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데카르트_ 방법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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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나’의 탄생_ 데카르트 『방법서설』

모든 것을 의심하라

54세의 철학자가 독감에 걸려 죽었다. 그 철학자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하여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났다.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해군 제독을 보내 그 철학자를 초청하였다. 여왕은 제자의 예를 갖추어 그 철학자로부터 진리를 배우고자 했다. 그런데 철학자는 자신의 생활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왕이 가장 한가하고 편안한 시간에 교습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새벽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추운 스웨덴에서 철학자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찬 공기를 마시며 여왕을 가르치러 가야 했다. 결국 그 철학자는 독감과 폐렴에 걸렸고 회복을 하지 못해 1650년 2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호기심을 품은 제자에게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어려운 여행을 단행해야 했던 그 철학자는 바로 데카르트이다.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는 그 호기심 많은 제자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바로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였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회의에서 시작한다. 데카르트는 말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거짓된 것을 참된 것으로 받아 들여왔다. 내각 생각하는 것들은 극히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확고부동한 이론을 세우려 한다면 일생에 한 번은 내가 받아 들여왔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토대를 다시 쌓아야 한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회의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회의를 거듭해도 회의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생각하고 있는 ‘나’였다.

데카르트가 회의를 한 이유는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데카르트는 감각을 불완전한 것으로 보았다.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것은 의심스러운 것, 회의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감각을 초월해 진리에 가까이 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데카르트는 이성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추리는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증명할 필요 없이 완전하지는 않다. 때때로 우리의 상상력이 추리 또는 그 이상으로 생기가 있다 해도 우리 자신이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사유가 모두 다 참일 수는 없다. 우리의 사유가 참이 되는 경우는 꿈꿀 때보다 깨어 있을 때 우리가 가진 관념 속에서 필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이성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성으로 증명하고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한다. 데카르트는 불확실함 속에서 존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마지막에 진리에 도달하라고 데카르트는 말한다. 이런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서술한 책이 『방법서설』이다. 『방법서설』은 1637년에 네덜란드에서 발행된 책으로, 데카르트가 자신의 철학체계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책이다.

 

나는 확실한 방법을 알았다

『방법서설』에는 ‘이성을 옳게 인도하여 여러 학문에서 진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서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 부제에 이 책의 의도가 나타난다. 이성을 사용하여 진리를 찾자는 것이다. 그러면 이성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데카르트는 자신의 이성을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좇아야 할 방법을 발견하는 과정을 밝힌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지적 발전사를 회고담 형식으로 쓰면서, 자신이 관심을 가져 왔던 여러 학문, 예를 들면 수학, 신학 등에 대해 고찰을 했다. 데카르트는 그 고찰을 통해 자신의 지식이 최고봉에까지 올랐다며 이렇게 자부했다.

“나는 거리낌 없이 말하겠다. 나는 여러 가지 고찰을 하며 바른 법칙에 도달케 한 어떤 길로 젊은 시절부터 접어든 것을 매우 행복하게 생각한다. 고찰을 하고 바른 법칙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나는 하나의 방법을 세웠고, 그 방법에 의거하여 점차적으로 내 지식을 증대시켰다. 나의 정신이 평범하고 나의 생애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능히 도달할 수 있는 최고봉까지 그 지식을 끌어올릴 수단을 얻은 듯하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진리에 다가갔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매우 간단하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럼 참과 거짓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어떤 기준과 방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데카르트는 수학과 연역의 방법을 사용한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도달한 방법에 대해 말한다.

“논리학을 구성하는 수많은 원리들 대신에 나는 다음 4개조로 충분하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물론 한 번도 어김없이 그것을 꼭 준수하겠다는 확고부동한 결심을 해야 한다. 첫째, 내가 자명하다고 인정할 수 없는 어떠한 것도 결코 참이라고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속단과 선입관을 피해야 한다. 내가 판단하기에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만큼 분명하고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이외엔 어떠한 것도 더 보태어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내가 검토하려는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검토해야 한다. 셋째, 나의 생각을 질서 있게 이끌어 가야 한다. 그 방법은 가장 알기 쉽고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여 가장 복잡한 인식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차츰 상승해가는 것이다. 또한 본래 그 자체로는 선후가 없는 것들 사이에 마치 어떤 순서가 있는 것처럼 가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경우에도 내가 결코 조그만 누락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전반적인 재검토를 하여야 한다.”

