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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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완역 두보전집≫ 제12권 【두보형상시기시역해 1】강민호 김성곤 외 역해
- [보도자료]
- 2026-05-02
≪정본완역 두보전집≫ 제12권 【두보형상시기시역해 1】강민호 김성곤 외 역해
두보시 역해, 새로운 천 년의 역사를 쓰다.
21세기의 ≪두시언해(杜詩諺解)≫를 만난다!
“조선과 중국의 역대 역해서들의 주석을 참고하되, 역해자들의 공동 토론을 통하여 가장 합리적인 해석을 도출한다. 우리 역해서의 목적은 ≪두시언해(杜詩諺解)≫ 이후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반영한 두보시 번역본을 완성하는 것이며, 나아가 중국 고전 번역의 새로운 전범을 확립하는 것이다.”
머리말
이 책은 한국두시학회 두시독회의 12번째 역해서이다. 그동안 본 모임에서는 두보의 시를 창작 시기별로 일정한 분량을 묶어 ≪두보 초기시 역해 1≫, ≪두보 초기시 역해 2≫, ≪두보 위관시기시 역해≫, ≪두보 진주동곡시기시 역해 ≫, ≪두보 성도시기시 역해≫, ≪두보 재주낭주시기시 역해≫, ≪두보 2차성도시기시 역해≫ ≪두보 기주시기시 역해 1≫, ≪두보 기주시기시 역해 2≫, ≪두보 기주시기시 역해 3≫, ≪두보 기주시기시 역해 4≫를 번역 출간해 왔다. 본서는 그 뒤를 이어 ≪두보 형상시기시 역해 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보는 대력(大曆) 3년(768) 초봄에 드디어 기주를 떠나 삼협을 나왔다. 장강을 따라 내려와 형주(荊州)인 강릉(江陵)에 머물다가 공안(公安)을 거쳐 세모에 악주(岳州)에 이르렀다. 대력 4년 정월에 악주를 떠나 상수(湘水)를 따라 담주(潭州), 형주(衡州)에 갔다가 여름에 담주로 돌아왔다. 대력 5년에 장개(藏玠)의 난이 일어나자 다시 형주(衡州)로 들어갔다. 이어서 침주(郴州)에 가서 외숙인 최위(崔偉)에게 의지하려 했지만 뇌양(耒陽)에서 홍수로 뱃길이 막혀 담주로 되돌아왔다. 이해 가을에 뱃길을 이용하여 북쪽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배 안에서 생을 마쳤다.
이처럼 두보는 생애의 마지막 3년 동안 형주(荊州)와 상수 일대를 배를 타고 떠돌았다. 그래서 이 시기를 형상(荊湘) 시기라고 부른다. 두보의 시에 대한 열정은 만년의 이 고달픈 시기에도 식지 않았다. 기주시기에 극도의 완숙과 변화를 보인 두보의 시는 이 형상 시기에 이르러 마지막 찬란한 불꽃을 피운다..
≪두보 형상시기시 역해 1≫은 형상 시기의 전반부인 대력 3년 봄에서 대력 4년 여름에 해당하는 시기의 88제 93수의 시를 수록하였다.
2. 行次古城店泛江作不揆鄙拙奉呈江陵목幕府諸公
가다가 고성 객점에서 묵고 강에 배를 띄우며 짓고는 졸렬함을 헤아리지 않고 강릉 막부의 여러 공들에게 받들어 바치다
늙은 나이에 늘 길바닥
느린 햇빛에 다시 산천.
하얀 집*은 꽃 핀 속이요
외로운 성은 보리 이삭 옆.
강을 건너니 원래 절로 넓고
물을 내려가니 힘들여 끌지 않습니다.
바람 앞 나비는 부지런히 노에 붙고
봄 갈매기는 배를 피하지 않습니다.
군왕郡王 가문은 덕업이 높고
절도사 막부에는 재현才賢이 많습니다.
나그네 몰골에 병조차 많아
창망히 벗님들 앞에 왔습니다.
* 하얀 집[白屋] : 하얀 띠풀로 지붕을 이은 집. 여기서는 객점을 가리킨다.
