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작]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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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늘의 뜻을 실천한다 『중용中庸』

 

파랑새는 어디 있을까

1908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벨기에 작가 마테를링크의 동화극 『파랑새』가 처음으로 상연되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가난한 나무꾼 집 아이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가 꿈을 꾼다. 꿈에서 마법사 할머니가 남매에게 파랑새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요정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꿈에서 깨고 남매는 자기 집의 새가 파랑새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문제의 해답을 먼 곳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그토록 찾던 해답이 곁에 있음을 알게 된다. 도(道)는 어떤가? 멀리 떨어져 있는가? 『중용(中庸)』은 아니라고 말한다. 공자가 말했다. “도는 사람과 멀지 않다. 사람과 멀리 떨어진 도는 도가 아니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도끼자루를 만드는 법은 멀지 않다.”고 했다. 도끼자루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한다. 두께는 어느 정도이어야 하고 길이는 얼마여야 하는가. 나무를 들고 이리 저리 살펴보며 고민을 한다. 그런데 지금 손에 도끼자루가 들려 있지 않은가? 도끼자루를 쥐고 도끼자루를 다듬는 것처럼 우리는 항상 도(道)와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도라고 생각하지 못할 뿐이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도(道)가 우리와 함께 있음을 가르쳐주는 책, 『중용(中庸)』은 유학의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이다. 유학의 사서란 『논어』, 『맹자』, 『대학』 그리고 『중용』을 가리킨다. 주희는 사서를 읽을 때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순서로 읽으라고 했다. “『대학』에서 규모를 정하고, 『논어』에서 근본을 정하고, 『맹자』에서 발현된 부분을 관찰하고, 『중용』에서 옛 사람의 오묘한 곳을 구하라.”라고 말했다.

‘옛 사람의 오묘한 곳’이란 무엇인가? 중국철학을 포함한 동양사상에서 ‘오묘함’이란 우주만물의 본성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따라서 옛 사람의 오묘한 곳이란 옛 사람들이 밝혀놓은 우주만물의 본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희는 『중용』에서 우주만물의 본성을 공부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중용이란 무엇인가? 주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꼭 알맞은 것이 ‘중(中)’이고, 언제나 변함없이 일정하고 바른 것이 ‘용(庸)’이다. 그러므로 ‘중’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올바른 도(道)이고, ‘용’이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원리이다. …… 중용의 원리는 크게 보면 온 우주에 가득 차 있고, 작게 보면 아주 작은 물건에도 담겨져 있다. 중용의 오묘함은 끝이 없다. 그것은 사람들의 실생활에 언제나 쓰이는 학문이다. 『중용』을 잘 읽어 음미하고 연구하면 무한한 이익을 안겨 줄 것이다.

‘중’이란 ‘치우치지 않고 꼭 알맞은 것’이고, ‘용’이란 쉼 없이 중을 지켜나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중용에서 ‘중’은 산술적인 가운데를 의미하지 않는다. 중용의 ‘중’은 올바른 도(道)이다. 그것은 상황과 연관된다. 생일날의 웃음은 행복이지만 초상집에서 웃음은 실례가 된다. 같은 것이지만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따라서 상황이 달라지듯이 ‘중’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

공자는 중용의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근심했다. 공자가 말했다.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나는 안다. 아는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 도가 밝혀지지 않음을 나는 안다. 현명한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 사람이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아는 자 드물다.”

우리는 중용의 도와 함께 살지만 중용을 지키지 못한다.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한다. 중용의 ‘중’이란 지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음을 말한다.

중용은 군자와 소인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군자의 중용은 때에 맞게(時中) 행동한다. 여기에서 ‘때’란 그때, 그 상황, 그 사람의 처지와 환경을 모두 말한다. 군자는 그 모든 것을 고려하여 알맞게 행동한다. 그러나 소인은 사정을 개의치 않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실천의 힘

공자가 말했다. “천하의 국가를 편안하게 다스릴 수 있고 벼슬을 사양할 수 있으며 흰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은 능히 할 수 없다.” 공자는 중용의 어려움을 여러 번 이야기한다.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지혜와 부와 명예를 사양할 수 있는 절제, 칼날을 밟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도 중용은 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중용』은 말한다.

군자의 도(道)는 광대하지만 미세하다. 보통사람이 알 수 있는 것도 그 끝에 이르면 성인(聖人)이라 해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보통사람이 행할 수 있는 것도 그 끝에 이르면 성인이라 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천지가 아무리 크다 해도 사람에게는 오히려 작은 것일 수가 있다. 그래서 군자가 큰 것을 말하면 천하에 실을 수가 없고 작은 것을 말하면 천하에 쪼갤 것이 없다.

