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도, 아이 탓하나
인권조례 제정 후 모두들 생활지도가 어렵다고 한다. 사고치는 아이들이 이해는 안 되고, 그렇다고 생활지도를 열심히 하면 아이들이 바뀔까? 혹시 겉으로만 잘 길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터져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아이들 깊은 내면의 힘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가?
1. 중딩의 설치미술?
수진 : 학급에 늘 감당이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 상담도 안통하고, 생활지도를 하면 더 엇나간다. 때때로 이야기 와중에 아이들의 눈빛이 무서운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이러려고 선생이 됐나, 싶다. 이우에서 당신은 어땠나?
광필 : 부끄러운 깨달음의 기억이 나올 시점인 것 같다. 2009년 3월 15일 중학교 3학년 점심시간 남자 화장실 사진이다. 양변기에 새 휴지가 박혀있고, 왼쪽에 변기 청소하는 솔과 스테인리스 물 컵이 뒤집혀서 박혀있다.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다. 이 아이들 1년 선배가 좀 문제가 있었다. 문제란 게 다른 것이 아니라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이우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선발할 때 다양한 구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학업으로는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가 골고루 모여 있는 정규 분포를 그리게 하고, 인성으로도 다양한 아이. 제각각 다양한 아이들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매년 그렇게 아이들을 선발하는데, 고려 사항이라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새로이 구성되는 학년 팀에서 감당 가능한 수준. 그리고 학교의 지향점에 공감하느냐.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나머지는 최대한 다양하게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아이들 한 학년 선배들과 중학교 1년을 지내고 보니, 골고루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범생이들이 그 학년의 문화를 너무 주도했다. 그래서 좀 사고 칠 만한 아이들이 자꾸 찌질이처럼 아무 것도 못한다. 그래서 그냥 조금 토닥거리는 것 말고 큰 사건 사고가 안 일어난다. 사고가 생겨야 그것을 교육적으로 풀어볼 수가 있는데 일이 안 터지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참 답답해했다.
그래서 그 일 년 후배인 이 아이들을 뽑을 때 좀 사고 칠만한 아이들을 조금 더 선발했다. 이우에서는 이런 애들을 ‘쏘가리’라고 하는데 양식장에서 붕어들이 좀 비실비실할 때가 있다. 그럼 쏘가리를 한 마리 푼다. 그럼 한두 마리는 잡아먹히는데 나머지 붕어들은 다 깨어난다. 이런 쏘가리 같은 아이들을 좀 챙기고, 특별히 배려가 필요한 아이들을 좀 더 뽑았다.
1학년 1학기가 되었는데, 이제 갓 초등학교 졸업한 6학년 아이들이 얼마나 귀여운가. 1학기는 조용히 지나갔다. 기대했던 아이들도 안 움직이고. 그런데 방학 끝나고부터 아이들이 덩치부터 달라져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몇 건씩 터지기 시작했다. 한 건이 터지면 2주에서 3주 정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맨 처음에 사고를 친 아이들을 불러서 경위를 파악하고 후속 조치로 부모도 불러서 상담하고, 상황에 따라 아이들을 데리고 농촌 봉사를 일주일 가거나 과제를 맡기고, 더 심한 경우는 전문 상담으로 외부에 의뢰하는 등 이런 식으로 2,3주가 걸린다.
터진 건을 한창 처리하고 있는데 또 한 건 터지고 이런 식으로 2학년 말까지 사건이 계속 이어졌다. 늘 사고치는 아이들이 계속 치는 거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아이들은 항상 용의자가 된다. 늘 사고가 터지면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싸우는 관계가 되었다.
그렇게 1년 반을 하다보니까 대체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무슨 강력계 형사반도 아니고 아이들과 싸우기만 하고 아이들의 변화는 없고 계속 사고는 터지고. 그래서 3학년을 앞두고 전열 정비를 했다. 학년팀 멤버도 새로 짰다. 아이들도 심상치 않은 변화를 느꼈다. 한 보름동안 분위기를 살폈다. 그리고 딱 위 사진처럼 이런 일이 벌어졌다. 혹여 선생님들 반응이 약할까봐 사진에 나와 있는 것뿐만 아니라 화장실 문짝도 아예 뜯어냈다.