의심할 수 없고 단순하며 편견이 없이 명증한 것이 데카르트에게는 진리였다. 그러나 단순은 복잡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복잡함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데카르트에게는 수학적 사유라는 논리 체계가 있었다. 예를 들면 수학은 숫자로 시작하고 숫자의 연산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의 사칙연산이 기초를 이룬다. 사칙연산을 통해 우리는 방정식을 풀 수 있다. 수에서 사칙연산으로, 사칙연산에서 일차방정식으로, 일차방정식에서 이차방적식으로 문제가 복잡해져도 수학적 사유는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복잡해지는 것일 뿐, 원리가 훼손되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피코에게 보낸 편지에 드러나 있다. 이 편지에는 나무 그림이 하나 있다. 나무의 뿌리는 형이상학이었고 줄기는 수학이며 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는 물리학, 의학, 윤리학, 기계학과 같은 학문이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발견한 이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만족감을 표시한다.

“나는 이 방법에 만족한다. 이 방법으로 모든 것을 완전무결하게 이해하지는 못 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나의 능력을 발휘하여 나의 이성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기토 에르고 숨 (Cogito Ergo Sum)

데카르트는 ‘나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였다. 자신이 신체를 가지지 않았다고 상상할 수 있고, 또한 어떠한 세계도 어떠한 장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상할 수 없다는 것을 데카르트는 발견한다. 그래서 말한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내가 이렇듯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생각하는 나 자신은 필연적으로 ‘그 무엇’이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야말로 매우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어서, 회의하는 사람들이 어떤 터무니없는 가정을 하더라도 그 진리만은 건드릴 수 없음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탐구하는 철학의 제1원리로서 거리낌 없이 그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데카르트는 의심에서 시작한다. 그는 끝없이 의심했다.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끝없는 의심 속에서 자신이 기댈 곳을 찾았다. 만약 기댈 곳을 찾는다면 그곳은 진리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다음 단계에 이르러 ‘의심하는 자신은 누구인가’를 의심한다. 의심은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자신은 누구인가. 내가 생각하지 않는다면 의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나, 의심하는 나는 존재해야 한다. 내가 다른 것을 의심하고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다른 것을 의심하고 거짓이라고 여기는 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부정할 수 없는 존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유하는 자신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말했다.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가지고 있는 지식을 모두 회의함으로써 의심할 수 없는 원리에 도달하는 것을 ‘방법적 회의’라고 한다. 이런 결론을 내린 다음 데카르트는 다시 생각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회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따라서 자신의 존재는 완전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더 완전한 그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무언가 더 완전한 것이 그런 생각을 자신에게 불어넣은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보다 더 완전한 것이 바로 신이다. 이처럼 자명한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다른 것에 대한 증명을 해 나가는 방식을 연역법이라고 한다.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이끌어내어 증명한다. 중세시대, 신은 완전하므로 증명할 필요가 없고, 신으로부터 인간 존재를 증명하려한 시도를 뒤집은 것이다. 데카르트의 신의 증명은 시대가 달라졌음을 보여주었다.

데카르트의 근대성은 『방법서설』의 말미에 나오는 언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우리 스승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쓰지 않고 나의 모국어인 프랑스말로 쓰는 이유는, 아주 순수한 천부의 이성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고서만을 믿는 인사들보다 더 잘 내 의견을 판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지식층들은 중세의 영향으로 자신의 모국어를 경시하고 주로 라틴어로 글을 썼다. 데카르트가 이를 거부한 것은 새로운 시대, 즉 근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였다.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창시자이다.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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