군자의 도는 보통사람에게서 시작되지만 그 끝에 이르면 천지에 드러난다. 중용을 행하려면 중용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 상황을 관통하는 도를 깨치는 것은 성인이라도 어려운 일이다. 큰 것을 이야기하면 중용보다 큰 것이 없고 작은 것을 이야기하면 중용보다 작은 것이 없다. 광대한 천지에서부터 미세한 입자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같은 이치로 움직인다. 그래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가까운 것에서 먼 것으로 중용을 실천해가자고 한다. 한 발자국을 내딛지 않고는 열 걸음을 갈 수 없다. 중용의 도도 마찬가지다. 작은 것에서부터 점차 넓혀 나가면 중용을 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행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이는 배워서 알고, 어떤 이는 노력하여 알게 되지만, 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어떤 이는 편하게 행하고, 어떤 이는 이로움을 위해 행하며, 어떤 이는 어쩔 수 없이 행하지만 행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남이 한 번해서 할 수 있는 것일지라도 자신은 백 번하고, 남이 열 번해서 할 수 있는 것일지라도 자신은 천 번한다. 이 도를 행할 수 있다면 어리석다 할지라도 반드시 밝아질 것이고, 유약하다 할지라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도를 행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천재가 아니라도, 성인이 아닌 보통사람일지라도 정성스럽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

 

본성은 하늘이 준 것이다

중용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오직 성(誠), 즉 정성스런 마음으로 하라고 한다. 성(誠)은 속임이 없는 것이다. 성(誠)은 진실되고 영원불변하기 때문에 하늘의 도가 될 수 있다. 성은 하늘의 도이고, 군자는 성을 깨닫고 체현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바로 하늘, 우주와 하나인 사람이다.

성(誠)에서 본성과 가르침이 나온다. 본성과 가르침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중용』은 말한다.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것을 본성이라 하고, 본성에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도(道)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고 한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이 준 것이고,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이다. 그리고 도를 닦는 것, 즉 우리의 본성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 가르침이다. 도를 닦는다는 일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는 본성을 찾는 것이다. 성(誠)은 중용과도 연결된다.

희로애락이 나타나지 않는 상태를 ‘중(中)’이라 한다. 이러한 감정이 일어났지만 절도에 맞는 상태에 이른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은 천하의 근본이고, ‘화’는 천하에 통용되는 도이다.

여기서 ‘중화’는 중용의 의미이다. 또한 『중용』은 말한다.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誠)이 있어야 본성을 다할 수 있다. 본성을 다할 수 있다면 즉 사람의 본성을 다할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을 다할 수 있으면 만물의 본성을 다할 수 있다. 만물의 본성을 다할 수 있으면 천지의 만물이 생겨나 자라게 도울 수 있다. 천지의 만물이 생겨나 자랄 수 있게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이처럼 『중용』은 하늘, 인간 본성, 도와 덕, 그리고 교육을 하나로 꿰뚫어서 설명을 시도한다.

 

우리는 하늘의 도를 실천한다

공자는 『시경(詩經)』을 정리한 후에 시 삼백 편을 일컬어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다.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 내 생각에 사특함이 없으니 세상의 모든 일을 봄에 사특함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곧 바름이다. 사람을 바르게 하고 그 바름을 때에 맞추는 것, 그것이 중용이다. 우리는 중용을 행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중용을 행할 수 있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우리의 바른 본성을 회복하면 행할 수 있다.

주희의 말처럼 『논어』는 인간의 도리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을 정하였다. 『중용』은 그 도리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이라고 하여 ‘옛 사람의 오묘한 곳’을 드러내었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므로, 하늘과 인간이 합하여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룰 수 있다.

이렇게 『중용』은 인간이 하늘과 하나 되는 새로운 경지를 제시했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본성을 깨달아 실천하면 중용의 덕을 획득할 수 있다. 중용의 덕은 인간 최고의 도덕적인 목표이다. 그러한 목표에 도달한 사람이 곧 군자이다.

 


『중용』

원래 『예기』(禮記, 기원전3-2세기 秦漢초에 편집 완성)에 수록된 한편이었던 것을 주희(朱熹,1130- 1200)가 그 중요성을 인정하여 지식인 필독서인 『사서』의 하나로 편찬한 때부터 널리 읽히게 되었다. 『중용』에는 ‘성'(誠), 즉 도덕성을 우주와 인륜의 존재론적 기초로 설명하는 도덕형이상학이 뚜렷히 각인되어 있어 송명(宋明,10세기)이래 신유학의 철학적 기초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문헌이다.(송영배,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홍승기
인민노련 홍보부를 담당하면서 6월 항쟁을 현장에서 이끈 숨은 일꾼. 술만 사 준다면 지옥에도 함께 들어갈 천진무구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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