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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 티라노사우루스부터 북극곰까지 인류와 공생한 동물들의 이야기, 사이먼 반즈

  • 작성자김동민
  • 작성일2025-11-22 20:09
  • 조회74
  • [보도자료]
  • 2025-11-22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사이먼 반즈

티라노사우루스부터 북극곰까지

인류와 공생한 동물들의 이야기

 

 

사자와 티라노사우루스로부터 모기와 바퀴벌레에 이르기까지 100가지 동물을 하나씩 살피다 보면 어느새 세계사가 퍼즐처럼 맞춰진다. 이 책은 우리를 둘러싼 동물들을 이해하면서 인류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분야 최고의 역사책이자 과학책이다. -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 원장 -

 

이런 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도도새를 읽었을 때, 비 오는 날 지렁이를 만났을 때, 아이 머리에서 머릿니를 발견했을 때, 곧장 책꽂이로 달려가 꺼내 찾아볼 수 있는 책이다! 차곡차곡 쌓은 지식에 번뜩이는 통찰을 뿌린 뒤 압축기로 누른 듯한 저자의 노고가 돋보인다. - 남종영 한겨레 기자 -

 

 

서문

 

인간과 고등동물의 차이는 크지만,

그것은 양적인 차이이지 질적인 차이는 아니다.”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우주에서도 혼자가 아니다. 지구에서도 혼자가 아니다. 야생에서도 혼자가 아니다. 농촌에서도 혼자가 아니다. 도시에서도 혼자가 아니다. 집에서도 혼자가 아니다. 욕조나 샤워 부스에서도 혼자가 아니다. 모낭충이 우리 얼굴 피부에서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인간의 고유성을 신줏단지 모시듯 애지중지한다. 우리의 사상, 철학, 종교, 예술 심지어 과학까지 인간의 고유성을 전제로 한다. 지나친 인간 중심주의가 인간과 동물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는다. ‘비인간적이라는 말은 인간 사회에서는 최악의 모욕이라 함부로 쓸 수 없다. 아돌프 히틀러나 폴 포트 정도를 요구할 때 쓰려고 아껴 두는 말이다. 하지만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강아지, 털 뭉치를 갖고 노는 새끼 고양이, 여왕이 타고 다니는 말도 모두 비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인간도 사실은 개나 고양이, 우리가 먹는 소나 물고기, 식물의 꽃가루를 옮기는 벌, 얼굴에 사는 진드기처럼 동물이다, 인간은 척추동물이면서 포유류이고 영장류다. 침팬지나 보노보와 DNA98% 이상 공유하는 유인원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삶과 역사와 사상은 지구에서 공존하는 다른 동물들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비인간인 동물들은 300만 년 전 인류 조상이 아프리카 대초원을 돌아다닐 때부터 인간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고, 지금까지도 계속 그래 왔다.

 

우리 인류는 동물로 마음을 채웠을 뿐 아니라 동물을 선과 악의 상징으로 삼았다. 기독교를 비롯한 수많은 종교에서 신을 표상하는 존재는 동물이었다.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고 독수리는 전쟁을 상징한다. 바다로 향한 인류는 바닷속에서 이상적인 식량원을 발견하고는 그것이 절멸 위기가 올 때까지 잡아들였다. 그러다가 인간들은 자신들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종으로서 살육의 악습을 벗어버리고 동물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겠다고 맹세했다.

우리는 동물을 집으로 데려와 사랑을 듬뿍 쏟았고 곁에 두며 위안을 얻었다. 신화에 야생동물을 등장시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한 존재로 만들기도 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고결한 존재로도 만들었다. 동물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 속 인간의 이치를 파악하려 시도했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과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를 운영하는 방식을 혁신시켜 나갔다.

동물계 종의 수에 대한 추정치는 많다. 대략 중간치인 1,000만 종이라고 해 보자. 1,000만 종이 각각 이런저런 방식으로 부지불식간에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도 이 모든 종에게 각각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였으므로 1,000만 종 가운데 100종을 선정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작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영어로 썼지만, 다루는 내용은 영어권 세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 책의 범위는 전 세계를 아우른다. 이 책은 인간이라는 동물과 동물계를 이루는 다른 9999,999종과의 관계를 주제로 다룬다.

