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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으악새 우는 사연≫-「우리 동네……」 連作小說集-이문구

  • 작성자김동민 이메일
  • 작성일2026-02-12 17:10
  • 조회197
  • [보도자료]
  • 2026-02-12

우리 동네, 으악새 우는 사연-우리 동네……」 連作小說集-이문구

 

 

김동민, <이문구 소설로 본 1970년대 한국 농촌과 농민>, 상경학보24, 1980

* 김동민-전남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3

* 2026 수정 전재

 

 

 

우리는 70년대 들어와 그동안 꾸준히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 과정에서 농업부문이 비농업부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성장이 뒤졌다는 것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농촌의 농민들은 어느 정도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환경이 개선되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도 어떤 소외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 이문구 씨의 우리 동네 연작 단편 소설속에 나타나는 70년대 한국 농촌 현실을 살펴보려고 한다. 소설은 허구의 세계이며 가공의 세계이다. 그러나 문학이 남의 삶을 통하여 나의 삶의 공간을 넓혀 준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인식의 범위를 넓힐 수 있으며, 추상적으로 느낀 현실을 구체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의 세계라는 점에서 작가의 주관이 현실의 객관을 넘어서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동네 연작 단편 소설하나하나를 통해서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직감과 경험의 세계로 구체화된 70년대의 우리 농촌과 농민의 생활을 볼 수 있다.

 

 

김은 농약 우린 물을 김칫국이랍시고 먹는 도시 사람들에게도 책임의 절반을 물어야 한다고 믿었다. 배추 잎새에 벌레 지나간 자국이 뚫려 있거나 진딧물이 붙은 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먹는 사람들은 벌레 기미가 있을 듯한 채소라면 진저리를 쳐가며 제쳐놓고 매끈한 것만 첫째로 여긴다. 장사꾼들도 양잿물로 씻었건, 농약에서 건졌건, 아랑곳없이 물건이 깨끗한 것만 찾는다. 한 푼이라도 더 벌자면 농사꾼도 장사꾼 눈에 드는, 아니 직접 먹는 실수요자의 취향과 선호도에 맞추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어수룩하게 안 보이는 사람들의 먼 장래 건강까지 걱정하며 농약, 극약을 피해 영농한다면, 결국 이쪽으로 돌아오는 것은 다만 실농이 있을 따름이었다.(<우리 동네 황씨>)

 

하지만 도시 사람들은 곧 물건이 깨끗한 것은 이제 농약이 묻었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벌레 먹은 것, 진딧물이 붙은 것을 찾게 되었다. 그리하여 잘사는 도시 부자들은 주식인 쌀까지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것을 찾게 되었으며, 일부러 농촌에 내려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농사를 짓도록 직접 농민에게 부탁까지 하게 되었다. ‘실농하지 않기 위하여 비싼 농약에 중독되어 쓰러지면서까지 농사에 열을 올리는데 이 같은 사실이 신문에 발표되자, 농민들은 어떤 이질감과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고도성장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현실과 상품경제의 침입으로 농산물과 공산품의 부등가 교환에서 무의식적으로 손해 본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특히 농촌으로 흘러오는 게면 열의 예닐곱이 불량 제품이구 가짜이고 보면 70년대 초부터 불기 시작한 근대화 바람이 농민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손해 본 사람이 있으면 덕을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앞다투어 근대화를 주장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 동네 장씨가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원래 장씨는 논 닷 마지기가 있어 고작 조석이나 대어왔을 따름이었다.”(<우리 동네 장씨>) 그러던 것이 한때 유행이던 부동산 투기 경기를 탔다. 일구칠칠년 따지기 때 평당 보리쌀 한 되씩 쳐서 백삼십만 원 준 것을 그대로 묻어두었다가 한 평에 쌀 한 말 금새로 받았으니, 그 사천삼백만 원은 이태 만에 사십 배 장사를 한(<우리 동네 장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운수소관이 아니었다. 부동산 투기업자들이 떼를 이루어 온 근거에 따라 전매행위가 한 고등에 이르렀을 이르기를 기다렸었고, 드디어 막차 타는 듯한 기미가 보일 만해서 처분해 버린 꾀가 곧바로 제 구멍을 찾았을 뿐이었다.(<우리 동네 장씨>)

