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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색으로 물들인 조선 풍경≫ 김소연 글 오세정 미술 놀이

  • 작성자김동민 이메일
  • 작성일2026-06-03 07:08
  • 조회241
  • [보도자료]
  • 2026-06-03

신윤복 색으로 물들인 조선 풍경김소연 글 오세정 미술 놀이

 

아름다운 색으로 조선의 멋과 흥취를 표현한 예술가, 신윤복

조선 시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나 보는 특별한 어린이 예술서

 

신윤복은 예의와 체면을 중시한 조선 시대에서 드러내기 어려웠던 주제들을 과감히 화폭에 담은 화가다. 특히 유흥의 공간, 남녀의 사랑, 기생과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가지며, 다른 풍속 화가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냈다. 그가 실감 나게 그린 조선 풍경은 회화 작품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그림이 그려졌던 조선 시대의 생활과 의복 연구에도 귀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다채로운 색의 변주와 세심한 구도, 함축적인 메시지를 통해 우리나라 풍속화의 영역을 넓힌 천재 화가 신윤복의 예술 세계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 보자.

 

 

1장 한양도성에 밤이 찾아오면

 

 

<월하정인 : 달빛 아래 연인>

 

 

달빛 어스름한 시간, 한양의 뒷골목에서 우리의 첫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온종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시끌벅적한 도시가 이제야 곤히 잠이 들었거든. 조선 시대 밤거리의 모습은 어땠을까? 18세기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와 얼마나 닮은, 또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았을까? 옛 책에서도 그 어떤 조선 시대 그림에서도 보여 주지 않았던 비밀한 이야기들이 우리가 만날 신윤복의 붓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단다.

 

<월하정인>은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이라는 화첩에 들어있는 한 작품이란다. ‘혜원은 화가 신윤복의 호이고 전신*은 사실감 있는 묘사로 화가의 정신까지 그림에 그대로 옮겼다는 뜻이야. 마지막 글자 은 여기에선 화첩을 말하는데, 여러 장의 종이나 비단을 한 묶음으로 만든 조그마한 책을 말해. 그러니까 혜원전신첩은 혜원 신윤복이 실감 나게 그려낸 풍속화 작품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풍속화는 그 시대 사람들을 생활이나 풍습을 그린 그림을 말해.

 

*전신(傳神) :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준말로, 인물의 정확한 묘사를 통해 고매한 정신까지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는 회화 이론. 주로 초상화에 적용됨.

 

화첩은 작은 책처럼 생겼어. 그런데 책을 펼쳤을 때 한 장의 그림이 양쪽 페이지를 꽉 채우고 있다고 생각해 봐. 화면 한 가운데 접힌 자국이 생겨 그림 감상에 방해가 되겠지. 놀랍게도 신윤복은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어. 화첩이 접히는 <월하정인> 가운데 부분을 담장 모퉁이로 표현한 것이 보이니?

<월하정인>을 연극 무대 속 한 장면이라고 상상해 봐.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이 달빛도 닿지 않는 더욱 으슥한 둘만의 장소처럼 느껴지지. 담장에 내리쓴 한시가 흥취를 돋우어 주고 있지. 물 흐르는 것처럼 부드럽고 멋들어진 필체에, 마치 담벼락 낙서처럼 재치가 넘치는구나. 그럼 뭐라고 써 있나 보자.

 

月沈沈 夜三更 달은 어두워 밤이 삼경인데

兩人心事 두 사람 마음은

兩人知 두 사람만이 알겠지

 

삼경은 요즘 시간으로는 밤 11시에서 자정 넘어 1시까지로, 깊은 밤을 의미해. 두 사람만이 나누는 애틋한 사랑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지. 그림 속 남자는 도포 자락을 헤집어 무언가를 꺼내려는데, 구구절절한 사랑의 편지일는지, 아님 반지 같은 사랑의 정표라도 꺼내려는 것일까? 헤어지려니 너무 아쉬워서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구나. 다음번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긴 한 걸까 애틋해 보여.

