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을 파괴하라_ 베이컨 『신논리학』
헤라클레스의 기둥
그리스 신화를 보면, 12개의 과업을 부여받은 헤라클레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12개의 과업 중 열 번째가 게리온의 소를 생포하는 것이었다. 게리온은 머리가 세 개, 팔 다리가 6개씩 있는 괴물이었다. 게리온의 소를 생포하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항해를 시작한다. 어느 곳에 이르자 바다는 산으로 막혀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산을 부수어 해협을 만든다. 헤라클레스 덕분에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지브롤터 해협이 만들어진다. 지브롤터 해협 동쪽 끝에 있는 두 개의 바위기둥을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 부른다.
1620년 출판된 베이컨(F. Bacon, 1561~1626)의 『신논리학』의 표지에는 헤라클레스의 기둥 사이를 항해하는 한 척의 범선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성경 구절이 쓰여 있다. “많은 사람이 왕래하면 지식이 더하리라.” 헤라클레스의 기둥과 범선, 그리고 성서의 구절이 베이컨의 책 표지에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과 구절은 하나의 상징이다. 인간은 산이 가로막은 곳에서 멈추어 선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그 산을 깨뜨려 길을 만들었다. 그렇다. 기존의 한계를 깨부수어야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베이컨은 그렇게 하고자 했다. 기존의 사상과 이론을 부수고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려 했다.
포스트 아리스토텔레스
베이컨은 이전의 철학자들이 이론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관찰을 소홀히 한 게 가장 큰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신논리학』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연을 사용하고 해석하는 자이므로 자연 질서의 관찰이……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만 행위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 이상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베이컨이 살았던 시대에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지며 기존의 이론에 균열이 생겨났다. 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거한 기존의 이론을 전복시키고 있을 때, 철학에서 베이컨이 등장했다. 『신논리학』의 첫머리에서 한 말에는 이전의 철학에 대한 도전이 담겨 있다.
중세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과학도 철학도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하나의 권위였고, 그 사상에 기반 하지 않으면 논리를 전개하기 힘들었다. 학문과 사상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독재자나 마찬가지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처음으로 반기를 든 철학자가 베이컨은 아니다. 하지만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대한 비판을 통해 포스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를 열었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이 거의 진보하지 않았다고 단언하였다. 그 이유는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 안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모든 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으로 설명하려 하였고, 그래서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학으로 변질되었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학으로 변질된 모든 철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학이 다시 태어나려면 백지상태에서 재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베이컨은 ‘철학의 대혁신’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의 하나로 『신논리학』이 탄생하였다.
우상을 파괴하라
베이컨은 『신논리학』에서 우상의 파괴를 역설하고, 우상을 파괴한 인간이 걸어야 할 길로 귀납법을 제시했다. 새로운 철학에 이르는 첫 단계는 ‘지성의 정화’이다. 지성의 정화란 곧 ‘우상의 파괴‘이다. 베이컨이 말하는 우상은 현실로 착각된 그림, 사물로 착각된 사상을 의미한다. 여기에 오류의 원천이 있으므로 논리학의 첫 과제는 오류의 원천을 찾아 막아 내는 일이다. 베이컨은 네 가지 우상을 들었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 그것이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 자체가 일반적으로 보여 주는 오류이다. 즉, 인간이 가진 주관성,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사물을 잘못 인식하는 오류이다. 인간은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감각을 객관적 진리로 착각한다. “인간의 정신은 울퉁불퉁한 거울과 같아서 자신의 성질을 대상에 부여하여……대상을 왜곡하고 변형시킨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문제를 결정하고 그 다음에 비로소 경험에 호소한다. 경험을 자기 이론에 맞도록 왜곡한 다음, 개선 행렬 속에 끼여 있는 포로처럼 끌고 다닌다.”
또한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준거가 편견에서 비롯됨을 알지 못한다. 어렸을 적 들은 선생님의 한 마디, 책에서 읽은 한 구절, 자신이 믿는 학자의 권위로 인해 인간의 인식은 왜곡된다. 동굴의 우상은 인식을 왜곡케 하는 편견에서 비롯된다. “동굴의 우상은 개개인이 가진 독특한 오류이다. 이것은 본성과 교육, 기분 또는 심신의 조건으로 인해 형성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분석적이어서 어디서나 차이점을 찾아내고, 어떤 사람은 종합적이어서 어디서나 유사성을 찾아낸다. 어떤 사람은 옛것을 무한히 찬양하고, 어떤 사람은 열심히 신기한 것을 받아들인다.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공정한 중용을 유지하여 고대인이 정당하게 확립해 놓은 것을 파괴하지도 않고 현대인의 올바른 혁신을 경멸하지도 않는다.”