 

그래서 이제 그 돈으로 천옥동에 가서 점심을 먹고”, “양요리 관광을 하고”, “경양식과 외식집을 번갈아 드나들며 반주로 맥주를 곁들이며 사는 근대화된 생활을 즐기게 된 것이다.

농사꾼인 장씨가 농사는 짓지 않고 부동산 소개업자가 되어 이렇게 살아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농가가 영세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에도 그런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근대화된 농촌에서는 근대화와는 거리가 먼 농민들 간에 용어 사용에 시비가 붙은 경우가 있다.

 

일 헥타르는 천 평입니다. 앞으로는 이백 평이니 말가웃지기니 허구 전근대적인 단위는 사용을 삼가주셔야 되겠다이겝니다.”

말 허리를 끊으며 김이 말했다.

이 바닥에 헥타르를 기본 단위로 말할 만치 땅 너른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이게유.”(<우리 동네 김씨>)

 

이렇게 좁은 농토에서 1년 동안 땀 흘러가면 농사를 지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리는 돌아앉아 책상 서랍에서 수첩을 꺼내놓고 다시 한번 그믐날까지 갚지 않으면 안 될 돈을 조목별로 훑어보았다.

하이닥크 입제, 모게산도 입제, 아비로산 입제제초제 대금 9,500

다찌가렌, 바리다마신, 호리치온, 다이야지 논유제, 엘산 다이야지 논입제병충해방제 대금 계 12,000

복합비료, 규산질, 용성인비비료 대금 계 57,000

불도저 사용료 200,000

텔레비, 전자자, 선풍기, 전기밥솥 대금 계 187,000

총계 465,500

먹매나 마찬가지로 농약과 비료는 매년 비스름하게 든 터였으니, 한 해 영농 빚이 팔만여 원 돈이 낫다면 남들에 비해 그리 많다 할 것이 아니었다.(<우리 동네 리씨>)

 

한 해 농사를 지어 영농 빚이 자그마치 팔만여 원 돈이다. 이렇게 한 해 농사가 적자를 면치 못하니 농사에 진저리를 치기는 돈 있는 장씨도 마찬가지였다. 농민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수지 타산 생각허면 농사지을 놈 하나 웂어. 예서 서울 한 번 댕겨오는 디두 돈 만 원은 표두 안 나게 질바닥에 까는디, 그 생각허면 워느 뒤루 나온 자식이 일 년이면 예닐곱 달을 논바닥에 엎드려 살겄나?”(<우리 동네 최씨>)

 

이렇게 해서라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무엇을 하겠는가. 농사를 그만두고 도회지에 올라가 봤자, 변두리에 집 하나 얻어 두고 시장터에 나가거나 아니면 리어카를 끌던지 하면서 날품팔이 노동자로서 먹고 살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게딱지만 한 땅에서 농사지어 자식 놈 키워 공장이란 곳에 취직시켜 놓으면 어떠한가.

 

그녀 월급은 생활비라기보다 죽지 않고 도둑질 않고 화냥질하지 않도록 달래는, 새알꼽재기만 한 미끼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공원들의 희생을 자본화하려는 고용주 횡포 그것이었다. 고용주 횡포는 기본 급여의 인색만으로 그친 것도 아니었다. 명순이 말이 그대로라면, 삼십 분 이르게 출근시키고 삼십 분 늦추어 퇴근시키는 억지를 부리며 수당이 없는 잔업을 강요하였고, 여공들의 생리 휴가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다는 거였다.(<우리 동네 최씨>)

 