 

 

001 사자 용맹한 제왕의 상징이 되다

 

사자는 확실히 인류의 가장 오랜 적이다. 인간은 아프리카 대초원에서 최초로 직립보행을 시작했고 사자와 함께 걸어 다녔다. 인간은 성장하고 발달하고 진화했고 사자는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을 것이다. 사자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인간이 내는 소리를 듣고, 인간의 냄새를 맡고, 인간을 만지고, 인간의 맛을 보았다. 옛날에는 인간이 생태계를 지배하지 못했다. 그저 한낱 먹잇감에 불과했다. 오늘날에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개인적인 경험으로 그 사실을 안다.

 

20세기 초 맹수 사냥은 부와 권력을 과시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 물론 사자가 궁극의 사냥감이었다. 사자를 죽인 사람들은 매우 용감할 뿐더러 인류를 위해 선행을 실천했다는 정서가 팽배해 있었다. 인구가 점차 늘어나면서 사자는 기존 서식지에서 쫓겨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판적 움직임이 일어났다. 1960년대 환경운동이 추진력을 얻으면서 지구상의 천연자원과 야생 세계가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서서히 인식한 것이다. 이 새로운 물결을 타고 엘사(Elsa)가 등장했다.

 

사자는 중요하다. 런던 트래펄가광장의 넬슨 제독 동상을 떠받치고 있는 동물도 사자다. 사자는 국가를 상징하는 표식에서도 포효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자는 남성의 미덕을 상징한다.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는 유다의 사자였다. C. S. 루이스 나니아 연대기에서 아슬란은 메시아로 등장한다. 사자와 조우하는 일은 많은 사람의 버킷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사자는 인류 여명기부터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고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상상 속에 자주 출몰한다.

 

 

011 오리너구리 짓궂은 장난

 

오리를 완벽히 닮은 부리가

네발짐승의 머리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위적 수단으로 만든 거짓 생명체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기 마련이다.”

조지 쇼, 박물학 문집

 

오리의 부리, 두더지의 털, 수달의 꼬리를 가진 오리너구리는 확실히 믿기 힘든 동물이었다.

 

오리너구리는 파충류와의 연결 고리가 발견되면서, 다시 말해 파충류, 조류, 포유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어 연결 고리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원시적이라는 통념이 대두되었다. 오리너구리는 어딘지 모르게 불완전하며 세계 어디서든 오스트레일리아 동부보다 가혹한 환경에서 더 정교한 동물로 대체되었다는 생각 말이다. 이는 진화를 놓고 널리 퍼진 오류를 드러낸다. 진화는 본질적으로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간다는 오해, 진화의 목적은 완벽함으로 더 다가가는 것이라는 통념, 진화는 동물의 서열을 드러내므로 바닥의 가장 하찮은 동물’, 즉 인간과 가장 다른 동물에서 출발해 결국 아름답고 영예로운 인간에서 완성된다는 오해, 결국 목표와 최종 결과야말로 진화의 최종 목적이라는 통념 말이다.

이 문제는 나중에 더 파헤쳐보겠지만, 아무튼 오리너구리에게서 읽어낸 이러한 메시지는 왠지 기분 좋은 안도감을 준다. 후속 연구로 위의 통념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리너구리는 놀라운 동물이며, 퀸즐랜드의 열대우림과 태즈메이니아산맥의 추운 고지대, 반은 물에서 반은 땅에서 살아갈 수 있다. 두꺼운 털이 공기를 품을 수 있어 겨울에도 물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고, 먹이는 대부분 물속 밑바닥에서 잡는다.

오리너구리는 휘몰아치는 파도와 고요한 호수에도 쉽게 적응할 줄 안다. 물가에 굴을 파고 암컷이 그 유명한 알을 굴속에 낳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은 오리너구리가 알을 낳고 뒷다리에 독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초창기 연구자들은 원주민들에게 이 동물에 대해 물어보며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원주민들이 오리너구리 이야기도 있고, 종래의 동물 분류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굳이 무리의 일원이 되려 하지 않고 특이성에서 존엄성과 의미를 찾는 이야기다.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리너구리는 인간에게 생명의 의미를 가르쳤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진기한 동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이들이 더 큰 지식과 심오한 이해로 가는 첫걸음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013 티라노사우루스 폭군 도마뱀의 왕

 

티라노사우루스와 알로사우루스야말로

진정 무시무시하다고 할 만한 공룡들이다.”