그림 속 새초롬한 달 표현도 신기하지? 윗부분만 갸름하게 남은 독특한 달 모양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 그림은 실제 일어난 일을 그릴 수도 있고, 상상해서 그릴 수도 있으니까. 그림은 실제 일어난 일을 그랬다기보다는 상상 속의 연인을 묘사했으니, 이들이 만났던 날이 언제인지 세어 본다는 게 사실 의미 없을 수도 있지. 하지만 신윤복은 달도 눈을 감는 더욱 캄캄한 밤을 그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모르겠어.

 

한밤중 싸움 구경

그럼, 별감(別監)이 등장하는 <유곽쟁웅>을 볼까. 이번엔 별감이 선비들의 싸움판에 중재자로 나섰어. 말싸움이 번져 주먹을 휘두르고 몸싸움까지 했나 봐. 아마도 가운데 웃통 벗은 남자의 승리로 끝난 것 같다. 시비 끝에 도포가 벗겨지고, 가슴께에 묶은 세조대*도 땅바닥에 떨어진 데다가 맨상투 차림이지만, 당당한 표정이거든. 아직도 분이 다 가시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상대방을 노려보고는 있지만 말이야.

 

* 세조대 : 도포나 전복, 창의에 착용하는 가느다란 띠. 품계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기도 했음.

 

 

<유곽쟁웅 : 유곽(기생집)에서의 주먹다짐>

 

 

별감이 달래고 있는 화면 왼쪽의 젊은이는 어때? 곱게 빚은 상투는 다 흐트러져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표정은 울 것만 같아.

젊은 자네가 좀 참게. 술 취한 사람과 싸워 무슨 득이 있겠는가.”

옆에서 상한 마음을 달래 주지만 울먹이는 모습을 보니, 젊은이의 속상함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만 같아.

열린 문 앞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쳐다만 보는 기생을 보니, 이곳은 술집 앞인가 싶어. 두 남자가 한바탕 주먹다짐을 하니, 기생들 서방 노릇을 하던 별감이 무슨 행패인가 하며 이들을 말리러 나선 듯하거든.

신윤복은 이렇게 그림 속 등장인물마다 각자의 역할을 주며 재미난 연극 판을 벌여. 저마다 스토리 구성과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가 뛰어난 덕분에, 감상자는 그림을 보며 머릿속에서 대화를 상상할 수 있단다. 그림 속 가장 오른쪽, 다 망가진 모자를 줍고 있는 사람은 어때? 제법 거칠었을 싸움의 흔적이 보이지? 흑립의 테, 그러니까 양태*가 완전히 부서져 흑립의 구멍이 뻥 뚫렸잖니. 두 사람 중 누구 것인지 궁금해지는구나. 두 사람 다 흑립이 벗겨져 맨상투 차림이니까 말이야. 그럼 흑립 하나는 어디에 갔지?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집 밖에 나갈 때 꼭 모자를 썼으니, 흑립도 두 개여야 마땅하지. 정답은 그림 속에서 찾아보렴.

 

* 양태 : 갓에서 위로 우뚝 솟은 원통 모양의 부분.-인용자

 

 

2장 비밀 가득한 신윤복의 삶

 

빼어난 화가였던 신한평

신윤복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윤복의 아버지인 신한평을 알아볼 필요가 있어. 아내와 아이들을 그린 <자모육아> 한 편에 한문으로 크게 逸才(일재)라고 쓰고 도장을 찍은 것이 보이지. 일재는 신한평의 호야. 신한평의 집안인 고령 신()씨들은 왕실을 위해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도 많았고, 통역을 담당하는 역관, 지금의 의사와도 같은 의관들도 배출한 실력 있는 기술직 중인* 가문이었어. 신윤복의 아버지는 도화서의 화원(畫員)이었단다. 도화서란 왕실의 중요한 행사를 기록하거나 궁궐을 장식할 그림들을 담당하는 관청이고, 이곳에서 일하는 화가들을 화원이라고 하지. 조선 시대 가장 뛰어난 화가 집단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 중인(中人) : 조선 시대에, 양반과 평민의 중간 계급.