따라서 농사를 그만두지도 못하고 땅 팔아서 도회지에다가 구멍가게라도 낼 수 있으면 모르지만(농사지어서는 자식 놈 대학을 못 보내지만, 구멍가게 하나 하면 자식 대학 하나 문제없다 하지 않는가) 좁은 땅을 가지고 농촌에서 계속 살려면 우리 동네 최씨처럼 고지(告知, 당사자 일방의 의사 표시에 의하여 임대차, 고용, 위임, 조합과 같은 계속적인 계약관계를 종료시켜 장래에 향하여 그 효력을 소멸시키는 일)라도 낼 수밖에 농민들은 다른 도리가 없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최는 올해도 성낙근이네 다랑이논 서른 마지기를 고지낼 수밖에 없어 이미 여러 날 전부터 말이 오가는 중이었으나, 이리저리 삐끗거리지만 하고 쉽사리 메지가 나지 않았다. 성이 작년 금으로 치자고 고집하면서 한 마지기에 닷 말 이상은 못 주겠다고 버티는 까닭이었다.(<우리 동네 최씨>)

 

한 마지기에 닷 말이라면 알기 쉽게 추수의 육분의 일이 최의 몫이어서, 매년 품앗이와 홀앗이로 농사를 지어온 최로서는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논 임자가 비료와 농약을 대주기는 하지만 놉이 귀해 날 맞추어 사 쓰기도 힘들뿐더러 품삯마저 이천 원으로 부쩍 뛰어버렸으므로, 하루 다섯 끼의 먹매와 담뱃값을 합치면 허리가 휘청하던 것이다.(<우리 동네 최씨>)

 

그러나 최씨는 주저할 수가 없어서 여러 번 성낙근을 만나 사정하였다 결국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야 겨우 성낙근이네 다랑이논 서른 마지기를 고지낼 수 있었다.

 

별소리를 해두 한 마지기에 닷 말은 심이 안 닿는다 이 얘기여. 집엣논 서른 마지기 부쳐봤자, 오삼은 십오, 제우 쌀 열댓 가만디, 요새 쌀금으로 삼만 원씩 잡아봐. 사십오만 원밲이 더 되여? 그러면 한 달에 얼마 꼴인가? 삼만 칠천여 원…… 사내 월급 삼만 칠천 원이면 식모 월급에두 훨씬 못 미친다 얘기여.”

 

내 얘기를 진드근히 들어. 딱 부러지게 말해서 짚을 몽땅 줄께. 요새는 비육우 허는 사람이 늘어서 지푸래기가 달리는 판이라. 되내기해서 돈 사봐. 션찮은 통일쌀 두어 가마에 대겄나.”

 

그러구 소를 부려.”

 

오늘 날짜루 가을갈이헐 때까장 맘대루 틈 에워 쓰란 말여.”(<우리 동네 최씨>)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 덕분에 돈을 번 우리 동네 장씨가 농사를 계속하거나 농업에 그 돈을 투자하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장씨는 한 번쯤 기계 영농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기계 영농에 의한 소득 증대라고 주위에서 떠들어대니 말이다. 그러나 트랙터 한 대 값이 쌀로 여든 가마나 되며, 값이 가장 덜 한다는 동력 탈곡기라 하는 것도 구입해 놓고 보면 보리 때 한 사날, 벼 때 가서 대엿새 쓰면 일 년에 삼백쉰 날은 헛간 신세나 져야 하니 기계 영농한답시고 무작정 달려들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장씨는 생각했다. 혹은 장씨가 고속도로나 국도변에 경작지를 가지고 있다면 해마다 농번기를 무난하게 넘기니 그래도 농사를 계속했을지 모른다. 그것은,

 

이른바 중앙의 윗사람이나 지방 관리들의 왕래가 잦은 고속도로나 국도변에 농토를 가진 농가의 농사는 매양 남의 손으로 거저 짓다시피 한다. 그들은 이양기의 한고등이 이울도록 논에 물만 실어놓고 묵힐 듯이 내버려둔다. 올 같은 가뭄이 없는 해라도 관공서 공무원이나 학생봉사대가 제 발로 찾아와 모를 심어 주기 때문이다.(<우리 동네 정씨>)

 

그것도 아닌 마당에 농사에 진저리를 치는것이 장씨로서는 당연하다.

