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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 성수영

  • 작성자김동민 이메일
  • 작성일2025-12-21 17:46
  • 조회93
  • [보도자료]
  • 2025-12-21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 성수영

 

 

화가의 인생을 통해 들여다보는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 27인의 찬란한 명화들

수많은 팬의 사랑을 받으며 N포털 문화 분야 구독자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탁월한 스토리텔러 성수영 기자가 화가 27인의 인생을 통해 알기 쉽게 서양 미술을 풀어낸 책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리커버 에디션으로 찾아 왔다. 표지 그림은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의 <스카겐의 여름 저녁, 화가의 아내와 개>(1892, 스카겐미술관), 고즈넉한 바다를 뒤로 하고 화가의 아내인 마리가 개와 함께 물끄러미 좌측을 응시하는 모습이다. 그녀의 시선은 어디로 향한 걸까. 자세한 내용은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들어가며 다리를 놓으려 합니다

 

이 책은 그림을 작가의 삶과 연관 지어 설명합니다. 그림의 주재료인 작가의 관점, 그리고 그 관점의 원료인 삶을 알게 되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몰랐던 작가의 삶을 풍부하게 전하기 위해 외국의 미번역 최신 문헌을 최대한 참고하려고 노력했으며 많이 읽고, 조금 판단하고, 있는 그대로 전하려 했습니다.

 

 

PART 1 사랑 그 아름다운 불균형에 대하여

 

예술과 결혼했다던 비혼주의 화가에게 찾아온 운명적 사랑

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

 

비혼주의자라더니 개뿔. 결국 이 양반도 똑같은 남자구먼.”

1895년 영국의 한 미술관. 그림 앞에 쓴 관객이 이렇게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터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을 그린 화가가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비혼주의자였거든요 키 큰 미남인데 그림 실력도 천재적. 돈 많고 성격 좋고 사교성 좋은 데다 노래까지 잘하니 수많은 여성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지만, 나는 예술과 결혼했다며 독신을 고수하던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 쉰이 넘은 나이에 늦바람이 든 걸까요. 나이 차이가 스물아홉이나 나는 하류층 여성과 동거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연예계 사람들을 만나서 이 아이를 배우로 써달라고 부탁까지 하고 다닌다네요. ‘그냥 모델일 뿐이라지만 이 그림을 보세요. 누가 봐도 화가가 모델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뻔히 보이잖아요.

둘이 결혼이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그건 또 화가가 싫다네요, 하류층 여성이니 데리고 놀다 버리겠다는 심보인가? 여자만 불쌍하게 됐어.” “다 늙어서 주책이야, 정말.” 사람들은 쑥덕거렸습니다.

 

최대의 엄친아’, 딱 하나 없었던 게

 

소문의 주인공은 영국 신고전주의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프레더릭 레이턴(1830~1896). 스캔들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레이턴의 이미지는 완벽 초인이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부족한 게 뭐냐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지요.

그럴 만도 했습니다. 먼저 태생부터가 금수저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러시아 황제(차르)의 의사로 일하며 돈을 많이 벌었고 아버지도 의사였습니다. 레이턴 본인은 키 큰 미남이었습니다. 게다가 인품이 훌륭했고, 사교성도 좋았으며, 술ㆍ담배도 안 하고,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며 각 나라의 언어를 마스터했으며, 심지어 피아노도 잘 치고 노래까지 잘했습니다. 그 많은 재능 중에서도 가장 빛났던 게 그림 그리는 실력이었습니다.