 

신한평은 어진(御眞), 그러니까 임금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에 세 차례나 참여했을 정도로 빼어난 화원이었어. 그 당시 어진을 그리는 것은 가장 특별하고도 최고의 영예로운 일이여서, 여느 화원에게나 그러한 특권이 주어지지 않았어. 어진을 그리고 나면 큰 상을 받거나 품계가 오르기도 했을 정도니까. 아쉽게도 그가 그린 (어진) 그림은 지금 남아 있지 않아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이 그린 <자모육아 :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

 

 

윤복의 생애

신윤복은 화원 신한평의 맏아들로 1758년경 태어났어. 아버지에게 그림 솜씨도 물려받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들도 잘 마련된 편이었을 거야. 어려서부터 돌가루나 꽃으로 물감을 만들고, 집안 곳곳에 쌓여 있었던 비단과 종이가 훌륭한 그림으로 채워져 가는 걸 보아 왔겠지. 어른이 된 신윤복도 아버지처럼 자연스럽게 도화서 화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돼. 화원 직은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왕실 기록 외에 다른 자료들에서는 신윤복이 화원으로 첨사라는 벼슬을 지냈다고도 하고, 원래는 화원이었지만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 그림을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고도 전하지. 여기저기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중인들과 어울려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 무엇도 정확한 것은 없어.

그렇지만 화가로서의 신윤복의 이름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것 같아. 조선통신사*1811년 일본 에도 막부**를 방문할 때, 신윤복의 그림을 선물로 가져갔다 하거든. 공식 사절단이 외국에 건넨 선물 목록에 들어 있을 정도라면 당대 최고의 화가로 인정을 받았다고 짐작해 볼 수가 있지. 당시 일본에 간 작품으로는 <기마절유도>, <서원아집도>, <당현종 상마도> 세 점이라 하는데,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고사 인물도였던 걸 알 수 있어. 이후 매를 그린 신윤복의 <암응도> 또한 일본에 건너갔다고 해. 오늘날 신윤복은 풍속화의 대가로 알려졌지만, 문인 취향의 주제들을 포함해 여러 종류 그림을 다 잘 그렸었다 추측되는 부분이지.

 

* 조선통신사 : 조선 시대 일본 막부에 파견된 조선 사절.

** 에도 막부 :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3년에 에도에 수립한 무가(武家) 막부.

 

 

3장 여자를 그리면 안 되나요

 

전통 미인의 기준

쌍꺼풀 없는 단정한 눈, 작고 반듯한 코, 새초롬한 입술, 앳된 얼굴이 이제 갓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어쩌면 더 어린 것 같기도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어.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면 볼수록 고운 그녀의 자태에 흠뻑 빠져들었지. 그리고 이 여인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알고 싶어 했단다.

이 여인은 <미인도>라는 그림 속 주인공이야. <미인도>가 초상화냐고 물어보는 친구도 있을 거야. 특정한 사람, 그러니까 명확한 대상을 두고 그린 경우를 초상화라고 한단다. 이 그림은 누구를 그린 건지, 명확한 대상이 있었던 건지도 알 수 없어서 어느 미인을 그린 그림이란 뜻에서 미인도라고 부르게 되었지.