 

농협과 단위 조합에서부터 축산조합, 원예조합, 엽연초 생산조합, 산림조합, 나아가 농촌지도소까지도 농사꾼들 스스로 일꾼을 뽑아, 농업정책과 농산물의 제값이 농민으로부터 나오게 하고, 농사는 농사꾼의 것임을 분명히 하여 영농의 자유가 보장되며, 정부의 미덥지 못한 통계를 바탕으로 한 농축산물의 무모한 수입 정책을 중단함은 물론, 집권자의 업적선전에 목적을 둔 눈비음행정과 거리의 농업이 이에서 그치고, 갈피 없는 유통구조의 외면이나 무관심에 의한 농촌의 희생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기 전에는, 여태껏 몸서리나게 받아온 차별과 업신여김을 팔자소관으로 돌려가면서까지 그대로 농사에 매달려 덧없이 죽어날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우리 동네 장씨>)

 

장씨는 농민을 돕기 위해 설립했던 조합이 농민들을 상대로 그동안 어떻게 했는가를 알 알고 있다.

 

(변이 말했다.)

우리에게서 조합에 진 빚이 이천이백만 원 돈이라구 안 허다? 그런디 연대보증 슨 내가 그 지랄을 안 하면 어느 누가 너름세 좋아설랑은 제 발루 댕기메 해결허겄나? 생각적인 측면으루다가 따져봐. 입춘이 니열모리여. 슬 세면 고대 우수 경치 아녀? 우수물 지구 나면 두엄 져낼라, 봄부치(봄 채소) 부칠라…… 원제 장구 치구 북 칠텨? 그러다 보면 보온 못자리 허메 일변 비료농약 챘을 텐디, 그때 가설랑은이 또 조합돈 좀 쓰게 해 달라구 있는 집 웂는 집 죄 나래비 슬 것 아녀? 그래 묵은 이자 새끼 쳐가메 또 조합돈 쓸겨? 내 인장은 사거릿집 미스 박이여? 아무나 대주게. 내가 저 하늘이나 등기냈다면 모르까, 무슨 조상 믿구 또 빚보인 슨다냐? 올해 빛덜 안 갚으면 내년에는 내 도장 이름두 승두 모를 중 아셔들.”

변은 정말 그럴 결심인지 솔은 얼굴로 물러앉았다. 그러자 삼반 반장 이낙필이가 변을 역성 들어

웃으면서 마감 지키구 필요헐 때 다시 쓰자는 말두 못 들었어? 오늘 갚구 니열 되쓰더래두 제날짜에 갚으야 조합도 살구 나두 사는겨.”

이어서 이의 맞은편에 앉았던 정승화가 남의 뒷밀이로 나섰다.

영농자금 대출이 많아 조합운영이 부실해진다는 건 말두 아니구 되두 아녀. 원제는 조합이 우릴 살렸간, 우리가 조합 살렸지.”

부실허다뉴?”

저쪽 상에서 변에게 잔을 넘기던 지 서기가 돌아보며 캐었다.

농민덜이 조합을 살려유?”

영농자금 대부가 많아서 조합이 자립을 못 헌답디다? 나두 들은 소리가 있길래 허는 소리유.”

정이 음성을 숙이며 대꾸하자 지가 뼛성 있는 어조로 뒤를 이었다.

그럼 농민덜만 상대헌 조합치구서 된다는 조합 봤걸랑 워디 얘기 좀 해보슈.”

