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향연

책보세

  • 인문향연
  • 책보세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제목

우리 고전 100선-이덕무 선집-≪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강국주 편역

  • 작성자김동민 이메일
  • 작성일2026-01-01 03:58
  • 조회82
  • [보도자료]
  • 2026-01-01

우리 고전 100-이덕무 선집-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강국주 편역

 

 

책 머리에 강국주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조선 후기 실학자의 한 분으로 서얼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당시 조선은 실학의 기운이 무르익었던바 이덕무 역시 이 새로운 흐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그는 새로운 문물과 지식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비판적으로 추수(追隨)하기보다는 새로운 문물과 지식을 주체적으로 자기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지식인이었다. 특히 그는 당대의 지식인 공동체라 할 만한 연안 그룹의 핵심 인물로, 뜻을 같이하는 동인(同人)들과 함께 시문(詩文)을 읽고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풍부하고 깊이 있는 사유를 다듬어 갈 수 있었다.

이덕무를 한마디로 말하면 책 읽는 선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선비는 바로 책 읽는 사람, 독서인(讀書人)’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밀하게 책을 읽었고, 그의 지인(知人)들은 이런 그를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고 부르곤 했다. 포부가 남다르고 재주가 뛰어났지만 서얼이었던 그는 그것을 실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런 이덕무에게는 독서인으로서의 삶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덕무의 글을 찬찬히 읽다 보면 산업화 이래 오랫동안 잊히거나 왜곡된,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진정한 삶의 가치가 어떤 것이며 무엇인지 되묻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난에 대한 생각도 그중 하나다. 하나이다. 우리 시대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로 가득 찬 시대라 할 만하다. 가난은 구질구질하고 고통스러운 것,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상태로 여겨진다. 그러나 평생 가난과 더불어 살았던 이덕무에게 가난은 결코 고통만은 아니었다.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이웃 간의 사랑과 보살핌의 정, 자연과의 정서적 합일, 벗들과 나누는 우정과 환대는 가난 속에서, 아니 어쩌면 가난 때문에 더욱 빛이 난다. 분수에 맞는 가난을 감수하는 삶, 곧 가난과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 공생(共生)의 삶이 되며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삶임을 이덕무는 자연스레 취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덕무의 작품은 양이 꽤 많은데, 이것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라는 책으로 묶여 지금 전해지고 있다. 역자는 그 가운데 그의 삶과 문학을 집약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시와 산문을 선별해 소개하고자 했다. ‘더불어 사는 삶보다는 남들이야 어찌 되든 나만 잘되면 된다는 경쟁 위주의 일등주의를 강요하는 오늘날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너와 나를 차별하는 마음을 잊고 함께 평화로워질 것을 주문하는 이덕무의 글이 과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참된 가치는 어느 시대에나 인간의 마음을 깊이 울려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소박하지만 오래된 믿음을 가져 본다. 이 책이 오랫동안 잊혀 온 참된 가치참된 행복을 되묻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

 

나를 조롱하다

 

예스런 생김새에 마음 맑은 이형암(李炯菴)

포부는 몹시 어리석다네.

담박하게 고요히 앉아 있느라

콩과 팥도 구분 못 하네.

 

* 시인 자신에 대해 노래한 시이다 이 시처럼 이덕무는 영리하고 꾀바르게 행동하는 것과는 영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덕무는 나를 조롱하다라는 제목의 시에서 자신의 이러한 면모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첫 행의 형암은 이덕무의 호()이다.

 

 

술에 취해 1

 

내 마음 깨끗한 매미, 향기로운 귤 같으니

나머지 번다한 일 나는 잊었노라.

불로 허공 살라본들 결국 절로 꺼질 테고

칼로 물을 벤다 한들 아무 흔적 없으리니.

어리석음한 글자를 어찌 면하겠냐마는

온갖 서적 두루 읽어 입에 올리네.

넓디넓은 천지간 초가에 살며

맑은 소리 고아한 밤낮 연주하네.

 

* 젊은 시절 이덕무의 인생관을 잘 보여 주는 시이다.

 

 

벌레인가 기와인가 나는

 

벌레인가 기와인가 나란 존재는

기술이나 재주라곤 도무지 없네.

