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에 관심을 갖자
하버마스 『인식과 관심』
독일의 철학전통과 갈라서다
표현주의 예술로, 영문학의 세계로, 동시대의 사르트르와 프랑스 좌파 기독교 계열의 철학으로, 프로이트로, 마르크스로, 그리고 독일인들의 재교육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제자들을 두었던 듀이의 실용주의로 들어가는 문들이 우리에게 갑자기 열렸다. 또한 현대 영화들이 우리에게 흥미로운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모더니즘의 해방정신과 혁명정신이 몬드리안의 구성주의 회화, 바우하우스 건축술의 기하학적 형상 그리고 순수한 산업디자인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서방세계로의 문화적 개방이 서방세계로의 정치적 개방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나에게는 자유주의보다 민주주의가 매력적인 말이었다. 나는 모더니즘의 개척자적 정신과 해방의 전망이 결합한 사회계약론의 정치적 구성물들이 대중적인 형태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았다.
하버마스(J. Habermas, 1929~ )는 「공공영역과 정치적 공론장」에서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의 지적, 문화적, 정치적 상황에 대해 썼다. 패전으로 나라는 초토화되고 전범들에 대한 단죄가 진행되는 어수선한 정세에 다양한 사조의 지적, 문화적, 정치적 경향들이 독일에 몰려들어왔다. 그 모든 것들은 새로운 독일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연결되었다.
그때 하버마스는 10대 후반의 청소년이었다. 불과 몇 년 전 15살의 소년 하버마스는 히틀러 찬양 소년단인 히틀러유겐트에 들어가 6개월가량 복무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열리자, 하버마스는 자신이 한 행동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청소년 하버마스는 깊은 성찰과 자기반성을 하면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25살 때 하버마스는 또 한 번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그해에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입문』이 출판되었다. 하이데거는 히틀러 정권에 참여하여 비판을 받고, 절반쯤 은퇴한 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철학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하이데거의 책은 1935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한 강의 내용을 모아놓은 것이었는데, 하버마스는 그 책에서 히틀러에 대한 옹호와 나치즘의 부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하버마스는 하이데거가 아무런 성찰과 반성도 없이 그런 책을 출판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또한 인정할 수도 없었다.
하버마스는 신문지상에 글을 발표하여 하이데거의 정치의식에 대해 준엄한 비판을 하였다. 그와 동시에 하이데거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의 철학적 전통과 갈라섰다. 하버마스는 독일의 철학적 전통을 계승했다고 하는 자들이 대중을 경멸하고 절대자, 비범한 인물을 찬양하면서, 대화, 평등, 자율적 결정을 거부하고 침묵과 명령 그리고 복종 등을 강요한다고 보았다. 하버마스는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을 계기로 철학보다는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 치중하여 다량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하였다. 『인식과 관심』은 하버마스가 드물게 쓴 철학저서로 1968년에 출판되었다.
생활세계 내의 의사소통
하버마스의 일차적 관심사는 부르주아 사회의 변화였다. 하버마스는 부르주아 사회의 변화를 세밀하게 추적하면서, 부르주아 사회를 변화시켜온 원동력이 무엇인지 탐구했다. 하버마스는 탐구의 결과를 ‘공론장 이론’으로 체계화하였다. 공론장이란 무엇인가? 하버마스는 국가적 사안을 토론하는 공간을 공론장이라고 불렀다. 이 공간에서 토론을 통해 여론이 형성되고, 여론을 통해 부당한 공권력에 대해 도전을 하였다. 하버마스는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카페, 살롱 같은 모임공간이 늘어났고, 이 공간에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면서 공론장이 생겼다고 보았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정치적 기능을 하는 공론장이 18세기 영국에서 처음 생겨났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기능하는 공론장은 18세기로 넘어가는 문턱에 영국에서 처음으로 생겨났다. 국가 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들이 공론장에서 토론하는 공중(公衆)에 호소하여 자신들의 요구를 정당화하였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20세기 후반에 들어 부르주아 사회의 공론장이 붕괴되었다고 했다.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고 공론장의 여론에 귀 기울이던 정당들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공론장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중매체의 발전이 공론장을 확대한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도 하버마스는 비판적이다. “대중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는 표면적으로만 공론장이다. 대중매체가 그 소비자에게 보증하는 사적 영역의 고결함도 환상이다. 18세기 부르주아 독서 대중은 친밀하게 서신왕래를 했고, 여기에서 생겨난 심리소설과 단편소설을 읽음으로써 문학능력을 갖추는 것과 동시에 주체성을 길렀다……오늘날 대중매체는 시민들로부터 문학적 외피를 벗겨버렸다.”