리는 지의 말본새가 거슬려 듣고만 있기가 거북했다. 리는 상에서 물러앉으며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그럼 조합의 태도가 됐구먼? 농민덜이 돈 좀 쓰자면 까닭스럽게 굴고, 마감두 안 돼서버텀 싸게 갚으라구 디립다 닦달하는 게 됐어? 우리헌티는 그따위루 몹시 허구, 장터 장사꾼덜헌티는 가량 웂이 굽실대가메, 조합돈 좀 써주슈 써주슈 하구 자금의 태반을 장사꾼덜헌티 빼돌리는 게 됐어?”

얼라, 그 양반 참 되게 침침허네. 즌기 들어오는 동네가 왜 이리 어두워? 그럼 조합이 살려면 농민덜헌티 장기 저리 대부를 해야 쓰겄수, 아니면 회전이 빠른 상인덜헌티 대부해줘서 자금을 활성화시켜야 되겄수?”

지가 리쪽으로 돌아앉으며 밤샘으로 충혈된 눈을 겨누었다.

리는 욱하고 넘어오는 것을 눌러 참고 말했다.

워떤 늠이 숟갈 모자라 애 구만 낳는다고 하더라더니…… 그렇걸랑 간판을 갈으야지. 신용금고라구 바꿔달으셔.”

얼라, 원제는 금융기관이 아니었남유.”

그건 그래. 그렁께 당초에 우리 같은 논두렁을 상대루 돈 장사를 시작했으면 논두렁만 상대루 해야 되잖겄느냐 이 말여.”

그러면, 그렇다구 무뎁보루, 봄에 쓰나 여름에 쓰나 슫달그믐에두 갚을 둥 말 둥 헌 농민덜만 상대루 대부허면 배겨나겄구먼유? 농민덜은 조합에 대해서 헐 말이 읎어유. 증 이러니저러니 시비헐라걸랑 그만치 출자를 허셔. 올해 관향리 주민이 내놓은 출자금이 얼마나 되는지 아슈?”

조합이 개인 회사여? 출자금을 따지게…….”

리는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지도 언성을 돋우었다.

이 자리에 앉어 기시니께 면찬이 돼서 안 됐지만 성낙근 씨가 베 한 가마, 배경춘 씨가 만 오천 원, 한상만 씨 이만 원, 여기 이장이 베 두 가마…… 다 해서 칠만 천 원이유. 농가가 칠십이 호나 되는 동네에서 칠만 천 원 출자라구유. 그런디 융자는 얼마나 해갔슈? 이천이백만 원…… 그래도 할 말 있슈?”

지는 옆에 있던 덕용 성냥으로 방바닥을 두들겨가며 떠들었다.

변이 조용해 달라고 한쪽 눈을 거듭 찡긋거렸으므로 리는 음성을 가라앉혀 말했다.

, 괜찮은 말을 공중 말 안 같게 허느라고 심쓰네그려. 여보, 농민덜 형편에 그 이상 얼마나 더 출자를 허야겄수? 조합이 여적지 누구를 상대루 장사해 왔간디? 비료 살 적마다 한 푸대에 백 원씩 출자금을 떼온 건 뭐구, 필요 웂다는 비료 강제루 끼어판 건 뭐여?”

……

왜 대꾸가 웂수? 우리네헌티 농약을 팔어두 특정 회사 것만 판 건 뭐구, 우리네헌티 소굼, 새우젓을 이자까장 붙여서 외상놓은 건 뭐여? 장사를 해두 꼭 딸라 장사를 허야 조합이 되겠더라 이게여?”

……

왜 대꾸가 웂수? 나만 해두 이십 년 농민인디, 이 이십 년 농민 금년 추수가 월만지 아우? 까놓구 말해서 뒷목까냥 싹 쓸어담은 게 쌀 스무 가마여. 요새 쌀금이 월맙디야? 이만 육천오백 원이지? 알기 싫게 따져봐두 열 가마면 이십육만 오천 원이구 스무 가마면 오십삼만 원…… 이게 뭐여? 중견 사원 두 달 월급여. 지 서기두 아다시피 일 년 내내 몸 달어봤자 남는 건 겨하구 지푸래기뿐인 게 농민인디, ? 출자를 혀?”