뱃속에 커다란 기운이 가득

그것 하나 남들과 크게 다르지.

백이(伯夷)를 탐욕스럽다고 말하는 자 보면

이를 갈며 몹시 분노하노라.

굴원(屈原)을 간사하다 이르는 자 보면

눈을 치켜뜨며 성을 내노라.

내게 입이 백 개나 있다고 한들

들어줄 이 없으니 무엇 하겠나.

하늘에 말해 본들 눈을 감았고

땅이라 굽어봐도 본 체를 않네.

산에 오르려 하니 산 역시 어리석고

물에 가 볼까 하니 물 또한 어리석어

혼자 끌끌 혀를 차고 한탄을 하고

홀로 허허 탄식하며 한숨 내쉬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속은 다 타들어 가네.

백이가 탐욕스럽고 굴원이 간사하다 설사 말해도

내가 상관할 바 뭐 있으리.

술이나 마시고 진정 취해선

글을 읽다 쓰러져 잠이나 잘 뿐.

아아, 잠들어 깨지 않아서

저 벌레나 기와로 돌아갔으면.

 

* 세상에 대한 답답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나무의 마음처럼

 

고관대작 이름을 나는 모르네

내가 아는 건 오로지 책 읽는 일뿐.

뜨락의 저 나무 내 마음 같아

맑은 바람 맞으며 우뚝 섰어라.

 

 

가난과 독서

 

여종은 양식 없다 종알대건만

고요한 방에 앉아 글 읽는 일 쉬지 않누나.

온몸에 술을 저장할 수 있어도

어찌 차마 잠시라도 책 안 볼 수 있나.

창에는 거미줄이 드리웠고

옷에는 좀벌레가 달아나네.

한가하니 쾌활함을 더욱 깨달아

조그만 매화 정원 손수 김매네.

 

 

말 위에서

 

지친 말 위에서 잠시 꿈속 들었던가

어느새 나의 옛 초가집에 돌아왔네.

잠시나마 옛 친구들 만났었는데

잠 깨니 푸른 산만 어슴푸레하네.

 

 

달밤에 아우를 마주하여

 

조각달이 고아한 선비 엿보며

작은 창이 환한 빛을 비추네.

예스런 두건을 단정히 쓰고

새로 입은 겹옷은 서늘하여라.

섬돌에 서리꽃 눈이 부신데

티끌 하나 보이지 않네.

못 짐승들 저마다 둥지에 들고

고요한 생각 오롯하고 은미하여라.

맑은 얼굴의 어린 아우가

나를 보며 영기(靈氣)를 물어보길래

마음을 원만하게 할 수 있다면

옛사람처럼 될 수 있다 말해 주었네.

문득 다시 충고의 말을 하려니

밤하늘에 기러기 울며 가는군.

 

* 제목의 아우는 이덕무의 외사촌 동생 치천(穉川) 박상홍(朴相洪)을 말한다. ‘영기는 맑고 신령한 마음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도()를 깨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뜻하는 말로 썼다. 고즈넉한 달밤에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단아한 선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고추잠자리

 

담장의 가는 무늬 같기도 하고 항아리 금이 간 듯도 하고

() 자 모양의 푸른 댓잎 같기도 하지.

우물가 가을볕에 그림자 어른어른

가는 허리 하늘하늘 고추잠자리.

 

 

초겨울

 

고요한 밤 사방 산에 여울 소리 들리니

멀리 석문(石門)의 푸른 우물 차가우리.

달이 뜨니 한밤의 그 소리 더욱 큰데

운치 높은 전나무는 구름에 솟았네.

 

 

시골집

 

콩깍지 더미 옆에 오솔길이 있고

붉은 햇살 막 퍼지자 소들이 흩어지네.

가을 맞은 산허리에 연푸른빛 물들겠고

비 갠 뒤의 구름일랑 깨끗하니 먹음직해.

갈대 그림자 흔들흔들 기러기 놀라 날고

볏잎 소리 싸악싸악 물고기 분분하네.

나도 한번 산 남쪽에 초가집을 짓고 싶어

볏짚 반만 줄 수 없나 농부에게 물어보네.

 

 

()

 

어린아이 혹은 처녀처럼

 

(전략)

예전에 나는 아이 혹은 처녀가 쓴 글이라는 이 책 첫머리에 이런 말을 붙인 바 있다.