수진 : 마음먹고 뭔가 하려고 하면, 소위 ‘쏘가리’들이 전보다 강한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그럴 때 잘 해야 된다는 걸 아는데, 솔직히 저는 잘 대처하지 못했다. 결국엔 그 아이들 기가 살아서. 어찌됐든 빨리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다!
광필 : 그 아이들 기가 살았다는 말에서 당신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점심시간에 학년팀 선생님들이 쫙 모였다. “누굴까?” 7,8명이 떠오른다. 그러면 그 아이들을 불러서 조사해보자 하는데, 학년팀장 선생님이 “우리 지난 1년 반 동안 일 터지면, 아이들을 불러서 조사하고, 후속 조치로 상담하고, 봉사시키고, 그러다보면 또 일이 터지고. 그런 식으로 반복이 되었는데 이번에 또 그럴 겁니까? 오늘 하루 깊이 생각해보고 내일 대처합시다.”라고 마무리를 했다.
이 팀장님이 도덕 담당 선생님인데, 다음 날 시간표를 조정해서 반마다 다 들어갔다. 들어가서 위 사진을 화면에 띄워놓고 “어제 점심시간에 남자화장실에 이렇게 굉장히 독특한 설치미술이 되어있더라. 이 작품을 만든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뭘까? 우리 그것에 대해 한 블록동안 이야기해보자.” 라고 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늘 용의자로 살아온 아이들의 고통, 학교뿐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한 소리 들은 이야기, 속상한 이야기 등이 다 나왔다. 팀장님은 그 이야기마다 공감을 해 가면서 아이들 마음을 다독였다. 그래서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다 나왔다. 그 날 저녁에 그 7,8명 아이들이 모였다.
“야, 종쳤다. 우리 마음, 선생님들이 다 알아버렸다. 개겨 봤자 소용없다. 이제 그만하자.” 8명의 마음이 탁 풀렸다.
이 아이들이 중학교 3학년 내내 별 다른 일이 없었다. 간간이 토닥거리는 건 있었지만. 이 아이들이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이우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이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리 활동도 많고, 자치 활동도 많고,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큰 무대에서 반별로 연극하는 것도 있고, 해외통합기행도 있다. 역대 고1 중 최고의 활동력을 보이는 아이들이 되었다.
그런데 당시에 그런 사건들이 있고 난 후 다른 학교랑 이것저것 이야기 하다 보니까, 그 또래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공격적이고 거칠다고 한다. 이것을 가만히 여러 가지로 분석해보니까 이 아이들이 서너 살 때 금융위기가 닥쳤다. 가정 분위기도 안 좋고, 그냥 “그만해” 한 마디로 해결할 거 괜히 더 쥐어박고.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억압된 것이 많고 쌓인 게 많고 스트레스가 많았다. 이런 것들이 공격성으로 나타났다. 선생님한테 잔소리 들으면 약한 아이 괴롭히게 되고. 그런데 이게 하나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방향을 제대로 잡으면 굉장한 활동력으로 변화한다. 이 이야기에서 핵심은 우리가 이 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아이들하고 싸웠던 걸 크게 반성했다. 이걸 설치미술로 이해하는 데 6년이 걸렸다. 그런데 그 팀장님이 그 일을 설치미술로 이해하게 된 데는 중요한 배경이 있었다.
남자화장실에 이렇게 굉장히 독특한 설치미술이 되어있더라. 이 작품을 만든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뭘까?
2. 선생님들도 성장하려면 쏘가리가 필요해?
수진 : 설치미술로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처음에는 뭔 소린가 했다. 알아듣고는 감탄했다. 저렇게 아이들에게 다가갔으니 아이들이 마음을 열지 않고는 배길까. 그런데 그것이 쉽게 가능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 사이 어떤 내공을 쌓았나? 설치미술로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있었다니 사연이 많았을 것 같다.
광필 : 그 팀장이 2008년 고등학교 2학년 팀에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은 이우중학교를 2번째로 입학한 아이들이고, 고등학교는 5번째로 졸업하게 되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바로 이우학교의 중요한 역사를 써왔던 아이들이다. 학내 최초의 음주, 흡연, 폭행, 집단 갈취, 절도 ‥ 등등. 그리고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흘린 눈물의 반이 그 친구들과 관련되어 있다.