시장의 우상은 인간 상호간의 거래와 교제로부터 생기는 오류이다. 여기엔 잘못된 언어의 사용이 큰 몫을 한다. 정확한 의사소통이 아닌 개인의 감각과 수준에 맞춘 언어사용으로 본질에서 벗어나 쓸데없는 논쟁을 일삼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소통을 하지만 언어는 군중의 머리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불완전하고 부적합한 언어로부터 놀라운 정신의 장애가 생긴다.” 극장의 우상은 철학자의 여러 가지 독단과 잘못된 논증의 법칙으로 인해 인간의 정신에 이식된 우상이다. “나의 견해로는 기성의 모든 철학 체계는 비현실적인 극적 수법으로 스스로 만들어 낸 세계를 묘사하는 무대극에 지나지 않는다. 이 철학의 극장에서 상연되는 극에서 여러분은 시인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동일한 것, 즉 상연을 위해 꾸며 낸 이야기가 역사적 실화보다 더 짜임새 있고 우아하며 우리의 소망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베이컨은 철학이 연극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연극을 보고 그것을 믿는 것처럼, 잘못된 철학은 사람을 현혹하고 믿게끔 하여 철학을 타락시킨다.
이러한 우상들을 파괴한 다음 베이컨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사고방식과 오성의 새로운 도구이다. 나침반 사용법을 몰랐다면 아메리카의 광대한 지역은 결코 유럽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적 발명과 발견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기술적 발명과 발견은 결코 거대한 진보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이 정립되지 않으면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이전의 철학이 그런 상태였다고 베이컨은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물질적 지구의 범위가 우리 시대에 널리 확대되었는데도, 지적(知的) 지구는 과거에 발견한 비좁은 한계 내에 갇혀 있다는 것은 분명히 불명예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베이컨이 제시하는 새로운 방법은 무엇일까?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 대신 귀납법을 제시한다. 귀납법의 시작은 일반적인 사항이 아니라 개별적인 자연현상이다. 그 유명한 죽음의 예를 들어보자. 삼단논법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그러나 귀납법에서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로 시작하지 않는다. 개별적인 사람들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죽었다.’ ‘플라톤도 죽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이다. 즉 ‘이들은 모두 사람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사람은 모두 죽는다.’가 된다.
베이컨에 의하면, 개별적인 자연현상에서 출발하여 저차원, 중간 차원, 고차원의 공리를 거쳐 일반적인 공리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베이컨은 실험을 중요시했다. 실험은 자연을 탐구하는 기초이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물들의 작용을 보여주는 중요한 도구이다. 베이컨은 말한다. “단지 단순한 경험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연(경험적)이라 불리고, 발견되었을 때는 실험이라 불린다. 경험의 참된 방법은 우선 촛불을 켜고(가설) 다음에 촛불에 비춰 보고(실험을 준비하고 그 범위를 결정한다) 서투르거나 엉뚱하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요약된 경험을 바탕으로 출발하여 여기에서 공리를 끌어내고 일반적으로 승인된 공리를 바탕으로 다시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책이나 인습이나 권위에 의존하지 말고 직접 자연에 부딪혀야 한다. 이러한 연구 방법이 귀납법이다. 그러나 베이컨의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귀납법의 새로운 발견에 있지 않다. 우상의 타파, 즉 모든 권위와 인습, 선입견으로부터 탈출하라는데 있다.
베이컨이 남긴 가장 유명한 명제는 ‘아는 것이 힘이다.’이다. 이는 우상타파와 연결된다. 옛날 자연현상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신의 뜻으로 이해했다. 비가 생성되는 원리를 몰랐을 때, 인간은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며 신의 노여움을 풀려고 했다. 그러나 비의 원리가 밝혀지자 인간은 인공강우를 시도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보는 수많은 픽션들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대하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었을 뿐, 역사적 사실 자체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역사를 사실로 착각하고 그것을 역사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현상은 도처에 널려있다. 대부분의 언쟁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거나 전체 주제와 상관없는 지엽적인 부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련 현상의 원인이 베이컨이 말한 우상이다. 베이컨은 모든 사물을 비판적으로 보라고 이야기한다. 베이컨의 정신은 이전 시대의 정신에 대한 도전이며, 근대적 정신의 시작이다.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을 주장한 베이컨의 정신은 근대 자연 과학의 정신이며, 자연 과학을 발전시킨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