글이란 모름지기 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것과 같으니, 글 짓는 사람은 의당 처녀처럼 부끄러워할 줄 알아 자신을 잘 감추어야 한다.”

이 말은 스스로 겸손함을 본받으려 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찬미한 말이 분명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다만 문장만을 좋아하여 그것을 즐길 뿐이었다. 비록 글을 잘 짓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때때로 글을 짓고 이를 나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지은 글을 드러내 자랑하는 일이라면 차마 하지 못해, 그것으로 남에게 명예를 구하는 짓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나를 괴팍하다고 꾸짖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몸이 약한 나는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많아 부지런히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지식은 얕고 배움은 거칠다. 또한 학문을 이끌어 주는 선생이나 잘못을 바로잡아주는 친구가 없는 데다 집마저 가난해 책을 사 모을 돈도 없어 깊이 있는 지식을 얻을 수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제아무리 글이 좋아 혼자 즐긴다고 했지만 그 학문이 별 볼일 없으리란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것은 순수한 마음이 있는 그대로 발산된 것이며, 처녀가 부끄러워하며 감추는 것은 순수한 진정이 자연스레 드러난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은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중략)

그렇다고 내 문장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거칠고 편협할 뿐만 아니라 희미한 반딧불이나 발자국에 고인 물처럼 하찮은 문장에 불과하다. 그러니 어찌 오만하게 스스로를 자랑하고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을 뽐내기를 지금까지 나만 한 사람이 없었는데 이후엔들 있을 수 있으랴!’ 하는 식의 망년된 생각을 품을 수 있겠는가. 혹여라도 이런 망령된 생각을 품는다면 어찌 학식 있는 이들이 꾸짖지 않겠는가. 예로부터 문장을 잘하는 사람치고 교만하여 스스로 훌륭한 체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문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가 사방에서 일어나 부당한 비방을 당한바, 제 한 몸 명예를 잃을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까지 욕을 미치곤 하였다. 그럴진대 문장을 잘하지도 못하는 자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오로지 두려워하고 두려워할 따름이다.

(하략)

 

 

산 글과 죽은 글

 

산 글이란 무엇인가? 자구마다 한결같이 그 정신이 유동(流動)해야만 산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진부한 것을 답습하기만 해서는 죽은 글이 될 뿐이다. 옛날의 육경(六經) 가운데 정신이 없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 육경(六經) : 시경(詩經)서경(書經)예기(禮記)악기(樂記)역경(易經)춘추(春秋)를 말한다.

 

 

책밖에 모르는 바보

 

남산 아래 퍽 어리석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말도 느릿느릿 어눌하게 하고, 천성이 게으르며 성격마저 고루하니 꽉 막혔을 뿐만 아니라, 바둑이나 장기는 말할 것도 없고 생계에 대한 일이라면 도통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들이 욕을 해도 변명하지 않았고, 칭찬을 해도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았다. 오직 책 읽는 일만을 즐겨, 책을 읽기만 하면 추위나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배가 고픈지도 모른 채 책만 읽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스물한 살이 된 지금까지 하루도 옛 책을 놓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기거하는 방도 무척 작았다. 하지만 동쪽과 서쪽과 남쪽에 각각 창()이 있어 해가 드는 방향에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책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아직 보지 못했던 책을 구해 읽게 되면, 그 즉시 만면에 웃음을 띠곤 했다. 집 사람들은 그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기뻐하면 필시 기이한 책을 구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특히 두보(杜甫)의 오언율시(五言律詩)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 시를 읊느라 앓는 사람처럼 웅얼거리기를 예사로 하였고, 시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혹 심오한 뜻을 깨치게 되면 그만 기뻐서 벌떡 일어나 방 안팎을 서성이기도 했는데, 그럴 땐 마치 까마귀가 우짖는 소리를 내곤 했다. 어떨 땐 조용히 아무 소리도 없이 눈을 크게 뜨고 멀거니 보기도 하고, 혹은 꿈꾸는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 해도 그냥 씩 웃고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아무도 그의 전기(傳記)를 써 주는 사람이 없기에 내 붓을 들어 그 일을 써서 책밖에 모르는 바보 이야기를 짓는다. 그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는다.