이 아이들이 고1로 입학했을 때 그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년 팀 차원에서 힘들 것 같아서 교장, 교감이 학년팀에 합류했다. 고2까지 한 1년 반 동안 그 아이들을 붙들고 온갖 씨름을 했다. 학년 팀 선생님들이 감당을 못 하면 교장실로 온다. 그러면 그 아이들에게 훈계를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이우학교에서.” “이우학교가 추구하는 게 뭔데?” “너희들에게 뭘 가르치려고 했는데!”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꼰대가 계속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겠지만. 교장은 아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만 그랬을까?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1년 반을 그러다 보니까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교장치곤 많이 이해했다. 그때 크게 깨쳤다. 그래서 저 아이들의 설치미술을 이해하는데 6년 정도 걸린 것 같다.
3. 아이들은 어떻게 찌그러지나
수진 : 1년 반 동안 크게 깨쳤다고 하는데, 와 닿지 않는다. 나도 저런 애들, 상대는 많이 해봤다. 상대 해 본다고 크게 깨치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구체적인 사례로 설명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광필 : 미안하다. 뜬구름 잡는 말 하는 사람을 싫어하는데, 내 자신이 그럴 뻔 했다. 실제 이우학교에 있었던 한 아이의 예를 들어 보겠다. 어쩌면 이우에서 가장 아픈 기억일지도 모르겠지만. 만수는 이른바 중학교 건달이다. 물론 중학교 남학생들이 다 건달은 아닐 것이다. 여기 이른바 범생이인 영호도 있다. 범생이들은 자신이 뭘 좀 안다는 티를 내는 성향이 있다. 만수가 말이 안통하면 주먹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영호는 ‘잘난 척’을 참지 못한다.
중학교 3학년 교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각 모둠에서 해결할 물음을 던진다. 만수는 모둠 친구들을 믿고 역시나 엉뚱한 답을 한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답을 찾아가는 재미난 과정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영호는 이 상황을 참지 못한다. 답이 뻔한 데 왜 또 빙빙 돌아서 시간만 낭비하느냐 싶다. 그래서 답을 즉시 말해버린다. 영호가 또 잘난 척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만수는 짜증이 확 난다. 막 째려보지만, 수업시간이니 어찌 하지는 못한다.
수업이 끝나고 만수가 영호를 조용히 복도로 부른다.
“야, 니가 뭘 좀 안다고 그 대목에서 꼭 나서야 되겠어?”
그런데 영호도 할 말이 있다.
“니가 뭘 모르면서 나서니까 한참을 돌아가야 되잖아?”
“뭘 모르면서 나선다고?”
만수 입장에서는 참을 수가 없다. 바로 주먹이 나가고 영호 이빨이 두 개 부러졌다. 아이들 사이에선 피(?)가 나면 판이 커진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이고 선생님들도 모이고 난리가 났다.
담임선생님이 만수를 데려갔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이 때 만수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1학년 때부터 뭘 좀 안다고 꼭 티를 내고 잘난 척하는 영호 때문에 짜증나는 게 많았고, 오늘만 하더라도 영호가 자기 이야기를 자른 것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영호가 쭉 꺼내고 싶은데, 담임선생님이 묻는다.
“왜 이빨이 부러졌는데?”
거두절미하고 이 질문만 던진다.
어? 그럼 1학년 때 이야기는 빼고, 오늘 수업 이야기부터 해야 겠다 생각한 만수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한 이야기를 꺼내는데 담임 선생님은 그의 말을 끊고 또 묻는다.
“그러니까 왜 이빨이 부러졌냐고?”
만수는 담임 선생님의 반복된 ‘이빨’ 이야기에 참을 수가 없다. 쌤한테 주먹을 쓸 수는 없으니, 책상을 뒤엎어버렸다. 담임 선생님은 이제 손을 쓸 수가 없다. 학년부에서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나서는 사람이 교장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만수를 교장실로 불렀다. 학생부장 선생님을 옆에 앉히고 교장실에서 기다린다. 드디어 만수가 들어온다. 만수가 자리에 앉고 난 후 3분 동안 나는 아무 소리도 안하고 그냥 바라만 본다. 만수는 점점 쪼그라든다. 속으로는 ‘야, 이거 안 되겠다. 1학년 때부터 이야기하지 말고 이빨 이야기부터 바로 해야 되나?’ 생각하며 내 눈치를 쓰윽 살핀다. 올라갔던 눈꼬리가 살며시 내려가고, 긴장된 분위기에 맞춰 차분한 표정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먼저 학생부장이 목소리를 착 깔아서 시작한다.