전설의 시작은 1885년 여름, 영국 런던 왕립예술원에서 열린 전시회. 전시 첫날 축사를 위해 전시장을 찾은 빅토리아 여왕은 의례적으로 전시작들을 둘러보며 영혼 없이 너무 좋네요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작품 앞에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그 작품은 바로 당시 스물다섯이었던 레이턴이 그린 <피렌체의 거리를 행진하는 치마부에의 마돈나>. 여왕은 그 자리에서 거액을 지불하고 이 그림을 구입했습니다. 여왕의 그날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림이 너무 좋아서 도저히 안 살 수가 없었다.” 불과 20대 중반의 영국 화가로서 최고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최고가 될 만큼 레이턴을 질투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미술계와 사교계의 스타가 됩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뛰어난 그림 실력에 더해 특유의 친화력과 겸손한 성품 덕을 봤습니다. 돈을 많이 번 건 물론이고, 서른네 살이던 1864년에는 왕립예술원의 준회원이 되는 명예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 남자가 없는 게 딱 하나 있었으니 바로 배우자였습니다. 수많은 여성이 제발 나와 만나달라며 애걸복걸해도 레이턴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그가 남성의 몸을 아주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사실이 그런 소문을 더욱 부추겼지요. 하지만 그는 남자에게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레이턴이 유일하게 좋아했던 건 사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이었습니다. ()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엔 이렇게 일과 결혼한 사람이 꽤 많았다고 합니다. ‘레이턴도 그런가 보네. 아깝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레이턴이 독신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습니다.

 

뒤늦게 만난 평생의 사랑

 

그렇게 50대에 접어든 레이턴은 늦은 나이에 평생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1881년 동료 화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가, 모델 일을 하던 스물두 살의 여성과 눈이 마주친 겁니다. 레이턴은 즉시 그녀를 자신의 그림 모델로 고용합니다. 자기 집 바로 옆에 그녀와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을 얻어주고, ‘도로시 딘(Ddrdthy Dene)’이라는 예명까지 지어줍니다. 그리고 둘은 항상 꼭 붙어 다녔습니다.

두 사람은 관계에 대한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서로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레이턴의 친한 친구들이 편지에서 딘을 레이턴의 아내라고 지칭한 게 증거입니다.

 

당연히 언론과 호사가들은 곧 두 사람이 결혼할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레이턴은 약혼하지는 않았다는 말만 반복할 뿐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레이턴이 딘의 곁을 지키면서도 침묵했던 건 사랑하는 여자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의 전기 작가 에일라트 네게브(Eilat Negev)와 예후다 코렌(Wehuda Koren)은 저서 플레이밍 딘(Flaming Dene)에서 침묵의 이유를 이렇게 분석합니다. 딘이 하류층 출신이라는 한계를 넘어 배우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레이턴의 지원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안 될 일. 지독하게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기혼 여성이 배우로 일하는 건 쉽게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딘이 꿈을 이루는 걸 도우면서도 커리어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레이턴으로서는 이런 식의 처신이 최선이었다는 얘깁니다.

훗날 딘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순이 넘었지만 레이턴은 내가 가는 아는 가장 젊은 남자다. 그리고 가장 친절하고 관대한 남자다.”

 

죽음, 그리고 잊히다

 

예순을 넘어서면서 레이턴의 건강한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일중독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출장을 다니고, 그림을 그렸지요. 삶의 방식이라고는 그것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지병인 협심증이 도졌습니다. 그래도 레이턴은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물론 작품의 주 모델은 딘이었습니다. 조용한 작업실에서 딘은 포즈를 취했고 레이턴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함께 보낸 마지막 몇 달의 시간 동안 둘 사이에는 별다른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림이 말을 대신했습니다.

레이턴이 죽기 직전까지 그렸던 미완의 명작 <클리티에>(1895~1896). 이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클리티에는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나오는 존재로, 태양의 신 아폴론을 짝사랑해 태양만 애달프게 바라보다 해바라기가 되어 버린 림프(요정)입니다. 인생의 해는 저물어가고, 석양 속 한 줄기 빛이 마지막으로 비치는 지금, 제발 사라지지 말아달라고 애절하게 기도하는 클리티에. 삶도, 예술도, 딘과의 사랑도 붙잡고 싶었던 레이턴의 애절한 마음이 그림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이 작품을 채 완성하지 못하고 레이턴은 1896년 세상을 떠납니다. 딘에게는 상속자 중 가장 많은 5,000파운드의 유산을 남겼고, 딘의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별도로 5,000파운드를 더 남겼습니다. 지금 한국 돈으로 따지면 15억 원 정도 되는 돈입니다. 하지만 레이턴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딘은 행복한 삶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3년 뒤 병에 걸려 불과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거든요. 여기엔 레이턴에 대한 그리움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레이턴이 죽은 뒤 딘이 두 번 다시 화가의 그림 모델을 서지 않은 게 그 방증입니다.

