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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 선집-≪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김하라 편역

  • 작성자김동민 이메일
  • 작성일2025-12-10 21:12
  • 조회113
  • [보도자료]
  • 2025-12-10

이규보 선집-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김하라 편역

 

 

책 머리에

 

문예의 별인 규성(奎星)이 시인(詩人)으로서 운명을 알려 주었다는 데서 규보(奎報)’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규보(李奎報)는 평생 시인으로서의 운명을 살았다. 일흔넷이 되던 해 가을 이제는 눈이 아파서 더는 시를 쓸 수가 없다고 고백하는 시를 남기고 그 며칠 뒤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일생을 시인으로 살았기에 남긴 작품이 많고, 그 작품에서 구현하고 있는 세계의 모습 역시 대단히 다채롭다.

이규보는 우선 끊임없는 생활인으로서, 자신의 일상을 구성하는 작은 것들을 섬세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형상화하였다. 새와 물고기에게 먹던 밥을 나눠 주고, 정든 말이 늙어 죽자 마음이 아파 문간을 서성이는 그의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도 따뜻하고 보드럽게 만들어 준다. 마음 같지 않은 세상사에 마음을 다치지 않고, 한적한 생활 속에서 내밀한 기쁨과 자유를 누리며, 세상의 모든 것들과 친구가 될 줄 아는 그는 위대한 시인이기에 앞서 호감이 가는 개인이다.

한편 그는 안온한 생활에 젖어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잊어버리는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다. 모든 존재와 친구가 될 줄 아는 그의 마음은 고통받는 백성들에 대해서도 고스란히 관철되고 있다. 그렇기에 하층 농민의 괴로운 삶을 들여다보는 그의 시는, 단순히 목민관으로서 참상을 고발하고 개선책을 촉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애민시(愛民詩)를 읽으면, 그가 농민을 위해서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규보의 시와 산문에서는 대상에 대한 여유로운 마음과 긴장된 태도가 조화를 이룬 경지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의 글에서 지적인 긴장은 대상을 보는 시선에 객관성과 날카로움을 부여하고 여유로운 마음은 타자를 대할 때의 따뜻하고 보드러운 심성을 잊지 않도록 한다. 그 결과 이규보의 글은 진리를 드러내되 대상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 것이며, 갈등과 분란을 낳지 않으면서 진실을 길어 낼 수 있는 것이다.

 

 

()

 

비 오는 날의 낮잠

 

주룩주룩 낙숫물 소리

낮잠을 방해할 것도 같은데

어째서 빗소리 들릴 땐

유독 잠이 달콤한 걸까?

맑은 날엔 문 닫고 있으려 해도

나가고 싶은 생각 끊이지 않지.

그러니 잠도 깊이 들기 어렵고

언뜻 잠이 들었다가 화들짝 깨지.

그런데 지금은 장마철이라

길이 온통 물바다 됐네.

아무리 친구를 찾아가려 한들

코앞도 천 리처럼 멀기만 한 걸.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리지 않고

뜰엔 발소리도 나지 않누나.

그러니 잠을 잘 수가 있어

드렁드렁 천둥 치듯 코를 곤다네.

이 맛을 말로 하긴 정말 어렵지

임금인들 어찌 쉽게 알겠나?

임금이 잠 못 자는 건 아니지만

아침마다 신하들과 회의가 있으니.

 

 

오늘이 가면

 

내 평생에 슬픈 일은

오늘이 흘러 어제가 되는 것.

어제가 모이면 곧 옛날이 되어

즐거웠던 오늘을 그리워하리.

훗날 오늘을 잊지 않으려거든

오늘을 한껏 즐기자꾸나.

 

 

먼 데 있는 벗에게

 

마음은 먼 구름 따라 만 리 길을 떠나고

눈물은 빈 뜰의 궂은비처럼 쏟아진다.

한번 그대와 헤어진 후 누구와 이야기하랴

눈앞에는 그 옛날의 반가운 얼굴 하나 없네.

 

 

아이들이 보고 싶어

 

1

 

나에게 어린 딸 하나 있는데

벌써 아빠 엄마 부를 줄 안다네.

내 무릎에서 옷을 당기며 놀고

거울 앞에서 엄마 화장을 흉내 내네.

떠나온 지 이제 몇 달인가

문득 내 곁에 있는 것 같구나.

나는 본래 방랑하는 선비로

외로이 타향살이하네.

수십 일을 술에 취하기도 하고

한 달을 몸져눕기도 했네.

