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머, 진리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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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질문하라, 대화하라, 토론하라!

가다머 『진리와 방법』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없다

질문에는 긍정적 판단과 부정적 판단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런 사실이 질문과 지식의 근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기반이다. 왜냐하면 어떤 것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못된 판단을 배제하는 것이 지식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지식이 결정된다. 질문을 질문답게 한다는 것은 어떤 가능성을 지지하면서 다른 가능성에 반대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일이다……지식이란 항상 그 반대편도 생각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은 가능성을 가능성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입견보다 우월하다. 지식이란 철저히 변증법적인 것이다. 질문을 하는 사람만이 지식을 가질 수 있다.

가다머(H. Gadamer, 1900~2002)는 질문을 통해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질문을 통한 진리의 획득, 이것이 가다머 철학의 출발이자 가다머 철학의 결론이다. 가다머의 철학을 흔히 ‘해석학’이라 한다. 그리고 가다머를 가리켜 20세기 최고의 철학적 해석학자라고 부른다. 해석학이란 말 그대로 무엇에 대해 해석을 하는 학문이다. 가다머는 해석의 대상을 고전에 두었다. 가다머는 고전을 읽고 해석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세워나갔다. 고전 해석의 출발이 질문이다. 고전을 읽으며 스스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진리를 알게 된다는 게 가다머 철학의 핵심이다.

가다머는 하이데거의 제자로도 유명하다. 1922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지도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이데거는 개개인들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실존적 고민을 통해 본래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가다머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로 확장하였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바탕으로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얻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가다머는 12년 간 방대한 양의 고전을 읽으며 질문을 하여 얻은 답을 정리하여 1960년에 『진리와 방법』을 썼다. 제목만 보면, 가다머가 이 책에서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쓴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가다머는 이 책에서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철학을 비판하였다.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질문과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선입견은 정당하다

선입견이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보통 선입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보든 사물을 대하든 선입견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고는 실증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실증주의란 말 그대로 실제의 증거를 가지고 사물을 보자는 주장이다. 그 어떠한 주관적 판단도 배제한 채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판단하고 파악해야 사물의 실체, 즉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증주의는 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받아 생겨난 사고의 방법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때문에 과학은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므로 자연과학의 방법을 모든 학문에 적용하여 과학적으로 진리를 추구하자는 과학주의가 생겨났다. 그 과학주의에 영향을 받아 나타난 학문의 한 경향이 실증주의이다. 실증주의는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까지도 지배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일체의 주관을 배제한 학문이 가능할까? 가다머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주관성의 대명사와 같은 ‘선입견’에 대한 재검토를 하였다. 우리는 그 어떠한 선입견 없이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을까? 가다머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가다머는 선입견의 긍정적 역할에 주목하였다. 가다머는 선입견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가 ‘선입견에 대한 선입견’에 불과하다고 보었다. 가다머에 따르면, 선입견은 이미 알고 있는 것, 즉 ‘선(先) 이해’이다. 우리가 삼각연필을 손에 들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연필이라는 것을 안다. 누군가에게 들었든 책에서 보았든 이전에 연필을 본 경험이 있든 우리는 연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런데 육각연필만 있는지 알았는데 삼각연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래서 연필에 대한 지식이 확장된다. 가다머는 이미 알고 있는 것,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지식의 확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렇듯 가다머는 선입견을 정당한 것이라 보았다. 그리고 선입견의 정당성을 권위와 전통에서 찾았다. 가다머가 볼 때 권위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문가의 주장을 귀담아 듣는다. 전문가의 주장을 귀담아 듣는 이유는 전문가가 우리보다 나은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다머는 전문가의 주장 같은 것을 권위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권위는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다. 권위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전문가가 우리 자신보다 나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권위의 대표적인 형식이 전통이다. 전통은 낡은 것,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다. 비록 전통이 과거의 것이지만, 우리보다 나은 게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다머는 말했다, 선입견은 권위와 전통을 받아들임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면에서 가다머는 근대철학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가다머는 선입견과 권위 그리고 전통에 대한 긍정을 통해 인간이 시대적, 상황적 존재임을 말하고자 하였다. 하이데거식 용어로 말하면 인간은 ‘세계-내-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세계에서 사느냐에 따라 알고 있는 것, 생각하는 것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사람과 아프리카 오지의 원주민은 지식과 생각에서 같을 수 없다. 선입견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문화, 전통, 지식 등에 의해 형성된다. 이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들은 사건을 대하고 사물을 바라본다. <부시맨>이란 영화에 등장하는 빈 콜라병을 보자. 서양인의 관점에서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시고 버린 쓸모없는 빈병에 불과하지만, 그 병을 주운 부시맨들의 관점에서는 그 콜라병이 신의 선물이다. 각기 가진 선입견으로 콜라병을 본 것이다. 이 사례는 선입견이란 각자가 살고 있는 세계의 문화, 전통에 따라 달라짐을 알 수 있게 한다.

