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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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야할 곳에 대한 영원한 손짓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섬

그 섬은 중앙지대가 가장 넓으며 그 폭은 약 200마일이 됩니다. 섬 전체는 양쪽 끝을 제외하고는 대개 폭이 비슷하며 양쪽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고 굴곡이 집니다. 원둘레가 500마일이 되는 원을 그려놓을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섬은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끝은 약 11마일 넓이의 해협에 의해 갈라져 있습니다. 이 섬에는 같은 언어와 법률 제도를 가진 54개의 도시가 있습니다. 그들은 토지를 경작해야 할 땅으로 생각하지 소유하는 재산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어(Thomas More, 1477~1535)는 『유토피아』의 제2부를 이렇게 시작했다. 유토피아란 말은 원래 그리스어의 ‘유(U, 없다)’와 ‘토포스(Topos, 장소)’의 복합어로서 ‘어디에도 없는 땅’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모어의 『유토피아』가 발표된 이후 유토피아는 ‘이상향(理想鄕)’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섬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곳은 기름진 땅과 아름다운 경관이 있는 곳이 아니라, 그곳은 누구나 살고 싶은 사회적 환경과 제도가 펼쳐지는 곳이다.

그러면 모어는 왜 이상향을 그렸을까? 사실 모어는 이상향을 그릴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았다. 모어는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후 21살 때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쳐 53살에 대법관이 되었다. 모어가 맡은 대법관은 요즘 말로 하면 국회의장과 대법원장과 국무총리를 다 합한 최고 권력이었다. 당시 영국에서 성직자가 아닌 사람으로 이 직위에 오른 사람은 모어가 처음이었다.

모어가 『유토피아』를 쓴 것은 1515년이었다. 그때 모어는 영국의 양털 수출을 위해 플랑드르에 가서 협상 중이었다. 『유토피아』의 원제목은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한, 그리고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섬에 대한 유익하고 즐거운 저서’이다.

모어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를 쓴 이유는 현실 때문이었다. 모어가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토지를 경작해야 할 땅으로 생각하지 소유하는 재산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한 데에 현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당시 영국의 영주와 대지주는 자신들의 사유지를 넓히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개방지, 공동방목지, 황무지 등 어떤 토지든 가리지 않고 토지의 경계에 벽과 울타리를 쌓으며 사유지를 넓혔다. 농민들은 토지에서 쫓겨났다. 쫓겨난 농민들은 걸식하며 유랑하는 빈민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사태가 일어난 이유는 양(羊)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어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였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모어는 『유토피아』 1부에서 당시 농민들이 겪던 처참한 삶의 현장을 고발하였다. 당시 영국과 플랑드르에서 모직공업이 발전하면서 양털의 값이 폭등하였다. 영국의 영주와 대지주들은 밀밭을 초지로 바꾸어 양떼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유지에 울타리를 치고 둘러막았다. 그래서 그런 현상을 울타리치기 운동, 즉 인클로저 운동이라 하였다. 영주와 대지주들이 울타리를 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농민들이 토지에서 쫓겨났다. 농민들은 기만당하여 자신의 토지를 포기하거나 협박과 학대에 못 이겨 땅을 포기하였다.

빈털터리로 쫓겨난 농민들은 다른 곳에서 살 자리를 마련할 수 없어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러나 떠돌이 생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 붙잡히면 태형을 당했다. 달구지 뒤에 묶여 피가 나도록 매를 맞아야 했다. 두 번째로 잡히면 귀가 잘렸다. 세 번째 잡히면 공동체의 적으로 간주되어 사형을 당했다. 모어가 살았을 당시 떠돌이 생활을 하다 붙잡혀 사형당한 사람이 7만 2000명이나 되었다. 먹고 살 길이 없는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였다. 도둑질하다 잡히면 사형을 당했다. 매년 300명 이상이 절도죄로 사형을 당했다.

모어는 탄식했다. 가혹한 형벌을 가한다고 해도 효과가 없다. 선량한 농민들이 떠돌이 생활자가 되고 절도범이 된 이유는 영주와 대지주들의 탐욕 때문이다. 농민들의 비참한 삶을 개선할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농민들은 계속 떠돌 수밖에 없고, 절도범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가혹한 처벌을 하였음에도 떠돌이 생활자와 절도범은 더욱 늘어났다.

