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제목
≪바다기담 海洋奇談≫ 바다가 들려주는 기묘한 이야기 김지원 엮음
- [보도자료]
- 2026-07-14
≪바다기담 海洋奇談≫ 바다가 들려주는 기묘한 이야기 김지원 엮음
바다가 들려주는 기묘한 이야기
바다에 관련된 구전되어 내려온 이야기를 엮은 설화집 ≪바다기담 海洋奇談≫. 이 책은 섬의 탄생에서부터 바다를 지배했던 용왕, 바다를 무대로 왜구와 싸웠던 영웅, 지역과 지명에 얽힌 전설과 유래 등 바다가 들려주는 기묘한 이야기를 전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아이들에게로, 또 그 아이들이 자라서 후손들에게 들려주었던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오래된 역사와 전통만큼이나 바다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중 빠질 수 없는 바다 속 용왕 이야기는 인간들의 어려움을 돕는 지혜롭고 전지전능한 모습으로 비쳐지는가 하면, 때로는 시기와 질투를 일삼는 소인배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또한 서양의 동화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인어 이야기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설화나 민담은 권선징악이 주를 이룬다. 이 책의 바다 민담 역시 자라나 물고기 등 작은 미물에도 도움을 주었더니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나, 악의는 꼭 하늘의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야기 구성은 선조들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게 하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을 사는 도리를 알려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다.
서문
민담, 기담 등이 최근 문학회에서 꽤 인기가 높은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의 민담이나 기담집은 그리 많이 찾아볼 수가 없다. 찾아보면 우리나라에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기담이 많이 있을 텐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던 차에, 바다에 관련된 이야기를 엮어 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장보고기념사업회에서 연구자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해양설화’를 조사하였는데 그것을 기본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미 생각하고 있던 보안 비슷한 방향이었기 때문에 반갑게 받아들였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 중 꽃섬 이야기라든지 바다의 여신을 달리기 위해 소년 제물을 놓고 가는 이야기 등은 나도 이 이야기를 엮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 민담에도 인어 이야기가 있다는 것 역시 이번에 새롭게 안 사실이다. 외국 전설에나 등장하는 줄 알았던 인어를 우리 민담에서 발견하게 되니 참 놀라웠다.
바다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게 나오는 것은 역시 용왕이라는 존재일 것이다. 용왕은 때로는 인자하고 마음 넓은 인물인가 하면, 속 좁고 인간의 능력을 질투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에게서 도움을 구하기도 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온다. 이러한 용왕의 모습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1. 옛날 옛적에
인어를 구한 명씨 이야기
옛날 도초도(전남 신안군)에 명씨 성을 가진 남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나이 50이 넘도록 장가를 못 들고 홀로 짚신을 팔아 그날그날 연명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명씨가 부둣가를 지나가고 있는데 부두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 보니 배에서 인어 한 마리를 잡아 와서 이걸 팔 것인지 회를 쳐서 먹을 것인지 논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인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다. 바다 속에 사는 미물이라 해도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자 가엾어진 명씨는 짚신을 팔아 푼푼이 모은 돈을 꺼냈다.
“이 인어를 나에게 파시구려.”
사람들은 열 냥에 인어를 잡아먹자고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명씨가 닷 냥을 얹어 열닷 냥을 내밀자 선주는 두말하지 않고 팔았다. 명씨는 인어를 업고 집으로 데려가서 며칠간 몸조리를 시킨 다음 몸이 나아지자 하나 바다에 띄워 보내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명씨가 바닷가를 지나가고 있는데 인어가 물속에서 나오더니 그에게 옥동자를 남기고 사라졌다. 명씨는 아이를 데려와서 애지중지 소중하게 길러 키웠다. 아이는 얼굴도 잘생기고 머리도 영리해서 주위 사람들의 감탄을 샀다.
세월이 흘러 몇 년이 지났다. 어느 날, 명씨의 집안 선산의 마을에서 권위 있는 집안이 함부로 들어가 땅을 파고 묘를 세우려고 하는 일이 생겼다. 명씨가 가서 보니 자기 조상 묘 위에 다시 묘를 세우고 있는 형편인데도 세도가라 감히 나서서 막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다.
“아버지,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들은 아버지가 자리에 누운 것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명씨는 “아직 어린 네가 알 일이 아니다” 하고서 돌아누웠으나 아들은 고집스러웠다.
“제가 해결할 수도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말씀을 해 주십시오.”
“실은 우리 조상님 묘 위에 세도가들이 토장(土葬)을 하고 있는데 도저히 말릴 수가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거다.”
“아, 그런 일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거뜬히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두고 곧장 산으로 향했다. 산에서는 세도가 집안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소를 잡고 자기들의 조상 묘를 다 파헤쳐 그 위에 새로 무덤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는 버럭 화가 나서 그 집안의 문장을 집어들고 대체 누가 일어난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너 같은 어린애가 알 일이 아니다. 당장 여기서 꺼지지 못할까!”