그리고 레이턴과 딘은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혀갑니다.

 

남의 시선, 뭐가 중요한가

 

다행히도 1960년대부터 레이턴의 작품 세계에 대한 재평가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레이턴은 빅토리아 시대의 위대한 영국 화가로, <플레이밍 준>남반구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세기의 명작으로 대접받게 됐습니다. 레이턴의 연인이자 배우였던 딘에 대한 관심도 커졌지요. 이에 따라 둘의 사랑 이야기도 재조명받게 됐습니다.

생전 둘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나이가 많이 차이 난다는 이유로 온갖 비난과 음해를 받았고, 억울한 일들을 겪고 여러 손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후회는 없었을 겁니다. 서로 함께였기에 언제나 행복했으니까요.

레이턴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규칙을 완전히 거부하면서 살 수는 없지요 하지만 때로는 레이턴처럼 타인의 시각이나 편견을 어느 정도 무시해야 얻을 수 있는 행복도 있는 법입니다.

 

 

스타일리쉬한 초상화로 런던을 사로 잡은 파리지앵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잘 나가는 런던의 파리지앵

 

티소는 1836년 프랑스 항구 도시 낭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옷감을 거래하는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모자를 디자인했습니다. 장사는 꽤 잘 됐습니다. 티소는 아버지의 사업 감각과 어머니의 패션 감각을 모두 물려받았습니다.

열일곱이 되던 해, 티소는 부모님께 화가가 될 거니 그림 공부를 시켜달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 역시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스무 살의 나이로 티소는 파리로 그림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파리 살롱과 런던의 왕립예술원 등 주요 전시장에 그림을 선보이면서 그럭저럭 괜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저 그런 화가에서 스타가 된 건 1863, 티소가 여성의 초상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사실 초상화야말로 그의 적성에 딱 맞는 일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패션 감각 덕분에 얼굴은 물론 각종 장식과 옷 주름까지 섬세하고 스타일리시하게 그릴 수 있었거든요. 돈이 별로 안 되는 순수예술과 달리 초상화는 수입도 짭짤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업 감각도 한몫을 해서, 그는 곧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가 중 한 명으로 떠오릅니다.

잘 나가던 그의 커리어는 파리 미술 시장이 무너지면서 위기를 겪습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 혁명 등으로 인해 도시가 극심한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티소는 영국 런던으로 향합니다.

18716월 거의 무일푼으로 런던에 도착한 티소는 잡지 삽화 등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실력이 워낙 출중했던지라 런던 사람들은 티소를 금방 알아봤습니다. 곧이어 그는 런던 최고의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리게 됐고,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어서 런던 시내의 금싸라기 땅에 큰 집을 샀습니다. 적지 않은 평론가들과 동료 화가들은 그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며 비판했습니다. 대부분 질투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티소의 인기가 끝없이 치솟으면서 이런 악평도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 파리지앵(Parisien)은 프랑스 파리에 사는 남자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데모님. 실제 발음은 빠히지양에 가깝다. 파리에 사는 여자는 파리지엔(Parisienne)이라고 한다.