머리 돌려 서울을 바라보니

산천은 푸르러 아득하구나.

오늘 아침 불현듯 네가 생각나

흐르는 눈물 옷깃을 적시누나.

마부야 얼른 말을 먹여라

돌아갈 마음 날로 더욱 바빠진다.

 

 

자조

 

야윈 어깨는 우뚝하고 헌칠한데

시든 머리칼은 짧고 듬성하다.

누가 네게 홀로 곧으라 하여

세태 따라 처신하지 못하게 했나.

거짓말이 장터에 호랑이를 만드나니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는 법.

농사꾼 되는 것이 제격이니

돌아가 호미 메고 농사나 지어야지.

 

 

북악에 올라

 

산꼭대기에서 도성(都城)을 굽어보니

넓고 끝없는 만인(萬人)의 바다.

조그만 집이야 말해 뭣 하랴

큰 집도 그저 흙덩이 같은걸.

가련하다. 길 위에 오가는 사람도

흙먼지 속 헤매는 개미 같구나.

도대체 무슨 이익 찾으려는지

그 마음 저마다 얽매여 있나.

달팽이 뿔에 있다는 작은 두 나라 싸우는 사이에도

생사(生死)와 희로애락 존재하겠지.

어찌해야 그런 곳 훌훌 벗어나

저 먼 세상 밖을 노닐 수 있나.

 

 

() 원고를 불태우고

 

소년 시절 노래라고 끄적거리느라

붓만 잡으면 원체 거침없었네.

스스로 아름다운 구슬처럼 여겨

누가 감히 흠을 잡을까 했네.

나중에 찬찬히 다시 보니까

한 편 한 편 좋은 구절 하나 없구나.

차마 글 상자를 더럽힐 수 없어

아침 짓는 아궁이에 넣어 태웠네.

올해 쓴 시 내년에 보면

똑같이 지금처럼 던져 버리고 싶겠지.

당나라 시인 고적(高適)은 이런 까닭에

오십이 되어서야 시를 썼다지.

 

 

소를 매질하지 마라

 

소를 매질하지 마라. 소는 불쌍하니

아무리 네 소지만 꼭 때려야 되느냐?

소가 네게 무엇을 저버렸다고

걸핏하면 소를 꾸짖는 거냐.

무거운 짐 지고 만 리 길을 다녀

네 어깨 뻐근함을 대신해 주고

숨을 헐떡이며 넓은 밭을 갈아

너의 배를 불려 준다.

이만해도 네게 주는 게 많은데

너는 또 걸핏하면 올라타는구나.

너는 피리 불며 희희낙락하다가도

소가 힘들어 천천히 가면

꾸물댄다고 또 꾸짖어대며

몇 번이고 매질을 하지.

소를 매질하지 마라. 소는 불쌍하니

하루아침에 소가 죽는다면 넌들 살 수 있겠느냐?

소 치는 아이야 넌 참 어리석다

소의 몸이 무쇠가 아닌데 어찌 배겨 내겠느냐?

 

 

네놈들은 입이 몇 개기에

 

흉년에 백성들은 빈사(瀕死지경

앙상하게 뼈와 가죽만 남았는데

몸에 남은 살이 그 얼마나 된다고

남김없이 죄다 긁어내려 하는가.

 

그대는 보았나 강물을 마시는 두더지도

기껏해야 자기 배를 채울 뿐임을.

묻노니 네놈들은 입이 몇 개기에

백성들의 살을 그리 게걸스레 뜯어 먹나.

 

 

낙동강을 지나며

 

푸른 산속 굽이굽이 백 번을 돌아

한가로이 낙동강을 지나가누나.

풀이 깊어도 길은 있나니

소나무 고요해 바람도 없다.

가을 물은 청둥오리 머리처럼 푸르고

새벽노을은 성성이 피처럼 붉다.

누가 알리 이 나그네가

천하의 시인인 줄을.

 

 

본래 구름과 물을 사랑하니

 

근심은 진한 술에 의지해 풀고

병든 몸은 등나무 지팡이가 부축해 주네.

바위는 거북처럼 단단히 웅크렸고

산봉우리는 성난 말처럼 치달리네.

바람도 없는데 소나무는 스스로 소리를 울리고

날이 개려니 안개가 먼저 피어나네.

본래 구름과 물을 사랑하니

전생에 중이 아니었을지.

 

 

동명왕의 노래

 

혼돈이던 원기(元氣, 만물의 정기)가 갈라져서

천황씨(天皇氏)와 지황씨(地皇氏) 되었네.