“야~ 어떻게 됐는지 설명해봐!”
만수는 1학년 때부터 있었던 이야기, 오늘 수업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다 빼고, 바로 이빨을 어떻게 부러뜨렸는지 상황 설명을 두서없이 쭉 늘어놓는다. 듣고 있던 학생부장이 다그친다.
“육하원칙에 따라서 다시 설명해봐!”
만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설명한다. 교장은 담임 책상을 뒤엎은 건달이 어느 정도 숨이 죽었다 싶으니, 본격적으로 일장 훈시를 시작한다.
세상에는 멋진 말, 훌륭한 말도 참 많다. 교장이 한참 훈계를 늘어놓으면 만수는 요 대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안다. 다소곳이 고개도 숙이고, 깊이 반성하는 듯 긴 한숨도 쉬어가면서 분위기를 맞춘다.
정리가 된 듯싶으니, 학생부장 쌤이 만수를 데리고 가서 반성문을 쓰게 한다. 만수는 이거 대충 쓰다가는 몇 번을 다시 쓰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안다. 한 번에 끝내기 위해 학생부장 쌤이 무엇을 원하는지 머리를 굴리면서 마무리한다.
만수가 교실로 돌아간다. 울화가 치밀지만 그렇다고 교실에서 만만한 찌질이들에게 깽판을 치면 일이 다시 꼬일 게 분명하다.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저녁에 집으로 들어갔다. 이미 엄마는 담임 선생님에게 소환통보를 받아 화가 나있고, 들어온 만수를 쥐 잡듯 한다.
만수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치민다. 친구를 무시하고 놀리기까지 한 영호는 나무라지 않고, ‘이빨’ 이야기만 하는 담임쌤, 게다가 교장까지 나서서 자신을 찍어 누르다니… 속상하고 답답하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나가서 동네 선배를 만나 담배도 한 대 얻어 피우고 술도 한 잔 걸친다. 그래도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만만한 아이들 삥(?)도 뜯고 한 판 거하게 걸친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교장인 나는 학년부에서 감당이 안 되는 건달을 차분하게 만들어 반성문도 제대로 쓰게 하고 잘 해결된 것 같아 흐뭇해한다.
서너 달이 지났다. 만수가 더 큰 건을 터뜨려서 교장실에 끌려왔다. 이번에는 더 호되게 야단을 쳐서 확실히 잡아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에는 파출소에서 그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두 달 후에는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는 아이가 된 만수를 결국 자퇴시켰다. 2007년 여름까지 이렇게 자퇴시킨 학생이 무려 5명이 되었다.
그 동안 만수와 같은 아이를 보면 정말 이해가 안 됐다. 부모와 이야기를 하고 나면 ‘애가 이렇게 된 게 다 부모 때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면 ‘이 아이 때문에 전체 반이 망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5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그렇게 학교에서 쫓아내고 나니, 나는 또 다른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내가 어려운 아이들, 힘든 아이들을 깨우겠다고 학교를 시작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4. 교장이 반성하면 아이들은
수진 : 부끄러운 깨달음이라고 한 말이 이제야 와 닿는다. 그렇게 아이들을 떠나보내면서 얻은 깨달음이었을 테니. 그래도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으니 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직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무지에 대한 자각만 나온 것 같다.
광필 : 애초에 내가 그들을 모르니 어떤 방법론적 접근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사고치는 아이들의 입장을 알고 싶었다. 그들의 속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사고치는 아이와 차분하게 대화할 계획을 짰다. 내가 낚시꾼이니 사고치는 아이들을 두 명씩 2박3일로 충주댐에 있는 수상 좌대로 데려갔다. 물 위에 떠 있는 좌대는 작은 방도 있고 화장실도 딸려 있고 밥도 배로 배달을 해주기에 낚싯대를 내린 나에겐 천국이다. 하지만 녀석들 입장에서는 2평 조금 안 되는 좌대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나랑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그리하여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대화 장소이며 회담장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내가 궁금했던 그들의 내면을 듣게 되었다.
교장실에 끌려온 만수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통박으로 대처하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어느 대목에서 눈꼬리를 낮추는지, 반성문을 한 번에 끝낼 궁리를 어떻게 하는지 등등.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했던 말들이 아이의 자존심을 짓밟고, 눈치나 보는 쪼잔한 놈으로 만들었다는 것, 속으로는 열 받는데 겉으로만 끄덕끄덕하게 만들었고,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반성문이 아니라 항복문서 따위를 쓰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밖으로 나가서는 그 전보다 더 크게 깽판을 칠 수 있는 ‘동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을.