 

 

참된 대장부

 

망령된 말이라면 종일토록 입 밖에 내지 않고 망령된 생각이라면 죽는 날까지 떠올리지 않는다면, 비록 남들이 그를 일러 대장부라 부르지 않더라도 나는 그를 일러 대장부라 말할 것이다.

조급하고 망령된 생각을 오래도록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절로 꽃이 필 것이고, 거칠고 상스러운 말을 오래도록 입에 담지 않는다면 절로 향기가 날 것이다.

 

 

백동수라는 사람

 

야뇌(野餒)’*란 누구의 이름인가? 나의 벗 백영숙(白永淑)**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내가 알기에 영숙은 기계가 크고 장대한 선비인데, 그가 이처럼 고루하고 거친 사람이라 자취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 ‘야뇌(野餒)’ : ‘()’란 촌스럽다ㆍ질박하다ㆍ꾸밈이 엄tek는 뜻이고, ‘()’는 굶주리다란 뜻이다.

* 백영숙(白永淑) : ‘영숙은 백동수의 자()이다.

 

무릇 시세(時勢)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 틈에 끼지 않는 선비가 있으면 대번에 저 양반, 예스러운 행동거지에 유행에 동떨어지는 옷을 입은 걸 보니 필시 촌스러운 사람일 게야, 또 질박하게 말하고 최신 풍속을 따르지 않는 걸 보니 필시 굶주린 사람일 게야라며 조롱하면서 그와 함께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이렇게 대하고 보니, 이른바 야뇌라 자처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홀로 지켜 나가던 사람도 자신과 어울려 주지 않는 세상을 한탄하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중 어떤 사람은 자신의 예스러운 행동거지를 내던져 버리며 야뇌라고 자체했던 것을 후회하거나 자신의 질박한 말투를 내팽개치며 야뇌라고 자처했던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점점 부박한 세태를 쫓아가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을 어찌 야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정말 야뇌라고 부를 만한 이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나의 벗 영숙은 예스럽고 소박하며 질박하고 진실한 사람이다. 질박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졌기에 세상의 화려함을 바라지 않고, 예스럽고 소박한 마음을 품었기에 세상의 간사한 무리를 따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비방하고 헐뜯는다 하더라도, 영숙은 끝내 자신의 촌스러움을 후회하지 않고 자신의 굶주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영숙이야말로 참으로 야뇌라는 이름에 값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하략)

 

 

나 자신을 친구로 삼아

 

눈 오는 아침이나 비 오는 저녁에 다정한 친구가 오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와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시험 삼아 내 입으로 직접 글을 읽어 보니 나의 귀가 들어주었고, 내 손으로 직접 글씨를 써 보니 나의 눈이 보아주었다. 내 이처럼 나 자신을 친구로 삼았으니 다시 무슨 원망이 있을 것인가.

 

 

가장 큰 즐거움

 

마음에 맞는 계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 일, 이야말로 최고의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지극히 드문 법, 평생토록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는지.

 

 

나의 일생

 

낙숫물을 맞으면서 헌 우산을 깁고, 섬돌 아래 약 찧는 절구를 괴어 두고, 새들을 문생(門生)으로 삼고, 구름을 친구로 삼는다.

이런 형암(炯暗)의 일생을 두고 그것 참, 편안한 생활이군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니, 참으로 우습다. 참으로 우스워!

 

 

구름과 물고기를 보거든

 

구름을 보거든 깨끗하고도 막힘이 없는 까닭을 생각할 일이고, 물고기를 보거든 헤엄치며 깊이 잠겨 있는 까닭을 알 일이다.

 

 

봄 시내

 

이제 막 비가 개어 햇빛마저 화사한 3월 봄날, 복사꽃 붉은 물결이 언덕에 넘쳐흐르는데, 맑은 시냇물 속에서 오색 빛 작은 붕어가 놀고 있다. 느릿느릿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물풀 사이를 노닐다가 거꾸로 서 보기도 하고 가로누워 보기도 하며 주둥이를 물 밖으로 내어 벌름거리기도 하니, 이야말로 생명의 생동한 기운 아니겠는가.