☞ 협곡을 나와 강릉 가까운 고성의 객점에서 묵고 배를 띄워 강릉으로 가면서 지었다.
13. 歸雁
돌아가는 기러기
듣건대 올봄 기러기는
남쪽 광주에서 돌아갔다 한다.
꽃을 보고 창해를 떠났거니와
눈을 피해 나부산까지 간 것이겠지.
이 새는 전쟁의 기운과 관계있으니
언제 나그네 시름에서 벗어날까?
매년 서리와 이슬이 내리지 않아
가을에 오호*를 지나지 않았는데.
* 오호(五湖) : 동정호(洞庭湖)를 말한다.
☞ 이 시는 대력 3년 봄 강릉에서 지은 것이다.
24. 舟中
배 안에서
강 버들 아래에서 바람 맞으며 밥 먹고
역참 누각 옆에서 비 내리는데 누웠네.
뱃줄을 묶으니 물고기 그물이 줄지어 있고
돛대를 이으니 곡식 운반선과 나란하네.
오늘 아침 구름은 가늘고 옅은데
어젯밤 달은 맑고 둥글었지.
이리저리 떠도는 남쪽 지역의 늙은이
그저 응당 수선을 배워야지*.
* 학수선(學水仙) : 수선을 배우다. 수선을 흉내내다. 수선은 물의 신으로 하백(河伯)을 가리킨다. 계속 물에서 살겠다는 뜻.
☞ 이 시는 대력 3년 배를 타고 떠돌던 중 지은 것으로, 어선과 곡식 운반선에 섞여서 풍찬노숙하는 감회를 적었다.
33. 舟出江陵南浦奉寄鄭少尹審
배가 강릉의 남쪽 포구를 나가자 강릉소윤 정심에게 받들어 부치다
또 어디에 의탁하려 하기에
표연히 이 도읍을 떠나는가.
몸은 원래 흙과 나무로 된 것인데
배를 저으며 또 강호를 떠돈다네.
사직에는 요사스러운 기운이 감돌고
방패와 창이 늙은 유자를 보내버리는데.
백 년 평생 버려진 물건과 같고
만국에는 모두 막힌 길이구나.
비가 씻어내려 너른 모래사장은 깨끗하고
하늘이 머금은 드넓은 강기슭은 구불구불한데,
우는 쓰르라미가 물에 뜬 나무토막을 따라가고
떠나가는 제비가 가을 줄풀에서 날아오르네.
머물 곳을 의탁하지만 편히 눕기 어렵고
굶주림과 추위에 모퉁이를 향하도록 내몰리지만,
서로 불어주는 거품이 없고
은혜에 보답할 구슬이 아득하네.
넓은 바다에 고래의 물결이 일렁이고
형양에는 기러기 그림자가 지나가는데,
남쪽으로 가면 걸상을 걸어놓았나* 물어보고
동쪽으로 가면 뗏목 탈 일을 생각하겠지.
처량한 노래 들어준 것을 외람되이 생각해보고
변화가 형벌에 눈물 흘렸던 일**을 때때로 근심하지만,
지나가는 곳마다 정 씨의 역참***을 기억하리니
외로운 나그네 마음에 술을 따라 주었지.
* 현탑(懸榻) : 걸상을 걸어놓다. 서치의 고사를 이용한 것이다. ≪후한서(後漢書)・서치전(徐穉傳)≫ : 당시 진번이 태수가 되었는데 예로써 그를 공조에 기용하길 청하자 서치가 거절하지 못하고는 배알만 하고 물러났다. 진번이 군에서 빈객을 맞이하지 않았는데 오직 서치가 오면 특별히 걸상을 하나 준비하였다가 떠나면 걸어놓았다.
** 변화가 형벌에 눈물 흘렸던 일卞泣誅(변읍주) : 변화(卞和)가 울면서 형벌을 받다. 변화는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옥박(玉璞)을 얻어서 여왕(厲王)에게 바쳤지만 돌이라고 판정되어 한쪽 다리가 잘렸고, 무왕(武王)에게 바쳤지만 또 돌이라 판정되어 한쪽 다리가 잘렸다. 문왕(文王)이 즉위한 뒤 그는 옥박을 껴안고 형산(荊山)에서 울고 있었는데 문왕이 그의 사연을 듣고 옥박을 가공하게 하니 보물 옥을 얻었다.