 

 

<미인도>

 

<미인도>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단다. 우린 그녀가 간직해 왔던 비밀들에 조금씩 다가가 보려 해. 신윤복의 여느 그림처럼 그녀의 옷차림이 우리에게 힌트를 주지 않을까? 여인을 보면 크게 땋아 올린 탐스러운 머리 모양이 눈에 띄어. 신윤복은 섬세한 붓질로 머리카락을 한 올까지 그려냈어. 정말 대단하지? 조선 시대 여자들은 머리 손질에 관심이 많아서 땋은 머리를 정수리 위로 크게 두른 모양을 트레머리나 앉은 머리라고 하는데, 풍성한 트레머리를 만들려면 자기 머리만으로는 멋지게 되지가 않아 남의 머리카락을 덧붙이기도 했지. 이걸 가체(加髢)라고 해. 머리를 거의 30cm까지 높이기도 했다는데, 좋은 가체를 가지려면 큰돈이 들었던 것은 물론이지. 점점 사치스러워지던 이러한 풍습은 단지 아녀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어. 가체를 살 돈이 없어 혼례를 올리기 어려운 집들이 태반이었다고 하니까.

다음엔 그림 속 여인이 입고 있는 한복을 볼까? 그림이 그려진 지 시간이 꽤 흘러 물감 색이 다소 바랬지만, 미색 삼회장저고리에 푸른빛 또는 남빛 치마를 입은 걸 알 수 있어. 삼회장저고리는 저고리의 옷깃, 고름(옷고름), 소맷부리의 끝동, 겨드랑이 쪽의 곁마기에 다른 색 헝겊을 덧대어 공들여 지은 옷이야. 길이도 짧고, 품도 작은 저고리와는 반대로 치마 모양은 항아리처럼 잔뜩 부풀어 있어. 치마는 넉넉히, 윗옷은 꼭 맞게 입는 옷 모양은 하후상박(下厚上薄)이라 하는 당시 가장 맵시 있는 옷차림이었어. 속곳, 고쟁이라고 하는 속바지나 속치마들을 겹겹이 입어 치마폭을 더욱 넓게 보이게 만든 것은 물론이지. 치렁치렁한 치마가 걷기에도 불편하고 여름날엔 몹시도 더웠겠지만 멋을 내려면 그런 것쯤이야.

치마 아래로는 작은 버선발을 살포시 내밀었네. 예로부터 작은 발은 손꼽히는 미인의 조건 중 하나였어. 가까운 나라 중국에서는 발을 일부러 조그맣게 만드는 전족(纏足)이라는 고통스러운 풍습이 있었을 정도니까. 옛날 중국 여인들은 서너 살 아기 때부터 헝겊으로 발을 칭칭 동여매고 작은 신발을 계속 신어 기형적인 발을 만들었다니 뭐니.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얘기지.

아무튼 그림 속 여인이 신발을 신지 않은 것을 보면 지금 실내에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겠어. 가냘프고 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잡고 있는 여인을 보렴. 사실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나 자연스럽지 않은 손의 표현이 꽤 긴장되어 보여. 손으로는 저고리 고름에 맨 보석 장식 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그런데 노리개를 찬 옷고름은 어느덧 반쯤 풀려 있고, 가슴께를 꽉 조여 매고 있던 치마끈도 느슨한 걸 발견했니? 금방이라도 치마는 바닥으로 흘러내릴 것만 같은데 시간은 그대로 멈춘 것 같고 방안엔 침묵만이 가득해.

 

 

4장 계절을 즐기는 사람들

 

가을맞이

땀나는 무더운 여름도 잠시, 금세 가을이 깊어 가고 있어. 도성의 멋쟁이들은 이때를 놓칠세라 단풍 구경을 나섰지. 목적지가 있는 바쁜 걸음은 아닌가 봐. 가마꾼의 머리에 단풍 가지가 꽂혀 있는 걸 보면 말이야. 음력 99, 숫자 9가 두 번 겹치는 중구절(중양절)엔 남산의 단풍 구경이 한양 멋쟁이들의 필수 코스였다는데, <휴기답풍> 속 배경이 중구절일 수도 있겠어. 높은 곳에 올라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풍경을 내려다보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을 즐기는 날인 거지.