그래서 모어는 분노하며 외쳤다.

이런 병폐를 없애십시오. 농장과 농촌을 파괴하는 자들로 하여금 농장과 농촌을 복구하게 하십시오. 아니면 농장과 농촌을 파괴하는 자들에게 땅을 넘기지 못하게 하십시오. 부자들이 모든 것을 매점하여 독점하지 못하도록 규제 하십시오.

–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그러나 현실의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기득권 세력의 힘은 공고하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현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모어는 새로운 세계를 그려내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모어는 현실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유토피아로 여행을 시작하였다.

6시간만 일하면 되는 나라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는 영국의 절반 크기의 섬이다. 유토피아 섬의 인구는 6000세대이다.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할까? 유토피아에서는 덕(德)이 존중되기 때문에 몇 개 안 되는 법률로 만사가 순조롭게 운영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공동소유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핍의 두려움이 없다.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소유이기 때문에 공동창고가 가득 차 있는 한, 결핍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나 공정한 분배를 받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나 거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으나, 누구를 막론하고 부자입니다. 이러한 나라에서 쾌활함, 마음의 평화, 불안으로부터의 해방보다 더 큰 재산이 무엇일까요? 식량공급을 걱정하거나, 아내의 애처로운 요구를 듣고 마음이 상하거나, 딸의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유토피아 사람들은 자신과 아내, 자식, 손자, 증손자, 고손자. 자손이 번성한 집안에서 바라는 대로, 대가 이어지더라도 항상 먹을 것이 충분하고, 언제나 행복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일을 못 하게 되더라도 아직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장래가 보장됩니다.

–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유토피아에서 추구하는 것은 단지 생활의 안정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계발하는 활동을 장려한다. 경제활동은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족하다. 유토피아에서는 노동시간을 가능한 줄여 자유시간을 늘리고, 자유시간에 덕에 대해서 그리고 행복에 대해서 토론을 하라고 한다.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오전에 3시간, 오후에 3시간 총 하루 6시간 노동을 한다. 그 나머지 시간은 취미에 따라 자유롭게 보낸다. 하루 6시간 노동이면 충분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토피아는 농업을 근간으로 한다. 남녀에 관계없이 누구나 농사를 배워야 한다. 농사는 어린이 교육의 필수과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토피아에는 일을 하지 않는 자, 게으른 자가 없다. 이렇듯 사회 성원 모두가 노동에 참여하기 때문에 하루 6시간 노동으로 충분하다.

여섯 시간만 노동하면 필수품이나 안락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는데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을 보면 첫째로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자가 거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또 여자들이 바삐 일하면 남자들이 놀고먹습니다. 성직자들이나 소위 수도사의 무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엄청난 게으름쟁이들입니다. 게다가 부자들, 귀족이라 알려진 지주들, 빈둥거리기만 하고 아무데도 쓸모없는 시종들, 마지막으로 구실을 만들어 내어 놀고먹는 흉측스런 거지들, 이런 걸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사람의 수가 의외로 적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소박한 생활을 한다. 유토피아에서 금(金)은 배척된다. 금은 변기를 만드는 데 사용될 뿐이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단순히 몇 개의 제도에 대해서만 논하지 않는다. 생활 전반에 걸친 문제를 거론한다. 빈부의 문제에서 의료와 육아의 문제에까지 거론하는 문제가 다양하다. 의료문제를 보자. 유토피아에서 환자는 누구보다 먼저 배려를 받는다. 환자들은 교외에 있는 공공병원에서 생활하는데, 그 병원들은 조그마한 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넓다.

이런 유토피아의 세계는 사회에서 억압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염원의 세계이다. 유토피아의 세계는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이어져 내려온 인류의 오랜 염원이기도 하다. 비록 유토피아가 실현 가능성이 없음을 전제하지만 그것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 시대에 불가능한 것이 영원히 불가능한 것일 수 없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는 그 당시에는 불가능했지만, 유토피아를 향한 인류의 염원은 계속되고 있다. 그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굴러가고 있다. 하루 6시간만 일하고 자유롭게 살자고 제안한 모어의 유토피아는 결코 인간이 ‘갈 수 없는 곳’이 아니었다. 지금 네덜란드는 주 32시간 일하는 나라이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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