따스하고 깨끗한 모래 위에는 둘씩 넷씩 짝을 지은 온갖 물오리와 해오라기가, 혹은 바위에 혹은 꽃나무에 앉아 있다. 날개를 문지르기도 하고 모래를 몸에 끼얹기도 하며 물에 제 그림자를 비춰 보기도 한다. 스스로 천연히 은은함과 조용함을 사랑하는 듯하니, 이 또한 요순(堯舜)시대의 기상과 다를 것이 없다.

이를 보고 있으면 웃음 속에 감추어진 날 선 칼날과 마음속에 응어리진 많은 화살과 가슴속에 가득한 모진 가시가 일시에 살아 싹 사라져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나의 정신을 봄날 복사꽃 흐르는 물결처럼 할 수 있다면, 생동하는 저 물고기나 새들처럼 내 마음도 자연스레 순탄함을 따르게 되지 않겠는가.

 

 

세상의 평화란

 

세상의 평화란 별게 아니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은 존경하여 흠모하고, 나와 동일한 사람은 서로 아끼며 사귀되 함께 격려하고, 나만 못한 사람은 딱하게 여겨 가르쳐 준다. 이렇게 한다면 온 세상이 평화롭게 될 것이다.

 

 

참으로 통쾌한 일

 

새벽에 훌륭한 농부가 봄비를 맞으며 밭을 간다. 왼손에는 쟁기를 끌고 오른손에는 고삐를 쥐고서 검은 소의 등을 때리며 크게 고함을 지른다.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 소리에 마치 온 산이 진동할 것만 같고 강물이 용솟음칠 것만 같다. 검은 소가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지나가면 그 자리엔 구름 덩이 같은 흙이 생기고 물고기 비늘을 나란히 겹쳐 놓은 것 같은 고랑이 열린다.

이 또한 세상에 통쾌한 일 가운데 하나이리라.

 

 

교활한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

 

교활한 사람을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교활한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그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나를 공경하기 때문이다.

 

 

해설

 

1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다. 대문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벗이요 제자로서 오랜 기간 교유한 것은 물론, 정조가 설치한 규장각(奎章閣)의 초대 검서관(檢書官)으로 임명되어 자신의 박학과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하였다.

이덕무가 살았던 당대 조선은 이른바 실학의 기운이 무르익은 시기였다. 이 새로운 흐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이덕무다. 그는 당시 가장 선진적이고 비판적인 지식인 동인(同人)이라 할 연안 그룹의 핵심 인물로, 그들과의 활동을 통해 당대 조선의 지적 흐름을 선도한 인물이었다.

 

5

이덕무는 가난하고 병약하지만 독소인으로서의 사명을 일평생 지키며 살았던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그는 늘 스스로 재주가 없다고 했지만, 자신만의 문학관과 빼어난 비평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이덕무는 자기 자신의 진실된 마음, 곧 진정(眞情)을 도외시한 채 아름답고 훌륭한 문장만을 지으려는 태도를 비판하고, 비록 세련미가 떨어질지라도 어린아이와 처녀의 마음처럼 자신만의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참된 글쓰기의 요체라고 주장하였다(<어린아이 혹은 처녀처럼>). 특히 비평적 안목은 당대 최고라고 여겨져 많은 문인들이 그에게 비평을 해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잘난 체하는 것과는 영 거리가 먼 인물이 바로 이덕무였다.

그만큼 그는 고아한 옛 선비의 풍모를 체화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는 그의 심성이 본래 얌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소 그가 깨끗한 매미나 향기로운 귤과 같은 옛 선비의 풍모를 본받기 위해 애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 강국주 편역,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이덕무 선집, 돌베개, 2008

 

강국주 : 인문학자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충남 홍성의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학생들과 함께 농사와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 이덕무 : 고전문학가

조선 후기 서얼 출신의 학자이자 문인이다. 자는 무관(懋官), 호는 형암(炯菴청장관(靑莊館아정(雅亭) 외 다수가 있다. 박지원·박제가 등과 교유했던, 연암 일파의 일원이다. 규장각 초대 검서관과 적성현감 등을 지냈다. 저서로 7132책의 문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있다.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댓글()

  • 연번

    제목

    파일

    작성자

    작성일

    조회

맨처음이전 5페이지12345다음 5페이지마지막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