*** 정역(鄭譯) : 정당시(鄭當時)가 설치한 역참. 정당시는 한나라 경제(景帝) 때 태자사인(太子舍人)이 되었는데, 장안의 여러 교외에 역참을 설치하여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배웅하였다. 여기서는 정심이 객에게 후대한 것을 가리킨다.
☞ 이 시는 두보가 대력 3년 가을 강릉을 떠나 공안으로 가던 중에 지은 것이다.
46. 久客
오랜 나그네
떠돌아다녀서 교유의 실태를 알고
오래 머무르자 속인의 마음이 보인다.
시든 얼굴 그저 자신이 우습구나
조그만 서리들이 가장 깔본다.
서울 떠나 왕찬을 슬퍼하고*
시절 아파 가의를 곡하노라.**
여우와 이리야 말해 무엇하리
승냥이와 범이 막 날뛰거늘.
* 서울 떠나 왕찬을 슬퍼하고 : 한나라 말기에 서경이 어지러워지자 왕찬은 떠나서 형주 유표에게 의탁하였다. 去國(거국) : 서울을 떠나다. 王粲(왕찬) : 후한 때의 문인.
** 시절 아파 가의를 곡하노라 : 이때 흉노가 강성하여 변경을 침범하였다. 천하가 갓 평정되어 제도가 엉성하여 제후 왕이 참람한 짓을 하고 땅은 옛 제도를 초과하여 회남 제북의 왕은 모두 반역하다 주살되었다. 가의는 여러 번 상소하여 정사를 진언하여 바로 세우려는 바가 많았다. 賈誼(가의) : 전한의 문인.
☞ 나그네로 오래 떠돌면 염량세태를 절로 알 수 있다. 늙어서 푸대접에 익숙해져 자조의 웃음도 나오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조그만 권세를 가졌다고 나대는 서리 소인배들이다. 옛날 왕찬(王粲)은 서울(서경)에서 견디지 못하고 행주로 갔고, 가의(賈誼)는 시국을 바로잡고자 글을 올려 통곡하였다. 지금도 그때처럼 반군과 외적이 날뛴다. 그러니 나를 무시하는 저 소인배들이야 무어라 말할 게 있으랴. 광덕 2년 광주에서 지었다고는 하지만, 대력 3년 강릉 공안 일대에서 지은 것으로 본다.
# ≪두시상주≫ : 위 4구는 나그네 상황이요, 아래 4구는 감회이다.
56. 登岳陽樓
악양루에 오르다
예전부터 동정호를 들었는데
지금에야 악양루에 올랐다.
오 땅과 초 땅은 동남으로 갈라졌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떠 있구나.
친척과 친구는 한 글자 소식이 없고
늙고 병든 이 몸은 외로운 배만 있는데,
전마가 관산 북쪽에 있기에
난간에 기대어 눈물 콧물 흘리노라.
* 吳楚東南坼(오초동남탁) : 오 땅과 초 땅이 동정호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있다는 말이다.
≪구두집주두시≫ 조차공 주 : 동정호의 광활한 형상을 사실적으로 말한 것이다.
≪두시경전≫에 인용된 고신(顧宸)의 주 : 동정호는 오 땅의 남쪽, 초 땅의 동쪽에 있다.
☞ 이 시는 대력 3년 겨울 악양루에 올라서 경관을 바라보며 지은 것이다. 악양루에서 바라본 천지는 드넓기만 한데 전쟁으로 인해 지인과 소식이 끊어진 채 외로워하는 심정을 표현하였다.
69 早行
아침 일찍 길을 떠나다
노래와 통곡 소리가 모두 새벽에 들리는데
멀리 떠남에 기한과 노정이 있네.
외로운 배는 어제 같고
듣고 보는 것이 다 같은 소리네.