“어째서 남의 조상 묘에다가 토장을 합니까? 당신들이야말로 여기서 나가십시오.”
“어린애가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사람들이 아이를 토끼 몰듯 내쫓으려 하자 아이가 그 자리에 서서 뭐라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거센 바람이 불어와 천막이 무너지고 사람들까지 죄다 이리저리 날아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잘못했다고 빌자, 그제야 아이는 주문을 멈추고 호통을 쳤다.
“너희들이 아무리 권력이 있고 돈이 있다 해도, 남의 조상 묏자리에 토장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잘못을 깨달았거든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아이 앞에서 잘못을 빌고는 산에서 도망을 쳤다.
그 후 아이는 훌륭하게 자라서 도승지(都承旨, 정3품) 자리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명씨 집안 사람들은 인어의 후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2. 기기 묘묘한 이야기
풍어기 이야기
신안군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가거도에서는 풍어 기원제라는 큰 행사가 열린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기 때문에 고기가 많이 잡히고 해초가 잘 자라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인 것이다.
고기를 잡을 때 어부들은 몸을 단정하게 하고 최대한 공을 들였다. 부정하거나 불결한 짓을 하면 용왕님의 노여움을 사서 고기가 잡히지 않기 때문에, 부정이나 불결한 것을 막는 것을 소삽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배든지 풍어기(豐漁旗)를 걸게 마련이다. 풍어를 기원하는 이 깃발은 출항할 때마다 하나씩 만드는데, 그러다 보니 풍어기는 계속 남아돌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이 풍어기로 아이들의 옷을 해 입히면 아이가 복을 탄다는 이야기가 전해왔다.
어느 선주가 손자에게 풍어기를 이용하여 옷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손자가 얼마 못 가 죽고 말았다. 선주는 가슴이 아파서 여섯 살 난 아이에게 풍어기로 만든 옷을 입혀 장례를 지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그 선주가 멸치잡이를 하러 나갔는데, 밤에 멸치떼들이 그 배 앞으로 오기만 하면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삼색으로 된 고기떼가 몰려와서 멸치들을 다 쫓는 것이었다.
몇 번을 똑같은 일을 겪은 선주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점쟁이에게 점을 치러 갔다. 점쟁이는 점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풍어기를 부정한 데에 써서 그런 것입니다.”
선주는 가만히 고민을 하다가 죽은 손자에게 풍어기로 만든 옷을 입혀 묻었기 때문에 그런 건가 하고는 무덤으로 가서 아이의 옷을 파냈다. 파내고 보니 풍어기는 멸치떼를 쫓아버린 물고기와 똑같이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삼색으로 되어 있었다.
선주가 풍어기로 만든 옷을 없앤 다음부터는 다시 고기가 잘 잡혔다고 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풍어기를 부정한 것에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3. 바다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이야기
왜군을 잡은 가청이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오곡리를 가청이라고 부른다. 땅 위를 파란색으로 칠해 놓았다고 해서 가청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런 이름이 붙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몇 해 전의 일이다. 왜인들은 이미 우리나라에 쳐들어올 마음을 먹고 염탐꾼을 우리나라의 방방곡곡으로 보내 모든 사정을 염탐하고 지도를 만들게 하였다. 그런 염탐꾼 중 한 사람이 남해안으로 오게 되었다.
이때 안동에 사는 유씨 성을 가진 벙어리 한 사람이 왜병 염탐꾼과 함께 다니며 그의 일을 도왔다. 멍청한 벙어리려니 생각하고 그에게 잡다한 일을 시키며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실은 이 유씨 벙어리가 조선 선조 때의 유명한 유학자인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형이었던 것이다. 그는 일찌감치 외인들의 음흉한 계책을 알고서 일부러 벙어리 노릇을 하며 같이 따라다녔던 것이었다.
왜병 염탐꾼은 남해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남해의 지리를 자세히 살피고 낱낱이 지도에 그려 놓았다.
마침내 염탐꾼이 남해안을 다 돌고 정보를 다 얻어 남해도를 떠나려고 채비를 챙겼다. 유씨 벙어리는 그것을 보고 그날 밤 그에게 맛 있고 독한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염탐꾼이 곯아떨어지자, 그 행장을 풀어서 지도를 꺼낸 다음 광당 들판과 성산 일대, 비란 일대 등 오곡리 전부를 파란 물감으로 칠해서 산과 들을 마치 바다 같이 만들어 놓았다.
그 뒤 몇 년이 지나 왜인들이 조선을 침입하는 임진왜란이 벌어지게 되었다. 여러 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 남해도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왜인들과 맞붙어 싸우게 되었다. 용맹한 이순신 장군에게 몰려 왜인들은 패배를 거듭했고, 결국에는 열세에 몰려 도망칠 길을 찾았다.
