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황광우 작가의 산책길, “K-민주주의의 세 가지 특질을 생각한다”
- [보도자료]
- 2026-07-02
황광우 작가의 산책길,
“K-민주주의의 세 가지 특질을 생각한다”
나는 요즈음 K-민주주의에 대해 사색한다.
한국의 민주변혁은 ‘혁명운동의 교과서’에 쓰인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나는 K-민주주의의 특질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하나는 혁명운동이 아니라 저항운동이었고,
둘은 폭력투쟁이 아니라 평화투쟁이었으며,
셋은 노동자계급이 주도한 운동이 아니라
청년 학생이 주도한 운동이었다.
프랑스대혁명에서 파리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하였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그 어떤 공격적인 무력 행동을 감행하지 않았다.
그저 체포되고, 구속되기만 하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구속의 행렬이 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다.
“무릎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길 원한다.”는 노래를 부르며
그저 끌려가기만 했다.
완강한 저항, 이것이 한국 민주화운동의 첫째 특질이다.
프랑스대혁명은 혁명의 완수를 위해 유럽 전쟁을 감행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는 총이 나타나지 않는다.
전투경찰이 고약한 최루탄을 남발하였으나 우리가 던진 것은 고작 화염병이었다.
우리가 뿌린 것은 유인물이었고, 우리가 앞세운 것은 풍물패였다.
칼 마르크스는 폭력혁명의 불가피성을 주장하였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민주변혁으로 가는 평화의 길’을 개척하였다.
1970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분신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충격적 사건이었다.
1986년 무렵에는 대학생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가 일하는 이른바 ‘위장취업자’가 1만여 명이 되었다.
나 역시‘위장취업자의 대열’을 선동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공장에 들어가 하루 12시간씩 일하였다. 돌이켜 보니 K-민주주의의 주도자는 청년 학생이었다.
1929년 11월 3일 시작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에서, 경성으로, 평양으로, 함흥으로, 북간도로 퍼져간 거국적 독립운동이었다.
1960년 4·19 학생혁명도, 1970년대 청년학생들의 민주화운동도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부터 시작하는 청년 학생운동이었다.
그런데 정작 광주 시민들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의 이름을 모른다.
민주의 성지, 독립의 성지 광주 시민들이 말이다.
장재성 선생이 아직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해마다 7월 5일이 오면 나는 죄인이 된다. 가슴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