나는 새는 자주 먹이를 구하거니와
물속의 물고기는 어찌 그리 유독 놀라는지.
이전의 왕이 그물을 만들었더니
잡는 법*을 설정하여 생물을 헤쳐서라네.
푸른 마름이 무성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돛을 높여 종일토록 가야 하리.
전쟁 중이라 읍양(揖讓)**을 못 할 시절이고
다급한 상황이라*** 그런 마음이 쓰이네.
* 잡는 법設法(설법) : 물고기 잡는 법. 가렴주구하는 수법을 비유한다.
** 揖讓(읍양) : 읍하여 사양하다. 예절을 지키다.
*** 다급한 상황이라崩迫(붕박) : 절박(切迫). 전쟁으로 다급하고 절박한 백성들의 상황을 말한다. 두보의 상황으로 보기도 한다.
☞ 이 시는 대력 4년 봄에 담주(潭州)에서 형주(衡州)로 가는 도중에 지은 것이다. 매일 아침 일찍 출발할 때 들은 노래와 통곡 소리로 시상을 일으키고, 새와 물고기로 자신과 백성들의 처지를 비유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다급하고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81. 北風
북풍
봄날 남극의 장기가 생기니
날씨가 북풍을 기다려 소생한다네.
저물녘 지는 해가 어둑하더니
초경에 바람이 천지를 두드리네.
낮고 습한 땅에 상쾌함을 가져오고
동정호에서 소리를 뽑아올리는 듯.
만 리에 어룡은 엎드리고
삼경에 조수는 울부짖네.
장기를 씻어 주니 물결을 깨치며 나아갈까 욕심내지만
뱃길이 심히 걱정되나니 마른나무 꺾이는 정도로 치부할 수 있으랴.
지독한 더위가 무겁게 남아 있으니
서늘한 기운이 왕왕 필요하다네.
잠시 폐병이 누그러졌음을 알겠거니
위험한 뱃길을 원망할 수 있겠는가.
이틀을 묶어 뱃사람을 귀찮게 하고
노쇠한 얼굴이 어떠냐 종에게 묻네.
오늘 새벽 풍랑이 그리 심하지 않으니
편한 길을 외려 길게 달려가게 되리라.
안석에 기대어 돛을 바라보니
구름 낀 산이 자리 옆에서 솟아나네.
☞ 이 시는 대력 4년 봄 악주에서 장사로 가던 두보가 동관저(銅官渚)를 출발하여 남으로 신강강(新康江) 어귀에 이르러 거센 바람을 피하던 때에 지은 작품으로 보인다. 원주에 “신강강 어귀에서 이틀을 묵고 비로소 출발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88 奉送韋中丞之晉赴湖南
중승 이지진이 호남으로 가는 것을 받들어 전송하다
천자의 은총으로 황패를 곧 불러 드릴 상황인데*
임시방편으로 구순을 빌려주는 일**이 잦습니다.
호남은 물 등진 곳을 편안히 여길 터
협내***에서는 봄에 다니시던 것 기억합니다.
왕실에 여전히 병고가 많아
창생****이 큰 신하를 의지하고 있으니,
또 서유자의 걸상을 가지고
곳곳에서 현인을 접되 하시겠지요.
* 징황徵黃 : 황패(黃霸)를 부르다. 여기서 황패는 위지진을 비유한다.
** 구순을 빌려주는 일借寇(차구) : 구순(寇恂)을 빌려주다. 여기서 구순은 위지진을 비유한다. 위지진이 협내에서 형주자사로 옮기게 된 것을 말한다.
*** 峽內(협내) : 촉 지역을 가리킨다.
**** 蒼生(창생) : 백성.
☞ 이 시는 호남으로 부임해 가는 위지진을 전송하며 지은 것으로 앞부분은 위지진을 칭송하였고 뒷부분은 왕실에 변고가 많아 위지진의 책임이 막중함을 말하면서 동한의 진번(陳蕃)처럼 현인을 예우하라고 면려하였다.
◎ 강민호 김성곤 외 역해, ≪정본완역 두보전집≫ 제12권 【두보형상시기시역해 1】,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