왜병들이 황급히 지도를 펼쳐 보니 이락포에서 설천면 비탄리 사이가 파랗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여기가 바다라 이런 색깔인가 보다 생각하고는 이락포에서 가청이 쪽으로 뚫고 도망가려고 배를 돌렸다. 그런데 정작 가 보니 산과 들판이 가득하여 앞으로 나갈 길이 없는 것이었다. 결국 왜병들은 여기서 이순신 장군에게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그 이래로 이 일대를 가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4 용궁 이야기
용왕을 재치로 이긴 사또
경상북도 평해 월송정에서 막 새로 부임한 사또가 아랫사람이며 지방 유지들과 함께 축하 연회를 열고 즐기고 있었다. 그때 월송정 아래쪽 바다 저편에서 배가 한 척 이쪽으로 점점 다가오는 것이었다. 배에서 다시 작은 나룻배가 하나 나오더니 월송정으로 다가와서 사또를 찾는 것이었다.
“내가 사또인데 누구냐?”
사또가 나서서 문자 그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대답했다.
“저희는 용궁에서 왔는데 새 사또가 부임하셨다고 하셔서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셔서 배 구경도 하시고 용궁에서 오신 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사또는 “그러마” 하고는 그들을 따라 배에 올랐다. 배에 타니 용궁에서 온 사람들이 줄줄이 앉아 그에게 인사를 하고 반겨 맞으며 월송정의 연회보다도 훨씬 더 화려한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음악을 즐기며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정신을 차리니 배는 월송정에서 한참 떨어져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사또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으나 이미 돌아가기에는 늦어 있었다.
배가 용궁에 도착하자 용궁 사람들은 사또를 끌고 가서 방에 가두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사또가 어리둥절하자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 용왕님께서 병이 드셨는데 이 병은 인황을 먹어야만 나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황을 가진 사람을 백방으로 찾고 있던 터에 사또께서 인황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셔온 것이니 부디 우리를 원망 말고 용왕님을 위해 한 몸 희생해 주시구려.”
사또는 이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인황이라는 것은 쓸개 안에 있는 것인데, 이걸 빼내겠다는 이야기는 결국 배를 갈라 죽이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내가 잠깐 실수를 하여 바다 속에서 목숨을 잃게 생겼구나’ 생각하던 사또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이야기한 사람을 붙잡고 사정을 했다.
“어차피 죽을 몸이라면 평소에 먹고 싶었던 것들이라도 마음껏 배불리 먹고 죽고 싶소. 그거라도 해 주시오.”
“그거야 얼마든지 해 드리지요. 무엇을 드시고 싶으십니까?”
“복숭아가 꼭 먹고 싶은데, 복숭아를 구해다 주겠소?”
용궁 사람들은 사또를 호화로운 방에 모셔놓고 그가 원하는 복숭아를 가득 구해 갖다 주었다. 사또는 매일 같이 배가 터지도록 복숭아를 먹었다.
얼마 후 의사들이 사또 뱃속에 있을 인황을 꺼내기 위해 진찰을 하러 왔다. 그러나 정작 진찰을 하니 사또 뱃속에는 인황이 없는 것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어 그들이 알아보니, 인황은 복숭아를 많이 먹으면 삭아서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인황이 없으니 배를 갈라 봐야 사람만 상할 뿐 약을 구할 수 없는 일이라 결국 그들은 사또를 도로 물 밖으로 내보내고 말았다. 영리한 사또는 그 재치 덕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5. 사랑 이야기
비비각시 이야기
옛날에 전라남도 신안군 부근의 압해도(押海島)에 한 왕국이 있었다. 이 왕국을 다스리던 왕에게는 어여쁜 왕비와 똑똑한 왕자가 있었다. 왕은 나라를 평화롭게 잘 다스렸고, 가족끼리도 백성들의 모범이 될 만큼 사랑하고 아꼈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가 갑자기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왕도 왕자도 왕비를 열심히 간호했지만, 백약이 무효하여 왕비의 병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죽을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깨달은 왕비는 왕자을 불러 놓고 말했다.
“너는 내가 정해 준 이웃 나라 공주와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거라.”
왕비가 숨을 거둔 후 왕과 왕자는 슬픔에 잠겼다. 하지만 왕자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하기로 결심하고 이웃 나라 공주에게 청혼을 했다. 공주도 기꺼이 그의 청원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왕비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은 아들이 넷 있는 예쁜 여자와 재혼을 하였다. 새 왕비는 얼굴은 아름다우나 심보가 고약하여 전 왕비가 나은 왕자를 대단히 미워했다. 왕이 있을 때면 아끼는 척했으나, 왕만 없으면 노골적으로 홀대하고 구박했다. 똑똑한 왕자 때문에 자기 아들들이 밀려나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왕자가 결혼하기로 한 이웃 나라의 아름답고 영리한 공주를 보자 자기 아들과 짝을 지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새 왕비는 여러 가지 수작을 부려 두 사람의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왕자와 공주의 마음은 확고하여 도저히 돌릴 수가 없었다.