버사 모리스 파크, 자연의 황금 보고

 

인간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일주일은 정치에서는 긴 시간이다. 반 학기는 어린이에게는 영원의 시간이다. 크리스마스는 작년에 지낸 이후로 열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돌아온다. 그럼 우리는 벌써 그렇게 됐어? 도대체 시간이 어느새 그렇게 가버린 거야?” 하며 또 깜짝 놀란다.

 

그런데 이제 심원한 시간(Deep Time)’이 발견되었다. 그 발견과 함께 지구가 인간종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는 대단히 충격적이고 이해 자체가 불가능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사실 대략적으로 보아도 지구의 전체 역사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지구가 겪었다는 45억 년이라는 시간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은 100만과 10억도 혼동하는데 말이다. 인간의 뇌는 이토록 어마어마한 숫자를 이해하도록 조직되어 있지 못하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말대로 인간의 두뇌는 몸이 동작하는 크기와 속도의 규모에 맞춰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진화했다.

 

1874년 북아메리카에서 티라노사우루스(폭군 도마뱀의 왕이라는 의미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라고도 불린다. ‘렉스는 라틴어로 왕이라는 뜻이다)의 이빨이 가장 먼저 발견되었다. 척추뼈는 1892년에 발견되었다. 1900년 고생물학자 바넘 브라운은 와이오밍주 동부에서 골격의 일부를 발견했고, 1902년에는 몬태나주 헬크리크층(미국 서부에서 발견된 백악기 말기 및 팔레오세의 지층. 공룡시대의 마지막 지층이다)에서 또 다른 골격의 일부를 발견했다. 화석에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1905년이었다. 이 이름이야말로 천재적인 창조성을 드러낸 업적이다. 이름을 붙인 인물은 고생물학자이자 미국자연사박물관장인 헨리 페어필드 오스본이다. 공룡의 이름에서 풍기는 신비감도 매력의 일부다.

공룡은 모두 학명으로 알려져 있다. 공룡을 가리킬 때 쓰는 평범한 이름은 아예 없다. 참새의 학명은 파세르 도메스티쿠스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런 이름을 입에 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라는 학명은 과학자든 일반인이든 누구나 부르는 이름이다. 이 어려운 라틴어가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온다. 폭군 도마뱀의 왕이라는 뜻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인간의 상상을 영원히 쫓아다니는 사냥꾼 같은 존재다. 어린 시절 처음 만나 결코 잊히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다. 이들은 우리에게 진화의 진실뿐 아니라 녀석을 존재할 수 있게 해 준 지구상의 기나긴 생명의 역사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들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 골칫거리다. 지구 역사 6,000년 동안 티라노사우루스는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절멸의 첫 교훈이다. 애석하게도 종의 절멸 혹은 멸종이라는 주제는 이 책에서 여러 차례 다시 살펴볼 수밖에 없는 문제다.

 

 

020 당나귀 신을 등에 태운 겸손한 짐승

 

늙은 회색 당나귀 이요르는 엉겅퀴가 무성한 숲속 외딴 구석에 혼자 서 있었어.

앞발을 널찍이 벌리고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는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지.

때로는 슬퍼하며 ?’라는 생각도 하고, 때로는 뭣 때문에?’라는 생각도 하고

가끔은 어떤 점에서?’라는 생각도 했어.

가끔은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잘 모를 때도 있었지.”

A. A. 밀른, 곰돌이 푸

 

당나귀는 인류가 노동을 절약하는 데 최초로 사용한 도구였다. 당나귀는 5,000년 넘는 세월 동안 무거운 짐을 지면서 인간을 도왔다. 이후로 인간은 얼간이나 바보를 가리켜 당나귀라고 부르는 희한한 방식으로 당나귀에게 감사(?)를 표현해 왔지만, 한편으로는 녀석의 충직함과 무던함 때문에 애정도 깊이 간직해왔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왕의 군마 대신 당나귀를 탔다. 자신을 낮추어 칭송을 받은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롤스로이스보다 자전거를 선호한 셈이다. 예수는 우리와 같은 한 명의 사람이었다는 것이 종려주일(기독교에서 예수가 죽음을 앞두고 예수살렘에 입성한 날을 기념하는 부활절 전 주일을 가리킨다옮긴이)의 여정에 담긴 의미다. 당나귀는 궁극적으로 겸허한 동물이다. 인간의 혐오와 애정을 동시에 받는 존재인 것이다. 당나귀는 본질상 희극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나 그 희극 뒤에서 우리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자질을 발견한다.