 

 

<휴기답풍 : 기생과 단풍놀이를 가다>

 

 

그림 속 기생은 뚜껑 없이 가맛바탕만 있는 가마를 타고 있는데 보통 양반집 여인들이 타는 가마와는 모습이 달라. 조선 시대 여성들은 남에게 얼굴 보이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지붕과 창문이 있어 사방이 막힌 가마를 주로 탔거든. 사실 조선 시대에는 천민이 가마를 타는 것이 법식에 맞지 않았어. 그런데도 이렇게 가마 타고 다니는 기생들이 많았다고 해. <휴기답풍> 속의 여인을 봐. 쓰개치마로 머리를 좀 가리긴 했지만, 담배 장죽까지 입에 물고 멋진 청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쌩쌩 부는 가을바람을 머금은 젊은이의 옷이 펄럭이고 있어. 남자는 우연히 오가다 만난 그녀의 매력에 푹 빠졌는지, 가마꾼에게 길을 비켜 주면서도 뽀얀 얼굴의 여성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 같아.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생 혼자 야외 나들이를 나왔을 것 같진 않아. 그럼 두 사람이 다정히 얘기를 나누며 고갯길을 넘고 있는 걸까? 친구들이 보기엔 어때? 이 두 사람은 아는 사이였을까, 아닐까?

그런데 두 남자가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 솔직한 가마꾼을 좀 보렴. 선비를 노려보며 얼굴에 뾰로통한 기색이 역력해. 남녀가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가마꾼의 어깨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거든.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는 가마꾼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봐. 앞에서 가마 맨 사람은 행여 가마가 나동그라질까, 발끝만 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어. 사람들이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 매는 괴로움은 모른다더니, 양반 사회를 통쾌하게 꼬집는 신윤복의 재치가 돋보이는 장면이야.

 

 

5장 신윤복이 우리에게 남긴 것

 

쉬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신윤복의 <송정관폭>이라는 그림도 살펴볼까? 글 읽는 선비들은 관폭, 즉 폭포를 구경하는 것 또한 큰 기쁨이라 얘기했어. 그래서인지 조선 시대 그림 중에는 폭포 구경 장면을 꽤 찾아볼 수 있어. <송정관폭> 아래편 소나무에 둘러싸인 초가 정자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중국의 명산, 여산의 폭포를 보고선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하다라고 읊었던 것처럼, 대자연이 주는 선물은 무척 아름답지. 그림 속에 콸콸 흐르는 물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렴.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는 더위를 이기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가장 고상한 피서법이었던 셈이야.

 

<송정관폭 : 소나무 정자에서 폭포를 바라보다>

 

 

동물 그림에 담긴 의미

이번엔 신윤복이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낸 영모화(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를 만나보자. 닭을 그린 작은 그림 <투계도>. 먹과 채색을 적절히 써서 재빨리 그려냈어. 그림 속 숙달된 필치를 보면 신윤복이 동물 그림도 잘 그렸던 걸 알 수 있지. 닭 아래쪽에 흩뿌린 풀색 점들로 간단히 화면에 입체감을 준 것도 잘 보아 두렴.

<투계도> 속 두 마리 닭은 깃털도 유달리 화려하고, 위세가 당당한 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닭과는 생김이 다른 싸움닭이란다. 투계란 수탉끼리 싸움을 붙이는 놀이, 즉 닭싸움을 의미하거든. 투계는 아시아 전역에서 해오던 오랜 전통을 가진 놀이 풍속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즐겼다고 해. 훤칠하고 사나운 닭을 골라, 싸움을 잘하도록 어려서부터 훈련을 시켰지. 사람 키를 훌쩍 넘을 만큼 잘 날기도 한다는데, 신윤복의 <투계도>에서 닭의 튼실한 다리와 긴 발가락을 보렴. 발 뒤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날카로운 건, 싸움닭이라는 걸 알려 주는 쇠갈고리야. 그리고 화면 상단에는 당나라 문인 한유(韓愈)의 시 한 구절을 적어놓았지

 

高行若矜豪 거들먹 걷는 것은 잘난 척하는 것 같고

側睨如伺殆 곁으로 엿보는 것은 위태로움을 살피는 듯하구나.