 

모든 걸 버리고 택한 그녀

 

상업적 성공을 이어가던 그는 1875년 서른아홉의 나이에 운명의 여인 캐슬린 뉴턴(Kathleen Newton)을 만났습니다.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푹 빠졌습니다. 캐슬린의 나이가 스물한 살에 불과하다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진짜 문제는 캐슬린이 이혼녀인 데다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애가 둘이나 딸려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거 따위는 티소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혼했든, 애가 딸렸든, 티소는 지금의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둘은 1876년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결혼은 하지 못했습니다. 티소가 이혼과 재혼을 사실상 금지하는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보는 세상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캐슬린은 물론이고 티소도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캐슬린은 혼외자를 둘이나 낳은 헤픈 여자. 미혼인 티소가 그런 여자와 공개적으로 연애질을 하고 동거까지 하는 데다, 뻔뻔하게도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려 공개적으로 전시했습니다. 더군다나 그녀를 그토록 우아하게 묘사했지요. 이건 당시 사람들에게 불륜보다 더 끔찍한 죄악이었습니다. 티소는 사교계에서 왕따가 됐고 사업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티소는 캐슬린을 사랑했습니다. 캐슬린의 아이들도 티소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었습니다. 캐슬린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녀를 그릴 수만 있다면 티소는 더 바랄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습니다. 캐슬린이 당시로서는 불치병이었던 폐결핵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1882년 캐슬린은 불과 스물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둘의 시간은 고작 6.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더라도 반드시 지키고 싶었던 단 하나의 사랑이 그렇게 허무하게 티소를 떠나갔습니다. 그녀와 함께 걸었던 길, 점심을 먹었던 정원, 추억이 가득한 집 모두가 이제는 그를 견딜 수 없이 괴롭게 했습니다. 캐슬린이 죽은 지 일주일이 지난 뒤, 티소는 집과 그림, 도구, 미완성 작품을 남겨두고 고국인 프랑스로 훌쩍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런던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슬픔 그리고 20

 

그래도 삶은 계속돼야 합니다. 파리로 돌아간 티소는 다시 작품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캐슬린을 잃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얼마나 그리움이 컸던지 티소는 그녀의 영혼을 불러내준다는 심령술사들을 만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880년대 말부터 그는 종교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성경을 소재로 한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는 인간사 따위엔 관심 없다는 듯 쭉 종교화만 그렸습니다. 그러다 1902년 예순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는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떠난 뒤 티소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혀졌습니다. () 다행히도 1980년대 이후 작품의 높은 완성도, 생활ㆍ패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다시 티소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티소를 연구한 학자들은 그가 죽는 날까지 캐슬린을 간절히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정원 벤치>는 캐슬린이 살아 있을 때 그리기 시작해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후 완성된 작품입니다. 그림 속 건강한 시절의 캐슬린은 아름다운 정원에서 두 아이, 조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찰나처럼 짧게 느껴졌던 6년간의 행복,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 그 모든 걸 몇 번이고 다시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티소는 끝없이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작품을 완성한 티소는 20년간 늘 이 그림을 곁에 두고 캐슬린을 추억했습니다. 전시에는 몇 번 내놨지만, 결코 팔지는 않았습니다. 그 인생 66년을 통틀어 진정으로 행복했던 시기는 오직 캐슬린과 함께한 6년뿐이었을 것입니다. 이후 티소는 20년을 슬퍼하며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는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은 아름다운 작품과 이야기로 영원히 남았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예술의 길을 간 까칠한 완벽주의자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

 

사랑하고 싶었지만

 

드가가 탁월한 실력을 갖추게 된 건 그가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한 작품을 그릴 때마다 그는 괴로울 정도로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다 그린 뒤에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끊임없이 작품을 다시 고쳤습니다. 드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 그림만큼 인위적인 그림은 없다. 화가는 같은 대상을 열 번, 백 번 반복해서 그려야 한다. 미술에서는 동작 하나라도 우연일 수 없다.”