 

당나귀는 이집트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아시아 남서부로 퍼져 나간 후 약 4,000년 전에 유럽에 당도했다. 로마인들은 훗날 당나귀를 제국 전역으로 퍼뜨렸다. 현재 중국에 있는 당나귀는 1,100만여 마리다.

오늘날 당나귀는 가난한 지역사회 및 개발도상국을 연상시킨다. 일을 도와줄 당나귀가 존재하는 이유는 더 나은 대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극히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동물이다. 이들은 더럽고 천한 일을 도맡는 전문가다.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당나귀는 이요르(Eeyore)일 것 같다. 1926A. A. 밀른의 아동 판타지 동화 곰돌이 푸에 처음 등장한다. 이요르는 자신의 불행을 항상 나누고 싶어 하는 우울한 당나귀다. “이요르가 말했어. ‘내가 알았어야 했나 봐. 어쨌거나 누구도 불평할 수는 없어. 내게는 친구들이 있어. 누군가가 겨우 어제 말해주었을 뿐이야. 지난주인가 지지난주에 래빗이 나에게 부딪치다니 젠장!’이라고 말했지. 사교 모임에선 항상 무슨 일이 생기는 법이야.’”

 

영국에서 당나귀는 노역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아이들이 휴일에 해변에서 탈 수 있는 놀이용 동물 노릇을 했다. 해변에서 당나귀 타기는 1886년 웨스턴슈퍼메어라는 해변에서 시작되었다. 1950년대에 나도 그곳에서 당나귀를 타 본 적이 있다. 요즘은 이런 오락도 쇠락일로에 있다.

그래도 당나귀를 향한 큰 애정만큼은 쇠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고통당하는 당나귀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한다. 그래서인지 당나귀 보호에 진지한 태도로 돈을 낼 의지가 있다. ()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는 당나귀가 고통당한다는 생각에 아파하는 듯하다 이러한 감정은 동물을 위한 자선 분야에 팽배해 있다.

 

 

035 낙타 혹이 한 개 또는 두 개?

 

낙타의 혹은 동물원에 가면 볼 수 있어.

하지만 그 추한 혹은 우리에게도 생길 수 있어.

우리가 게으름을 부린다면 말이야.”

러디어드 키플링, 아빠가 읽어주는 신기한 이야기

 

 

현존하는 낙타는 세 가지 종이 있다. 혹이 하나인 단봉낙타는 대부분 서아시아와 아프리카 뿔 지대(아프리카 대륙 동쪽 끝에 코뿔소 뿔처럼 튀어나온 소말리아 반도 인근을 가리킨다옮긴이) 에서 진화해 살고 있다. 혹이 두 개인 쌍봉낙타는 중앙아시아 박트리아가 주 서식지이다. 박 트리아는 힌두쿠시산맥 북쪽 지대다. 단봉낙타와 쌍봉낙타는 현재 품종 개량이 완전히 이루어진 상태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와 카자흐스탄의 단봉낙타 중에 야생종 개체군이 일부 있기는 하다. 유일하게 남은 야생종은 야생쌍봉낙타로 개량된 종과는 다른 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에서 발견된다. 개체 수는 1,000마리가 약간 넘는 정도로 적색 목록에서 위급(CR) 종으로 분류된다.

 

서양에서 낙타는 어쭙잖고 다루기 힘들며 아주 무례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러디어드 키플링은 영국군에서 활용하는 짐 운반용 낙타를 위한 행진곡을 썼다.

 

못해! 안 돼! 싫어! 안 해!

그냥 대열만 따라갈 수밖에!

누군가의 짐이 등에서 떨어지네.

그 짐이 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서양 문화에서 낙타는 이국적 취향을 불러일으키는 동물이기도 하다. 낙타 한 마리면 이국적인 이미지가 바로 떠오른다. 마르크스 형제가 1946년에 만든 영화 카사블랑카의 밤의 포스터를 보라. 낙타는 영화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핵심이다. 동방박사, 즉 동방에서 온 현자인 세 왕은 최초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고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다. 예로부터 이들은 낙타를 탔다. 동방의 현자가 방문했다는 것은 구세주 탄생이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사건이고, 여기에는 이국 사람들도 포함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그린 만테냐의 회화에서도 쌍봉낙타를 찾아볼 수 있다.