……

이런 사람덜 상대루 장사를 허야만 조합이 살겄구먼? .”

장사야 워디 누구 배부르자구 허나유. 여기서는 위서 시키는 대루만 허면 구만인걸유.”

그게 대답이라구 허여?”

특정 회사 제품이라구 허시지만 농약 회사만 해두 이백오십 군뎁디다. 이백오십 군디서 이름만 달리 붙여서 파는 약을 농민덜이 워치기 알구 사쓰것수. , 농민덜 편의롭자구 조합이 선별해서 파는 겐디, 그게 워째 흠이 된대유?”

그려? 그러면 특정 회사 제품만 파는 것두 우리 같은 논두렁을 위해서 그런다고 칩시다. 그런디 왜 장난을 허는 겨? 병충해 방제약 허면, 논에 찌얹다가 남으면 고추나 배추에 찌얹구, 열무밭이나 원두밭에 찌얹다가 남으면 논에두 찌얹고 허게, 전답에 두루 쓰게 된 약을 갖다 놔야지, 왜 꼭 쓰다 남으면 내버리게 농약 따루, 밭약 따루, 벌레약 따루, 병약 따루, 한 군디밲이 못 쓸 약만 갖다 놓느냐 이게여?”

그야 여기서 워치기 알어유. 여기서는 위서 시키는 대루만 허면 구만인걸유.”

그 위서 시키는 대루만 허면 구만이라는 생각이 문젠겨.”

우리도 월급 받구 살자니 벨수 웂시유.”

얼른 뒤집어져야지…….”(<우리 동네 리씨>)

 

그리고

 

농협에서 씨앗 사다 심은 보리만 수매를 헌다는 게 말이 돼유? 그럼 작년 가으내 직원들 내보내여 파종 면적 넓히라구 지지구 볶은 건 뭐여? 순전 비료, 농약 팔아먹자는 꾀밲이 더 돼유?

 

말허나마나 조합이 아무리 중개상으루 타락했기루서니, 그러콤 농민들에게 앙갚음을 안 허면 실적을 못 올린다는 겨? 아는 사람네 구멍가게두 안 팔어줬다구 싫어하는 벱이 없는디, 뎁세 조합이 죄 물건 안 팔어줬다구 농민을 웬수대여? 드런 것들 뵈기 싫어서라두 얼릉…….

 

조합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우리 동네 장씨가 애써 생산해 놓은 농산물 가격은 어떻게 되었는가. 70년대 계속된 저곡가 정책과 외국 농산물의 수입은 장씨의 농산물 가격을 땅에 묶어 놓았다.

 

마늘은 장가들고 처음 보는 어거리풍년이었다. 그러나 장을 한번 보아온 길로 그녀는 마늘을 거두려 들지 않았다. 심던 무렵만 해도 한 통에 백 원 안으로는 만져를 못 본 귀물이었건만, 막상 거둘 차례에 이르니 숫제 갑이 없어진 꼴이었다. 더구나 먹을 사람들마저 밭마늘만 찾아 논마늘은 아예 지치러기로 쳐서 덮어놓고 훌때린다는 것이다.(<우리 동네 강씨>)

 

작년에 정부에서 외국 마늘을 수입해 들인 것이 수십억 원에 달했음을 들어 알고 있던 그는 너무도 기가 막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우리 동네 강씨>

 