작은 사건을 점점 큰 판으로 키운 것도 나고, 결국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다고 쫓아낸 것도 바로 나였다. 지금도 그 아이들을 떠올리면 내 크나큰 과오에 울컥해 진다. 그것을 깨닫는 데 1년 반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보니까 아이들이 달리 보이게 됐다.
‘요 대목에선 이놈이 뭘 생각 하겠다’ 이런 게 읽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수’를 이해할 수 있게 되니까 어떤 아이가 사고를 쳐도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다 싶었다.
수진 : 나 같은 경우에도 역시 아이 탓, 부모 탓을 자주 했는데 교장 탓이라니. 멋지다. 낚시터란 폐쇄적 공간에서 아이들과 열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멋지다. 생각해보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기 보단, 내 생각을 말하기 급급했기에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대화를 나눈 후 반성한 교장이 만수를 어떻게 만나는 지 궁금하다.
광필 : 당신의 말대로 그 전에는 이제 반성한 교장이 교장실에서 만수를 만나는 과정을 재구성해 보자.
사실 교장실에서 만수를 어떻게 만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동안 교장과 아이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됐느냐이다. 이미 교장이 자신을 이해하는지 안 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지 아닌지를 동물적 감각에 가까운 만수는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한 말을 하는지는 전혀 상관없다. ‘이놈들 무슨 사고치고 다니나’ 하고 째려보고 다닐 때 만수는 내 그림자만 봐도 눈 안 마주치려고 옆으로 슬그머니 피했다. 그런데 교장이 자신들을 이해하고, 마음이 통한다고 여길 땐, 운동장 반대편 끝에서도 자기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려고 ‘티’를 냈다.
마찬가지로 이 상황에서, 그러니까 이빨 이야기만 하는 담임 선생님하고 한판 붙고 나서 교장이 부르게 되면 만수는 교장실로 달려가고 싶다.
교장실에서 교장이 “어떻게 된 거야?”라고 말하기만 하면 만수가 1학년 때부터 쌓인 이야기를 쭉 늘어놓는다. 그런 말들을 그저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끝이다. 이 때 감정코칭이나 비폭력대화법 등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번엔 일이 심각해서 부모님이 학교에 오셔야 해. 그냥 반성문 쓰고 때울 수 없을 것 같아. 부모님 입장에서 굉장히 곤란해 하실 것 같다.”
이런 말을 나누면서 교장과 만수가 ‘함께’ 부모 걱정을 시작한다.
만수보다 좀 더 심한 칠수라는 아이가 있다. 칠수가 지난번에 좀 더 큰 건을 터트렸다.
“요새 칠수 어떻게 지내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교장과 만수는 ‘함께’ 반 분위기에 대해서 걱정하기 시작한다. 만수는 이번에 자기가 좀 정신 차려서 분위기를 바꿔 보겠다고 다짐을 한다.
“3학년인데 이제 고등학교는 어쩌지?”
만수와 교장은 ‘함께’ 만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제 만수는 비로소 현재의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막 나가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을 돌아본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서 만수는 깨어난다.
사건은 우연이지만 그것을 성장의 계기로 만드는 것이 교육이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대처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그러나 실제 이 사건을 의미 있는 성장의 계기로 만드는 것은 그 동안 교장과 아이가 만들어 나갔던 ‘관계’이다.
그러나 관계가 형성됐다 해서 아이의 성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교사가 마음으로 전하는 공감과 위로, 격려, 자극의 메시지를 통해 아이가 자기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 분노, 슬픔과 마주하게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아이들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돌아보게 되고 내면의 힘을 키우게 된다.
나는 그렇게 그 아이들로부터 배웠다.
우리는 특별한 교육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원래 어떠해야 할까’, ‘선생님이 아이들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아이들의 성장이란 도대체 뭘까’ 라는 것을 고민하는 차원에서 아이들을 고난과 역경에 부딪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게 하는 것 또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만이 내면의 힘이 성장한다. 그 힘을 통해서 아이들이 공부도 하고, 세상과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키우는 것이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반인반수이지만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그들은 우리를 적이라 여길 수도, 동지라 여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