12명과 함께 시칠리아 해변에서 폴리페모스에게 붙잡힌다. 폴리페모스는 오뒷세우스와 부하들을 동굴에 가두고 매일 두 명씩 잡아먹었다. 루소(J. J. Rousseau, 1712~1778)는 『사회계약론』에서 노예의 삶을 키클롭스의 동굴에 갇힌 그리스인으로 묘사한다.

어떤 인간도 자신과 같은 인간을 지배할 권위는 없다. 힘은 어떤 권리도 만들지 못한다. 인간 사이에 인정되는 정당한 권위는 오직 계약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로티우스는 한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팔아 스스로 어떤 주인의 노예가 될 수 있다면 국민 전체도 자신의 자유를 팔아 국왕의 신하가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 어떤 국민은 전제군주가 사회적 안정을 보장해준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제군주의 야심과 탐욕이 불러온 고통이 국민들 사이의 다툼으로 인한 고통보다 크다면 얻는 것이 무엇인가? 키클롭스의 동굴에 갇힌 그리스인들도 그 안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었지만 실상은 자기가 잡아먹힐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루소, 『사회계약론』

루소가 볼 때,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곧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루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루소를 낳은 지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14살 때 아버지가 재혼을 하여 아버지와도 이별을 하였다. 루소는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를 떠돌아다니다 악보 필경사 일을 하게 되면서 파리에 정착하였다. 루소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악보 필경사, 인쇄소 필경사 등을 하며 매우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오로지 독학으로 『인간불평등기원론』, 『사회계약론』, 『에밀』과 같은 문제작을 발표하였다. 정치철학서인 『사회계약론』은 1761년에 출판되었다. 『사회계약론』은 루소가 그린 원대한 구상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 책만으로도 세상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숲 속에서 강도를 만난다면

루소는 『인간불평등기원론』을 발표한 이후 정치제도에 관한 포괄적인 글을 구상했다. 『인간불평등 기원론』은 사유재산에 대한 비판서이다. 루소는 홉스나 로크와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를 설정한다. 그런데 루소의 주장은 홉스의 주장과 다르다. 홉스가 자연 상태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일어난다고 한 반면에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했다고 말한다. 또한 루소는 로크가 주장한 것보다 더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리고 루소는 인간의 본성이 원래 착하다고도 하였다. 그런데 자연 상태에서 사회 상태로 이행함으로써 정치사회적으로 불평등이 생겨났다. 불평등이 생겨난 이유는 사유재산 때문이다.

루소는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정치제도에 관한 포괄적인 글을 쓰려고 했다. 인간의 선량한 본성과 자연 상태에서의 자유와 평등을 토대로 올바른 정치질서를 정립할 수 있다면 정치적 불평등은 해소될 것이다. 이런 구상 전체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어떻게 올바른 정치질서를 세울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루소가 생존하던 시대의 프랑스는 ‘짐이 곧 국가’라는 구호로 상징되던 절대왕정 말기였다. 국민 전체의 5%도 안 되는 지배층이 각종 특권을 독점하면서 온갖 낭비와 부패를 일삼았다. 이 때문에 국가 재정은 파탄이 났고 민중에 대한 세금 착취가 심했다.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시민계급과 농민들은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한 채 오직 특권계급의 사치와 낭비의 비용을 부담하는 신세였다.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농민의 처지가 가장 비참했다. 국가와 영주, 그리고 교회에 여러 종류의 세금을 내야 했고, 영주를 위해 각종 부역을 해야 했다. 심지어 여름밤이면 영주의 편안한 수면을 위해 밤새도록 개구리를 쫓아야만 했다.

루소는 권력의 정당성을 문제 삼았다.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절대왕정과의 싸움이었다.

권력에 복종하라! 이 말이 만일 힘에 대한 굴복만을 의미한다면 논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두려움에 이를 거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모든 권력이 신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모든 사회의 병이 시작된다. 병을 고치기 위해 우리가 의사를 부르면 안 되는가? 숲 속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 강도의 폭력 때문에 지갑을 빼앗길 상황에서 지갑을 감출 수 있음에도 양심적으로 지갑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강도의 권총은 하나의 힘이다. 힘이 권리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오직 정당성을 갖춘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

– 루소, 『사회계약론』

인간은 오직 정당한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 정당성 없이 힘만 휘두르는 절대왕정은 숲 속에서 만난 강도와 같다. 강도가 폭력을 쓴다고 순순히 따라야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강도에게 복종할 의무는 없다.

그러면 어떤 권력이 정당한 권력인가?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계약을 맺는다. 자연 상태가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다른 세력의 위협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으로 생겨난 것이 국가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사람들의 신체와 자유를 보호함으로써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을 안전하게 지켜주어야 한다.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는 국가가 정당한 권력이다.

프랑스 대혁명을 이끈 사상

루소는 정당한 국가 권력과 관련하여 ‘일반의지’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일반의지란 사람들이 맺은 계약에 의해 성립된 의지를 말한다. 사람들은 계약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일반의지에 위임한다. 국가 권력은 계약에 따라 이 일반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의지는 결코 나누어질 수 없다. 일반의지가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일반의지를 실현하는 국가 권력 역시 나누어질 수 없다. 그래서 루소의 주장은 3권 분립을 주장하는 로크나 몽테스키외의 주장과 다르다. 루소는 국가 권력을 나누려는 것을 여러 개의 몸체로 인간을 조립하려는 것과 같다고 했다.

루소가 3권 분립에 반대한 이유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국민의 뜻과 의지가 나누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국민 주권의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아서 나온 것이다. 루소는 국민 주권을 누군가가 대표하거나 대신할 수도 없다고 보았다. 루소가 영국의 정치를 평가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당시 영국은 선거인이 대표를 뽑고, 거기서 뽑힌 사람들이 의회와 내각을 구성해서 통치했다.

영국의 민중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영국의 민중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영국의 민중은 다시 노예가 되어 버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 루소, 『사회계약론』

오늘날 우리도 많이 듣는 이야기이다. 루소는 민중이 직접 다스리는 일종의 ‘직접 민주주의’를 염두에 두었는지 모른다. 직접 민주주의를 관철하려면 국가의 규모가 커서는 안 된다. 소규모의 도시국가라야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 가능하다. 루소는 스위스 출신이다. 그래서 스위스의 도시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치(自治)를 자신의 생각을 실현할 모델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혹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루소는 일반의지의 실현을 위해 일정한 경제적 평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반의지가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경제적 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국민은 다른 사람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해서도 안 되고, 자신을 팔아야 할 정도로 가난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루소가 죽고 11년 뒤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 루소의 사상은 시민계급과 지식층을 각성케 하였다. 인간의 처지에 관한 다음의 말은 그 자체가 혁명의 선동이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곳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다. 자기가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사실은 그들보다도 훨씬 더 심한 노예 상태에 놓여 있다.

– 루소, 『사회계약론』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심한 노예상태에 처해있다. 이 한 마디는 모든 양심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루소가 죽은 후 루소의 사상은 더 널리 퍼졌나가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이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로베스피에르는 루소를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프랑스 대혁명의 깃발에는 루소의 사상이 그래도 적혀 있었다.

제1조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유로우며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제3조 “모든 주권의 원리는 근본적으로 인민에게 있다.”

– 1789년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선포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에서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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