결국 왕비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왕 몰래 요술을 부리는 노파를 불러 부탁을 한 것이다.
“왕자를 구렁이로 만들어라.”
노파는 왕자를 커다란 구렁이로 만들었다. 이 사실을 안 공주는 충격을 받아 가슴이 에이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설령 구렁이라 해도 결혼을 약속한 사이이니 결혼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구렁이가 된 왕자와 공주는 결혼식을 올리고 궁궐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새 왕비의 눈에 이것이 고까웠다. 결국 왕비는 왕자를 불러서 말했다.
“구렁이 꼴을 하여 궁에 사는 것이 백성들 눈에 좋을 턱이 없다, 당장에 여기서 나가거라.”
“이 모습을 하여 제가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그걸 내가 알겠느냐? 어디 바다로 가서 뛰어들던지.”
왕자는 억울하고 분하였으나 어쨌든 어머니의 명인지라 거역하지도 못하고 궁을 나와 바닷가로 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공주 역시 남편 곁에 있겠다며 그의 뒤를 따라 바다로 갔으나, 그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는 것이었다.
“남편도 없는데 내가 살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공주는 울면서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때 이 장면을 본 구렁이 왕자가 공주를 구해서 가까운 모래섬으로 데려갔다.
단둘이 모래섬에 살면서 공주는 매일같이 하늘에 대고 빌었다.
“우리 서방님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시어머니가 요술쟁이 노파를 데려다가 이렇게 만들었으니, 어떡하든 본래의 모습으로만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공주는 하루도 빠짐없이 빌었다. 그러자 그 정성에 감동한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두 사람을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공주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빌었다는 뜻에서 이 섬을 비비각시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섬은 복용리 중촌과 송림 뒤 바다에 솟아 있다.
6. 바위에 얽힌 이야기
7. 지역과 지명의 유래 이야기
8. 섬 이야기
◎ 김지원, ≪바다기담 海洋奇談≫, 청아출판사, 2009
☞김지원 번역가/통역사. 서울대학교 및 동대학원에서 화학 생물공학을 전공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번역서로는 ≪렘브란트의 유산≫, ≪나폴레옹의 영광≫, ≪손안에 담긴 세계사≫, ≪손안에 담긴 건축사≫, ≪손 안에 담긴 바이블≫, ≪탑시크릿≫, ≪모든 것을 아는 남자, 라플라스의 악마≫ 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바닷가 기묘한 이야기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5000여 년을 이어온 장구한 역사와 전통만큼이나 바다와 관련된 민담과 설화가 많이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오랜 옛날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들에게로, 또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커서 그들의 후손들에게 들려주며 내려온 우리 민족의 이야기이다.
민담과 설화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웃음과 감동, 교훈, 그리고 선조의 지혜를 선사한다. 또한 바다를 매개로 한 지역에서 채록한 설화집인 ≪바다기담≫은 지역의 문화에서 파생하는 지역공동체 문화와 정체성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로도 그 의미가 크다.
재미난 해양설화 이야기
“저는 실은 동해 용왕의 왕자입니다. 선생님의 학문이 그리 높으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왕께서 선생님한테 가서 글을 배우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공부를 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용궁에 가서 부왕께 무엇을 배웠는지 말씀드리고 안부를 여쭙고 오고 있습니다.”
-율곡 선생이 호를 율로 쓰게 된 이야기
≪바다기담≫에는 다양한 군상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개벽 이전 섬의 탄생에서부터 바다를 지배하는 용왕님, 은혜 갚은 물고기, 바다를 호령한 영웅들, 어부와 해녀, 그리고 지명과 지역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까지. 이들의 모습은 우리네 삶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용왕
바다를 지배하는 용왕은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인간들의 어려움을 돕는 지혜롭고 전지전능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때론 영락없는 인간처럼 시기와 질투를 일삼는 소인배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인어의 등장
서양의 동화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인어 이야기가 우리의 바다에도 등장한다. 공간적 거리가 있지만 바다를 매개로 하는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어 이야기 또한 매우 흥미롭다.
권선징악의 교훈
≪바다기담≫에서도 역시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자라나 물고기 등 작은 미물에도 도움을 주었더니, 복을 받았다라는 이야기와 선의가 아닌 악의는 꼭 하늘의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 구성은 우리 선조들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이다. 이렇듯 민담과 설화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교도적이기도 하고 인생을 사는 도리를 가르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