천황씨는 머리가 열셋 지황씨는 열하나

그 모습 퍽이나 기이하였지.

그 나머지 성스러운 제왕들의 이야기

경전과 역사책에 실려 있다네.

여절(女節)은 커다란 별빛을 받아

소호(少昊)을 낳았고*

여추(女樞)가 전욱(顓頊)을 낳게 된 것도

북두성(北斗星) 광채를 받아서이지.

복희씨(伏羲氏)는 희생 제도 마련하였고

수인씨(燧人氏)는 나무 비벼 불 일으켰네.

명협(蓂莢)이 난 것은 요()임금의 길조(吉兆)**

곡식비 내린 건 신농씨의 상서(祥瑞).

여와(女媧)는 구멍 난 하늘 기웠고

()임금은 큰 홍수 다스렸다지.

황제(黃帝)가 하늘에 오르려 할 제

턱수염 난 용이 찾아와 그를 태워 갔지.

태곳적 순박할 때는

신령하고 성스러운 일 이루 다 적을 수도 없었는데

후세에 인정이 점점 각박해지고

풍속은 거의 다 사치해졌네.

성인(聖人)이 간간이 태어났어도

신령한 자취 나타난 일 드물었다지.

 

* 여절(女節)~ 낳았고 : 여절은 천상의 선녀로서 황아(皇娥)라고도 한다. 궁상(窮桑)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뽕나무 아래에서 계명성(啟明星, 금성)의 정령과 만나 서방(西方)을 관장하는 신 소호를 낳았다고 한다. 소호는 황제(黃帝)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 명협(蓂莢)~ 길조(吉兆) : 명협은 모두 열다섯 개의 잎이 보름 동안 차례로 하나씩 달리다가 또 하나씩 떨어지는 것으로써 한 달의 날짜를 알려 주는 상서롭고 신기한 풀인데, 요임금의 뜰에 돋아났다 한다.

 

(중략)

 

성 북쪽 청하(靑河, 압록강)

하백(河伯)의 어여쁜 세 딸*

새파란 물결을 헤치고 나와

웅심연(熊心淵) 물가에 가 노닐었었네.

옷에 매단 옥구슬 쟁그랑거리고

얌전한 그 얼굴 꽃처럼 고왔지.

처음엔 한고대(漢皐臺)**의 선녀인가 했다가

다음엔 낙수(洛水)의 복비(宓妃)***인가 했다네

해모수 나가서 사냥하다 보고

눈짓을 보내며 마음 두었네.

화려한 모습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참으로 후계자 얻기가 바빠서였지.

새 처녀 해모수가 오는 걸 보고

물속에 들어가 한참을 피했네.

해모수는 장차 궁전을 지어

함께 와서 노닐 때 기회 엿보려

말채찍으로 한번 땅을 그으니

구리 집이 어느새 솟아올랐네.

화려한 비단 자리 깔아 놓고서

좋은 술 금 술잔에 따라 놓았네.

과연 사뿐사뿐 걸어 들어와

마주 앉아 마시고 취해 돌아가는 길

해모수 이때다 나와 가로막으니

놀라 달아나다 미끄러져 넘어지고

맏딸 유화(柳花)

그예 붙잡히고 말았네.

하백이 크게 노하여

사자(使者)를 시켜 급히 달려가

말 전하길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경솔하고 방자한 짓을 하는가?”

대답하길 이 몸은 천제의 아들

고귀한 가문과 맺어지고 싶습니다.”

하늘을 가리키니 용이 끄는 수레 내려와

그 길로 깊은 바다 궁궐에 이르렀네.

하백이 해모수에게 이르길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

중매와 예물(禮物)의 법도 있거늘

어떻게 제멋대로 할 수 있겠나?

그대가 상제(上帝)의 아들이라면

무궁무진한 변화를 시험해 볼까.”

푸르게 일렁이는 물결 속에서

하백이 변하여 잉어가 되니

해모수 변하여 수달이 되어

몇 걸음 못 가서 곧바로 잡네.

또다시 두 날개가 나서

푸득푸득 꿩이 되니

해모수 다시 영묘(靈妙)한 매가 되어

후려치는 모습 어찌 그리 사나운지.

저쪽에서 사슴이 되어 달아나면

이쪽은 승냥이가 되어 쫓았네.

하백은 신령한 힘 있다는 걸 알고

술자리 벌이고 서로 즐거워했네.

 

* 하백(河伯)~ 세 딸 : 맏이의 이름은 유화(柳花, 버들꽃), 둘째는 훤화(萱花, 원추리), 막내는 위화(葦花, 갈대꽃)이다.