T. S. 엘리엇의 시 <동방박사의 여정>에도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러 오는 낙타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낙타들은 피부가 벗겨져(galled)

발이 쓰리니 걷기를 마다하고(refractory)

질척이는 눈 위에 드러누워 버렸네.

 

 

063 까마귀 불구대천의 원수

 

까마귀가 어머니의 귀에 대고 울자

귀는 누렇게 시들어 뭉툭한 잔해만 남았다.”

테드 휴즈, 까마귀

 

 

까마귀과에는 약 120종이 있고, 까마귀속에는 46종이 있다. 까마귀과에는 까마귀, 떼까마귀, 큰까마귀, 갈까마귀, 어치, 까치, 나무까치, 노랑부리(붉은부리)까마귀, 잣까마귀 등이 속한다. 이들은 참새목이고, 그래서 노래하는 새인 명금이나 정원에서 먹이 주는 사람들을 찾아오는 많은 새들과 친척 관계이지만, 이들 대부분의 새보다 더 크고 활발한 편이며 다리도 강하고 부리도 대체로 단단하다. 까마귀는 당당하고 대담하게 굴고 자주 시끄러운 편이라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여러 연구에도 불구하고 까마귀의 지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어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아보는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조류종이다. 많은 까마귀종이 도구를 사용하고 심지어는 만들기까지 한다. 누벨칼레도니까마귀는 갈고리를 만들어 좁은 틈새에서 곤충의 애벌레를 꺼내 먹는다. 도구를 사용해 부리가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다른 도구를 꺼내기도 하고, 그 결과 곤충을 잡는다.

일화로 남은 일부 증거는 훨씬 더 인상적이다. 뿔까마귀가 연못의 물 위에 빵 조각을 뿌려놓고는 기다리고 있다가 그것을 먹으러 온 물고기를 잡는 모습도 목격되었다. 일본의 까마귀는 차가 지나가면서 깨뜨리도록 도로 위에 일부러 견과류를 올려놓기도 했다. 이 까마귀들은 횡단보도를 이용해 더욱 정교하게이 방법을 썼다. 횡단보도 정지선 앞에 자동차가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깨진 견과류를 주운 것이다.

 

2019년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데일리 메일은 까마귀 사냥 허가 중지를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제목을 붙였다. “까마귀가 어린 양을 괴롭히고 죽이도록 허용하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법.” 까마귀는 눈에 보이는 적이고 인간이 영위하는 삶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러한 범죄에 대해 까마귀들이 자비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081 카나리아 도시의 노래

 

새장에 갇힌 물새 한 마리가

천국을 송두리째 분노에 빠뜨린다.”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에도 도시는 이미 시끄러운 장소였다. 도시는 사람들의 고함소리,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 아기 울음소리, 수레나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 장사꾼들이 외치는 소리로 가득했다. 폐소공포증을 일으킬 것 같은 단일 문화 속에서 북적이며 사는 수많은 단일 종의 숨 가쁜 소리로 가득 찬 곳이 도시였다.

우리는 도시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새의 노래에서 발견했다. 야생 조류의 노랫소리는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로 꽉 들어찬 도시에 새들을 위한 공간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연으로 나가 야생 조류를 잡아 왔다. 노래할 수 있는 새를 골랐고 이들이 지저귀는 노래는 어두운 도시 생활을 밝혀주었다.

이 장의 제목을 카나리아로 붙인 것은 카나리아가 새장 속에서 노래하는 새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카나리아는 창살 너머의 콜로라투라 가수와 같다. 카나리아를 우리 인간의 집 안으로 들인 것은 비교적 최근으로 5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장에서는 우리가 노래를 듣기 위해 새장에 가둔 다른 새들도 모두 살펴보아야 한다. () 플리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마르쿠스 나에니우스 스트라보 기사는 온갖 종류의 새가 들어 있는 커다란 새장을 최초로 부룬디시움(이탈리아 남동부 항구 도시 브린디시의 옛 이름옮긴이)에 들여온 사람이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대자연이 하늘에 할당한 동물을 가두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새를 기르는 것은 도시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서양뿐 아니라 많은 문명에서 새를 기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새를 기르는 중국의 전통은 금붕어를 기르는 것만큼 유서가 깊다. 1519년에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즈텍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도착했을 때 목테수마 황제의 커다란 새장을 발견했다. 황금으로 가득한 새장 속에 새들은 아주 호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코르테스는 그 황금 대부분을 훔쳤다.