공론장이 붕괴했다면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두운 것인가? 하버마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하버마스가 대안으로 제시한 건 ‘생활세계 내의 의사소통’이다. 삶의 현장에서 토론을 하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생활세계 내의 의사소통에 기초한 사회운동에 주목한다. 『의사소통행위이론2』에서 하버마스는 이렇게 썼다. “저항운동에는 전통적인 사회의 소유 및 서열관계를 방어하려는 운동과 생활세계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형식의 협동과 공동생활을 시험하는 운동이 있다……후자의 예로는 생태와 평화에서 시작하여 성장에 대한 비판으로 발전한 청년운동과 대안운동 같은 것들이 있다.” 하버마스가 주목하는 운동을 ‘신사회운동’이라 부른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과 생활세계 내의 의사소통 이론은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식은 관심에서 생긴다
『인식과 관심』은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의 철학적 토대이다. 하버마스는 이 책에서 “인식과 관심의 연관성”에 대해 다루면서, 새로운 인식론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하버마스는 칸트에 의해 정립된 인식론이 헤겔과 마르크스에 의해 붕괴되었다고 보았다. “헤겔은 칸트에 대립하여 인식의 현상학적 자기반성을 철저한 인식 비판의 필연성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헤겔은 동일 철학적인 전제 때문에 편견에 사로잡혀서 일관성을 가지고 인식 비판을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헤겔적인 자기반성의 과정을 받아들여 역사적 유물론을 정립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헤겔의 계획을 오해했으며, 결국 인식론을 붕괴시키고 말았다.”
인식론이 붕괴한 후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이 실증주의라고 하버마스는 보았다. 실증주의는 자연과학의 방법을 인문학 등 모든 학문에 적용하자는 주장이다. 하버마스는 인문학에 자연과학적 방법을 적용할 수 없다며 실증주의에 반대하였다. 하버마스는 『사회과학의 논리』에서 사회적 규범은 자연의 법칙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였다. “사회적 규범의 의미는 자연의 법칙에 의존하지 않으며, 자연의 법칙 또한 규범적 의미에 의존하지 않는다. 가치판단의 규범적 내용은 사실 확정의 기술적 내용에서 끄집어낼 수 없으며, 기술적 내용 또한 규범적 내용에서 끄집어낼 수 없다. 존재의 영역과 당위의 영역은 엄격히 분리되어 있다. 기술적 언어의 명제는 규범적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
하버마스는 새로운 인식론을 정립할 필요에서 ‘관심’에 대해 다루었다. 하버마스는 인간의 모든 지식이 일상적 삶에서 발생하는 관심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노동을 하면서 ‘기술(技術)적 관심’을 가진다. 기술적 관심을 통해 인간은 자연을 인간의 삶에 편리하도록 통제하려 한다. 실증적 경험과학이 이 영역에 속한다. 다음으로 인간은 일상적 삶 속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하는 ‘실용적 관심’을 가진다. 실용적 관심은 언어를 통해 나타난다. 역사학, 해석철학 등이 이 영역에 속한다. 하버마스는 기술적 관심과 실용적 관심을 구분함으로써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구분한다. 이 구분을 통해 하버마스는 다시 한 번 실증주의가 잘못된 주장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하버마스의 관심은 ‘기술(技術)적 관심’과 ‘실용적 관심’이 아니다. 하버마스는 ‘해방적 관심’에 관심을 기울였다. 해방적 관심은 모든 형태의 지배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인간을 꿈꾸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자신의 철학이 해방적 관심과 결부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버마스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이론을 비교하였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인간이 물질과 허위의식에 억압되어 있으므로 노동과 반성적 사유를 통해 물질과 허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하버마스가 볼 때 노동을 통해 물질적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은 해방적 관심이 아니라 기술적 관심이다. 반성적 사유를 통해 허위의식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은 해방적 관심이지만, 반성적 사유의 측면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이 더 유용하다고 하버마스는 보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무의식적 억압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무의식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낼 수 있는 의자와 환자 사이의 의사소통이라고 했다. 하버마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주목하였다. 하버마스는 사회이론가가 의사의 역할을 담당하여 인간이 사회에서 자신의 고유한 위치를 구성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모든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하버마스는 『인식과 관심』에서 비판적 사유의 힘과 의사소통을 강조하였다. 비판적 사유를 통한 자기반성 그리고 의사소통을 통한 해방적 관심의 환기는 하버마스가 부르주아 사회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인간의 일상적 삶을 좌우하는 것은 사회이다. 사회가 억압적이면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일상적 삶을 살지 못하고 소외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버마스는 부르주아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그 사회의 변화를 추적하였다. 인간 소외의 극복, 자유와 해방의 실현은 사회를 진보적 방향으로 변화시켜 감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