대화는 우리가 무지함을 알게 해준다

그러면 모든 선입견이 올바르다는 말인가? 가다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가다머는 선입견을 올바른 선입견과 잘못된 선입견으로 구분하였다. 문제는 그 두 가지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가다머는 ‘시간적 거리 둠’을 통해 구별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잘못된 이해로 인해 생겨난 잘못된 선입견과 정당한 이해를 통해 형성된 올바른 선입견을 구별하는 것은 시간적 거리를 둠으로써 가능하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정당한 이해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시간적 거리가 있는 일에 대해서는 정당한 이해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시간적 거리를 두고 이해하는 일을 가다머는 역사의식이라고 하였다.

가다머가 전통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통은 시간적 거리가 있는 것이므로, 전통에 대해 질문하고 해석함으로써 정당한 이해를 얻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입견을 가지고 사물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선입견이 올바른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를 검증하여야 한다. 고전을 읽으면서 선입견에 따른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선입견이 정당한 것인지를 검증해야 한다.

가다머는 질문 못지않게 대화를 중요시 한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서로의 해석이 다르다. 그러면 누구의 해석이 올바른가? 그것을 아는 길은 대화밖에 없다. 가다머는 이렇게 말한다. “이해란 무엇보다도 의견 일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통상 서로 직접적으로 이해하거나 의견일치에 이를 때까지 의사소통을 계속한다. 따라서 이해에 도달한다는 것은 항상 무엇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대화를 하여 의견일치를 이루면 정당한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한다면 의견일치에 이를 때까지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는 대화를 하는 당사자들이 서로 이해해 가는 과정이다. 대화를 하려면 상대방의 관점을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나와 대화를 하는 상대방의 주장은 내 입장에서는 이질적이거나 대립적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주장에 대하여 그 가치를 인정할 때 대화가 이루어지고 의견일치를 이루어나가게 된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 그의 주장을 간과하지 말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 개방성은 말하는 사람에게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에게나 모두 필요하다.”

대화는 최종적인 결론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니다. 대화는 항상 새롭고 보다 나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가다머는 대화의 모범적인 사례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들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보편적 진리 같은 완전한 결론에 이르게 하려 하지 않았다.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해보도록 유도했다. 사람들이 자신은 무지하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하게 했다. 대화는 탐구의 종결이 아니라 탐구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계속 탐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가다머는 진리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제시했다고 주장하는 실증주의에 반대한다. 소위 과학적 방법을 통해 획득한 객관성이란 그 방법이 전제로 삼고 있는 선입견과 마찬가지로 부적절하다. 진리에 이르는 객관적 방법은 없다. 이미 가진 생각, 즉 선입견을 가지고 질문하고 대화하면서 진리를 알아갈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가다머는 말한다. “질문과 대화와 토론은 그 자체가 이성의 진보를 촉진한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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