 

<투계도>는 두 마리 닭이 서로를 견제하며, 당당한 기세를 자랑하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어. 물론 당시에도 닭이 다치거나 죽기까지 이르는 닭싸움을 저속하고 부끄러워할 일이라 여긴 사람들도 있었단다. 하지만 닭이 싸우는 모습이 여러 차례 그려졌다는 건 당시 투계의 풍속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증거겠지? 그런데 왜 이런 잔인한 놀이를 그림으로 그렸을까 한번 생각해 보자. 조선 시대에는 힘이 다할 때까지 싸우는 싸움닭의 용기를 높이 샀어. 한편으로는 풍속을 즐기는 풍요로운 삶을 드러내려고도 했지. 전쟁이나 가뭄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는 여유롭게 놀이를 즐기기 어려웠을 테니까.

 

 

<투계도> 속의 긴장이 감도는 닭싸움의 순간

 

 

신윤복 이후의 화가들

화가로서 신윤복이 후대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자면, 역시 풍속화에서 큰 의의를 찾아볼 수가 있어. 특히 19세기 유운홍, 백은배와 같은 유명 화원 화가들의 그림에서 신윤복의 선명한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 그림을 사고파는 것이 매우 활성화되었던 시대였던 걸 고려해 보면, 신윤복의 풍속화가 이미 큰 인기를 끌어 그와 비슷한 그림을 소유하고 싶었던 사람이 굉장히 많았던 탓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지.

예를 들어 도화서 소속 화가였던 유운홍이 그린 <기녀>를 봐. 단장하고 있는 여인네들을 소재로 삼은 것이 얼핏 보면 신윤복의 그림인가 싶을 정도야. 하지만 그림 왼편을 자세히 보면 혜원이라는 신윤복의 호 대신에 詩山(시산)’이라는 낙관이 있지. 시산은 유운홍의 호란다.

 

 

유운홍이 그린 <기녀>

 

 

신윤복의 <아기 업은 여인>과 아이의 머리 방향만 다를 뿐, 아기 업은 엄마도 있어. 담뱃대를 문 입에 문 여인이나, 털실 타래처럼 풍성한 머리를 손바닥만 한 거울에 어렵사리 비춰보는 아낙을 보면, 신윤복의 풍속화 속 기생집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고운 옷감을 표현한 색채와 여인들의 얼굴 묘사는 또 어때? 한 줄로 슬쩍 그은 둥근 눈썹, 붉은색으로 점을 찍듯 그린 입술이 꽤나 익숙하게 느껴져.

그런데도 어쩐지 사람들이 무표정한 것도 같고, 생기 없이 심심해도 보여. 왼쪽 벽과 문 모서리처럼 묘사가 어색한 곳도 있지. 유운홍은 두 벽이 만나는 모퉁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보려고 한 것 같은데, 성공하진 못했어. 가운데 머리 만지는 여인의 너무 짧은 오른팔도 마찬가지야. 물론 인물 그림을 그려 본 친구들은 알겠지만, 비례에 맞게 인체를 묘사한다는 건 화가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지.

 

 

김소연 글, 오세정 미술 놀이, 신윤복 색으로 물들인 조선 풍경, 다림, 2018

 

오세정 안녕? 나는 즐거운 미술놀이를 준비한 오세정이라고 해. 성균관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현재는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라시엘아트를 운영하고 있단다.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지도하면서 미술 심리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최근에는 건국대학교에서 진행하는 미술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지. ‘예술가들이 사는 마을시리즈 중 미켈란젤로의 미술놀이를 맡기도 했어.

 

김소연 반가워. 나는 이 책을 쓴 김소연이라고 해.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회화사를 전공하며 박사 과정을 마쳤어. 같은 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려 많은 어린이들을 만나기도 했지. 지금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조교수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우리나라 미술을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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