장점만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완벽주의자들이 종종 그렇듯 그는 성격이 까칠했습니다. 천성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냉소 섞인 유머와 날카로운 비판으로 동료 화가들을 짜증 나게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에서 내가 가장 잘 그린다는 자부심과 우월감이 은근히 드러나는 것도 비호감을 주는 요소였습니다. 성격 좋기로 유명했던 동료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정말 참아주기 어려운 인간이야. 재능 하나는 정말로 뛰어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예술의 길을 걷는 까칠한 완벽주의자. 그런 삶에 연애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습니다. 훗날 드가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랑이 있고, 예술이 있다. 인간의 마음은 둘 중 하나만 택할 수 있다.” 실제로 당시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결혼하면 예술은 종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유부남은 예술에서 반동이다라고 했으며,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당신이 사랑을 한다면 그건 안 좋은 일이야. 상대방이 예쁘다면 최악이지. 예술에 대한 열정이 완전히 죽어 버리거든. 예술가는 다른 모든 걸 버리고 작품에만 열정을 가져야 해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주변 사람들이 결혼 생활이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가에게 확신을 줬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철이 들기도 전인 열세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초대받아 한동안 머물렀던 고모 집에서 직접 보고 겪은 결혼 생활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습니다. 정략결혼을 했던 고모 부부는 성격이 서로 잘 맞지 않았거든요. 고모는 드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혐오스러운 나라야. 남편은 아주 불쾌한 거짓말쟁이이고, 지루하기까지 하다니까.” 드가는 생각했습니다. ‘결혼은 힘든 거구나.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힘들 것이다.’

하지만 드가는 여느 피 끓는 청춘들처럼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의 일기장에는 천생연분을 찾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이 여러 번 적혀 있습니다. 30대 중반에는 동료 인상주의 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를 짝사랑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모리조는 드가의 친구이자 동료인 마네(Édouard Manet)에게 이끌렸습니다. 마네와 모리조의 밀고 당기는 관계에서 드가는 양념 역할을 하는 조연에 불과했습니다. 모리조는 바람둥이인 마네의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 드가를 이용했고, 그럴 때마다 마네는 모리조에게 돌아와 드가는 여자를 모르고 사랑할 수도 없는 녀석이라고 험담했지요. 드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역시 사랑과 거리가 먼 인간이구나.’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그런 드가에게도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열 살 연하의 화가, 미국 출신의 메리 커샛Mry Cassatt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실 만나기 전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커샛은 훗날 회고했습니다. “1873년 파리 오스만대로에 있는 한 화랑 창문 너머로 드가의 작품을 처음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창문에 코를 대고 그 작품에 빠져들었다.” 이듬해 커샛의 작품을 본 드가도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또 있었군.”

1877년 마침내 마흔셋의 드가와 서른셋의 커샛이 만났습니다. 실제로 만나보니 두 사람은 생각보다 더 잘 맞았습니다. 예술을 정말로 사랑했고, 서로 재능을 존경했으며, 성격과 집안 배경까지 비슷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 곳곳에서 함께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봤다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드디어 커샛에게 그림에 대한 조언을 했고, 커샛은 드가의 작품을 위해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습니다. 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누가 봐도 단순한 친구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라는 소문이 퍼진 게 너무나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드가와 커샛은 무슨 소리냐 우리는 절대 연인이 아니다라며 극구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믿기 어렵지만,이는 사실이라는 게 당시 사람들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붙어 다닌 두 사람이니 연인이라면 아무리 철저하게 숨기려 해도 티가 조금은 날 법한데 아주 친한 친구들조차 그런 낌새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거든요. 훗날 기록을 검토해 본 미술사가들이 내린 결론도 같았습니다.

이런 특이한 관계가 이어졌던 건 두 사람의 성격 탓이 컸습니다. 사실 커샛은 드가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했고 성격이 까다로웠습니다. 예술 외길을 걷는 독신주의자라면서 모태 솔로라는 점까지 똑같았지요. 그녀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다. 나는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고, 혼자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종합하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서로 잘 어울리는 두 남녀가 만났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사랑을 버리고 예술에 집중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고, 자존심이 아주 강했으며,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렀고, 무엇보다 연인이 돼서 서로에게 실망하거나 헤어져서 서로 멀어지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두 사람이 만 탄 건 이런 이유에서다.