** 한고대(漢皐臺) : 한고(漢皐)는 중국 호북성에 있는 산의 이름이다. 주나라 때 정교보(鄭交甫)라는 사람이 이곳을 지나다가 선녀에게 옷에 매단 구슬을 선물받았다는 전설이 있다.

** 낙수(洛水)의 복비(宓妃) : 낙수(洛水)는 황하의 지류로 섬서성에서 발원하는 강의 이름이고, 복비(宓妃)는 복희씨의 아름다운 딸로, 낙수에 빠져 죽은 후 낙신(洛神)이 된 여인이다.

 

(하략)

 

 

()

 

백운거사는 누구인가

 

백운거사(白雲居士)는 이규보 선생이 자기에게 붙인 호(). 자신의 본명을 감추고 호를 드러낸 것이다. 그가 이런 호를 스스로 붙이게 된 취지는 그의 글 <배운거사 어록>에 자세히 적혀 있다.

백운거사의 집에는 식량이 떨어져 끼니를 잇지 못하는 일이 잦았으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유쾌히 지냈다. 성격이 소탈하여 스스로를 잡도리할 줄 몰랐으며, 온 천지와 우주를 좁게 여겼다. 항상 술을 마셔 어질어질하면서도 누구라도 불러 주면 반가이 나갔다가 잔뜩 취해서 돌아오곤 했으니, 아마도 옛날의 애주가 시인 도연명(陶淵明)과 같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그는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시며 이렇게 세월을 보냈다. 이것은 그의 기록이다. 백운거사는 취하면 시를 읊고, 스스로 전()을 짓고 스스로 찬()을 지었다.

그 찬은 이러하다.

 

그의 뜻은 본래 천지의 밖에 있나니, 하늘과 땅도 그를 가두지 못하리. 이제 끝없이 텅 빈 세계에서 우주의 순수한 근원과 더불어 노닐 것이라네.”

 

 

시루가 깨진다고 사람이 죽으랴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일생을 기록한 역사서를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두목이 죽을 무렵 밥 짓던 시루가 쩍 갈라지니, 두목이 불길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이런 말은 무당이나 판수의 거짓되고 변변치 못한 술수이다. ‘불길한 일이라는 두목의 말은 순수하고 올바른 선비로서 마땅히 할 말이 아니다. 이 역사서를 편찬한 송기(宋祁) 역시 이런 일은 숨기는 것이 당연한데도 오히려 적어 넣었으니 잡스럽다고 하겠다.

한편, 고대 중국 역사서인 서경(書經)에는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 운수가 다 된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원래 암탉에게는 새벽을 알리는 책임이 없다. 그러므로 암탉이 새벽에 울면 이보다 더 괴이한 일이 집안에 있겠는가? 이런 일은 옛날 은()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꿩이 솥귀에 올라가 울고, ()나라의 잔치에서 쥐가 대궐 정문에 올라가 춤을 췄다는 요상한 일보다 더 심하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인 공자(孔子)서경을 편집하면서 이 구절을 삭제하지 않고 남겨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루가 갈라지는 일이라면 불이 너무 뜨거워서 그럴 수도 있고 물이 다 증발해도 그럴 수도 있으니 반드시 괴이한 일은 아니다. 시루가 쭉 갈라질 무렵에 두목이 죽게 된 것일 뿐이니, 꼭 맞는 징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것을 놓고 말하자면, 작년 9월에 우리 집에서 밥을 짓던 시루가 쩍 하고 갈라졌으나 나는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금년 2월에도 시루에서 소가 울부짖는 소리가 나더니 조금 후에 누가 일부러 깨뜨린 것처럼 퍽 깨어졌다. 부엌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아연실색해서 내게 달려와 말을 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있었다. 그때 마침 점쟁이가 와서 말했다.

이 일은 주인어른께 이롭지 못하겠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재앙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내는 급히 그 말대로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짓을 못 하게 말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은 다 운명이오. 정말 죽을 때가 되었다면 저 괴상한 일은 먼저 나타난 징조일 따름이니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그런 일이 아니라면 시루 깨진 일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겠소?”

그런데 나는 과연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다. 두목은 무엇이 못나서 시루가 깨지는 걸 한 번 보자마자 죽고, 나는 무슨 덕이 있어서 시루가 두 번이나 깨어져도 죽지 않았겠는가? 이것이 징조가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나는 나중 사람들이 그런 말에 빠질까 걱정되어 이것을 적어 밝혀 둔다.