이것은 마늘뿐만 아니란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보리도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새달 초순에 보리수매 가격이 나왔는데 보리쌀 한 되에 막담배 한 갑, 보리쌀 한 되에 시내버스 두 번이었다. 그것은 곡식값이 아니라 모이값이었다 고치값은 어떠했는가. 79년 고치 흉작으로 고치 한 관에 6, 7천 원 하던 것이 고치가 수입되어도 떨어질 줄 모르더니 다음에 우리 농민들에 의해서 고치 재배가 확대되고 수확기에 접어들자 풋고추 한 관에 삼백 원으로 그 가격이 하락하였다. 농사꾼은 호적 파갖구 물 근너온 의붓 국민인모양 해마다 남이 긋어준 금에 녹아났다. 작년은 짐장에 녹구, 올은 양념해 녹구…… 봄 되어 가축에 녹구, 여름 되어 보리에 녹구……”, 가을 되어 고추에 녹으니 우리 동네 장씨가 농사를 놓든지, 농업을 말든지결정해 버린 것은 근대화된 오늘을 살아가는 현명한 판단이었던 것이다.

 

우리 동네 장씨는 이제 도시 근대화의 물결이 농촌에까지 몰아친 덕분에 생긴 읍내 다방에서 금방 나온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긴다. 오뉴월 뙤약빛에서 모 심다가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킬 때, 애써 지은 농사가 헛것임을 알고 온 마을 사람들이 취해 돌아가면서 오늘을 노래 불렀을 때를.

 

오늘

신경림

 

국수 반 사발에

막걸리로 채워진 뱃속

농자천하지대본

농기를 세워놓고

면장을 앞장세워

이장집 사랑 마당을 돈다

나라 은혜는 뼈에 스며

징소리 꽹과리 소리

면장은 곱사춤을 추고

지도원은 벅구를 치고

양곡 증산 13.4프로에

칠십 리 밖엔 고속도로

누더기를 걸친 동리 애들은

오징어를 훔치다가

술동이를 엎다

용바위집 영감의 죽음 따위야

스피커에서 나오는

방송극만도 못한 일

아낙네들은 취해

앞마당에서 노랫가락을 뽑고

처녀들은 뒤울안에서

새 유행가를 익히노라

목이 쉬어

펄럭이는 농기 아래

온 마을이 취해 돌아가는

아아 오늘은 무슨 날인가

무슨 날인가

 

 

 

우리는 이제까지 소설가 이문구 씨 우리 동네 연작소설에 나오는 70년대 한국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대화를 살펴보았다. 본문에서는 우리 동네 리시 김씨, 강씨, 최씨, 정씨, 장씨 등 많은 농민들이 등장했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을 하나하나 개별화된 농민들로 본 것은 아니다. 이들은 70년대 소외된 농촌에서 살아온 우리의 농민들이다.

그들은 우리 동네에서 함께 웃고 술 마시며 화를 내고 즐거움을 같이 하는 우리 동네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인정 많고 소박했으나, 딱딱한 현실 사회를 살아오는 동안 어느덧 화을 내고 분노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늘을 원망 않고살아왔으나, 이제 자신들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 동네에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방방곡곡에 살면서 우리들의 허기진 뱃속을 채워주는 일을 오늘도 계속하는 것이다.

 

작가 이문구 씨는 농촌에 주제를 두고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는 농촌에 집을 두고 농민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대화를 우리 동네로 활자화시켰다. 참고한 책으로는,

 

1. 이문구, 으악새 우는 사연-우리 동네……」 連作小說集-, 한진출판사, 1978.

2. 창작과 비평 56, 창작과비평사, 1980.

3. 실천문학, 전혜원, 1980이다.

 

 

* 이문구, 우리 동네, 민음사, 2023(3)

 

 

이문구 대한민국의 소설가

194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대를 졸업했으며 1966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이 풍진 세상을』 『해벽』 『엉겅퀴 잎새』 『으악새 우는 사연』 『다가오는 소리』 『유자소전, 연작소설집 관촌수필』 『우리 동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장편소설 장한몽』 『산너머 남촌』 『매월당 김시습등을 펴냈다. 한국일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요산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대한민국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20032월 예순둘을 일기로 타계했다. 타계 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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