 

차례

들어가며_다리를 놓으려 합니다

part 1 사랑, 그 아름다운 불균형에 대하여
프레더릭 레이턴-예술과 결혼했다던 비혼주의 화가에게 찾아온 운명적 사랑
마르크 샤갈-삶을 사랑과 희망이라는 색으로 칠한 색채의 마술사
제임스 티소-스타일리시한 초상화로 런던을 사로잡은 파리지앵
존 에버렛 밀레이-세상의 손가락질에도 금지된 사랑에 빠진 그림 신동
클로드 모네-화가가 사랑하고 화가를 사랑했던 사람들, 그림이 되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정신병원에서 태어난 화가, 그의 운명을 뒤흔든 연인
앤드루 와이어스-미국을 대표하는 그림의 탄생 뒤 존재한 내조의 여왕
에드가르 드가-평생 독신으로 살며 예술의 길을 간 까칠한 완벽주의자

part 2 헌신, 늘 고뇌하며 필사적으로 그리는 마음
귀스타브 카유보트-가난한 인상파의 후원자였던 괴짜 금수저 화가
윌리엄 터너-빛과 색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그린 엄청난 노력파 천재
조지 프레더릭 와츠-끊임없이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거듭한 성실형 화가
르네 마그리트-이해할 수 없는 세상, 좌절된 욕망을 담아낸 초현실적 그림
에두아르 마네-예술에 정답은 없다고 여긴 미술계의 이단아
페데르 뫼르크 묀스테드-자연의 친근함과 편안함을 그린 사실주의 화가

part 3 고난, 그럼에도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기다리며
틴토레토-미술계 왕따에서 전설이 된 베네치아 화파의 대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트라우마를 딛고 풍경화의 신기원을 연 독일 낭만주의 거장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삶을 덮치는 아픔을 견디며 따뜻한 그림을 그린 행복의 화가
제임스 앙소르-세상과 불화한 좌절한 청춘이 국민 화가로 추앙받기까지
에드바르 뭉크-가난, 질병, 죽음끝없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승리의 기록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세상의 추한 면도 외면하지 않은 작지만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테오, 조 그리고 빈센트, 그림에 녹아 있는 세 사람의 영혼

part 4 일상, 흔히 지나치는 것들에게서 찾은 소중함
요하네스 페르메이르-평범함 속 위대함을 포착한 숭고의 세계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룅-붓 하나로 격동의 유럽을 살아낸 18세기 최정상급 초상화가
앙리 루소-어리숙한 늦깎이 독학 화가가 그린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방탕한 알코올중독자가 남긴 가장 고요한 그림들
장 프랑수아 밀레-가난한 농부의 모습에서 참다운 인간성을 발견한 대가
알프레드 시슬레-부드러운 화풍에 담아낸 열정과 투쟁의 흔적

참고 문헌

 

 

성수영,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 한경arte, 2024

 

성수영 : 미술평론가/컬럼니스트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해 사회부와 경제부를 거쳐 현재 문화부에서 미술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문화·예술 케이블 채널 한경arteTV에도 고정 출연 중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미술과 문화재에 관해 연재 중인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은 누적 조회 수 4천만 회 이상, 고정 구독자 수 5만 명(네이버 기자 페이지 기준)을 넘기며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으며, 국내 문화·예술 분야 최고 인기 칼럼으로 손꼽힌다.

이번 책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은 독자들의 출간 요청에 힘입어 그동안 연재됐던 글을 모아 다듬었으며, 미연재분 원고를 추가해 깊이를 더했다. 저자가 알기 쉽게 들려주는 서양화가 27인의 인생을 통해 작품을 살펴보면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지던 미술이 어느새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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