 

 

뇌물 권하는 사회

 

내가 배를 타고 어떤 강을 건너 남쪽으로 갈 때의 일이다. 그때 바로 곁에서 나란히 가는 배 하나가 있었는데, 그 배는 내가 탄 배와 크기도 같고 뱃사공의 수도 같았으며 배에 탄 사람이나 말의 수도 거의 비슷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보니 그 배는 나는 듯이 달려 벌써 건너편 언덕에 닿았는데 내가 탄 배는 머뭇거리기만 하고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까닭을 물었더니 같은 배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저 배는 사공에게 술을 먹여서 사공이 힘을 다해 노를 적기 때문이라오.”

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없을 수 없어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 참! 이렇게 조그만 배가 갈 때에도 뇌물을 주어야 빨리 앞서가고 뇌물이 없으면 미적미적 뒤처지는데, 하물며 벼슬자리를 다투는 마당에서야 어떻겠는가! 내 수중에 돈이 없으니 지금껏 작은 벼슬자리 하나 맡지 못한 것도 당연한 거지.”

훗날 보려고 이렇게 적어둔다.

 

 

()와 개에 관한 명상

 

한 손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엊저녁에 어떤 불쾌하게 생긴 남자가 큰 몽둥이로 떠돌이 개를 쳐 죽이는 걸 봤는데, 너무도 불쌍하고 마음이 아프더군요. 그래서 앞으로 개고기나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어제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한 화로 곁에 앉아서 이를 잡는 족족 태워 죽이는 걸 봤는데, 마음이 아파 다시는 이를 잡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지요.”

손님은 놀라서 이렇게 말했다.

이는 하찮은 벌레 아닙니까. 나는 덩치가 있는 큰 짐승이 죽는 걸 보고 불쌍해서 그렇게 말한 것인데 당신은 이런 식으로 대꾸하다니, 나를 놀리는 게 아니오.”

이 말을 듣고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사람으로부터 소나 말, 돼지와 염소, 개미 같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마음은 같은 법이라오. 어찌 큰 생물만이 죽음을 싫어하고, 작은 생물은 그렇지 않다 하겠소? 그렇다면 개와 이의 죽음은 동일한 것이지요. 그래서 당신의 말에 대해 그렇게 대꾸한 것이지, 어떻게 일부러 당신을 놀리려고 한 말이겠소?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당신의 열 손가락을 한번 깨물어 보시구려. 어디 엄지손가락만 아프고 나머지는 아프지 않습디까? 한 몸에 있는 것이라면 크고 작은 마디 하나하나에 모두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똑같이 아픈 것이지요. 하물며 하늘로부터 제각기 숨과 (氣)를 부여받은 존재로서, 어느 것은 죽음을 싫어하고 어느 것은 죽음을 좋아할 리가 있겠소?

그대는 물러가서 마음을 고요히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시오. 달팽이 뿔을 쇠뿔같이 보고, 메추라기와 붕()새를 평등하게 보게 된 연후에라야 나는 그대와 함께 도()의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오.”

 

 

책상과 나

 

내 피곤한 몸 받쳐 준 건 너이고, 네 절름거리는 다리 고쳐 준 건 나이다. 같이 병들어 서로 도우니 누가 더 공이 있다 하겠나.

 

 

조그만 벼루

 

벼루야. 벼루야. 네가 조그만 건 부끄러워할 일 아니란다.

너는 비록 한 치의 오목한 돌이지만 내 끝없는 생각을 쏟아내게 해 준단다.

나는 비록 육 척의 키 큰 사람이지만 모든 일을 네 힘을 빌려 이뤄내지 않니.

벼루야. 너는 나와 함께 돌아가, 살아도 죽어도 같이하자꾸나.

 

 

김하라 편역, 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 돌베개, 2006

 

 

이규보

고려 중기의 문인이다.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이며, 문집으로 동국이상국집이 있다. 도가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유교와 불교를 아우른바, 그의 시 세계는 현실주의와 낭만주의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그는 장자의 영향으로 만물을 평등하게 보면서도 장자와는 달리 따뜻한 연민을 간직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구체적 아름다움과 존재의미를 읊은 영물시와 잔약한 백성에 대한 연민이 표출된 애민시에서 전인미답의 경지를 이루었다.

 

김하라

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에서 앞으로 선생님이 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한문으로 된 옛 책들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와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한문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경북 안동에서 나고 자랐으며, 6학년 때 몽실 언니를 읽고 권정생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서 받은 답장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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