 

카나리아는 완전히 길들여 과학 실험에도 사용했다. 뇌에서 뉴런이 어떻게 발달하는지, 새가 어떻게 소리 내고 노래하는지, 척추동물의 뇌가 어떤 방식으로 학습하는지를 실험할 때 카나리아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이제 세상에서 새를 기르는 관습은 적어도 서양에서는 줄어들었다. 인도네시아는 새장에서 노래하는 새의 거래가 활발하고 최고의 가수 새를 뽑는 전국 대회도 있다. 이런 관행은 야생 개체들의 지속 불가능한 약탈로 이어졌다. 덕분에 야생종 특히 아시아의 야생종은 새장 속에 가둬놓고 노래를 부르게 하려고 잡은 새들의 불법 거래로 고통당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새의 노랫소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적어도 우리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100 북극곰 세상 끝 벼랑에 몰린 꿈

 

그러고 내가 보니, 청황색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사람의 이름은 사망이고 지옥이 그를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칼과 기근과 죽음과 들짐승으로써

사분의 일에 이르는 땅의 주민들을 멸하는 권세를 받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68

 

 

지구상 동물 중 환경 보전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바꾼 동물은 북극곰이다. 북극곰 이야기가 전하는 이미지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이미지는 에드윈 랜시어가 1864년에 그린 그림으로 인류에 대한 자연의 궁극적인 승리를 나타낸다. 두 번째 이미지는 북극곰이 텅 빈 바다를 헤엄치며 눈앞에서 녹아내리고 멀어져가는 빙하를 계속 찾아 헤매는 이미지다. 앞의 이미지와는 반대로 자연에 대한 인류의 궁극적 승리를 상징한다. 첫 번째 이미지가 두 번째 이미지로 바뀌는 데 20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지구상의 다른 모든 종과 인간종의 관계에 관한 생각을 180도 바꾸었다. 심지어 가장 사납고 강한 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북극곰은 역사적으로 다른 육상 동물보다 더 넓은 서식 범위에서 살아왔다. 이들이 선택한 서식지는 인간이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서식 범위는 다섯 나라를 아우른다. 러시아, 캐나다, 미국(알래스카), 덴마크(그린란드), 노르웨이(스발바르제도). 주위에는 눈과 얼음, 개빙 구역이 있고 이들은 바다표범을 잡아먹는다.

 

북극곰은 부력 덕분에 거의 지치지 않고 몇 km를 헤엄칠 수 있다. 암컷 한 마리가 베링해에서 9일 동안 쉬지 않고 650km를 헤엄쳤다는 기록도 있다. 암컷은 그 여정에서 살아남았지만 새끼는 그러지 못했다. 이러한 환경의 문제 중 하나는 먹을 물이 없다는 것이다. 북극곰은 먹잇감인 바다표범의 지방을 대사하는 능력으로 늘 문제를 해결한다.

북극곰은 무심하게 흉포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북극곰과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이들 대부분이 대치 국면에서 신중한 경향을 보인다고 전한다. 사냥 기술의 특성 때문이다. 이들은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 기회를 노리는 쪽에 가깝다. 대부분의 북극곰은 인간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인간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다.

 

북극곰은 대중의 상상력을 크게 사로잡는 존재다. 어마어마한 몸짓, 하얀 색깔, 포악함에 얽힌 전설, 그리고 동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신비감 때문이다. 이들은 동물원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949년 런던 동물원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성공적으로 자라난 최초의 북극곰 브루마스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1950년 한 해 동안에만 약 30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브루마스는 1958년에 죽었다. 또 다른 북극곰 피팔루크는 1967년에 같은 동물원에서 태어났지만, 당시에는 북극곰을 가둬 놓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었다. 결국 피팔루크는 폴란드 동물원으로 이송되었다'

 

기후변화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급격한 기후변화는 과거에도 지구상에서 벌어진 적이 있었다. 가장 좋은 예를 페름기 초기에서 찾을 수 있다. 25,100만 년 전 시베리아에서 일어난 일련의 화산 폭발(혹은 유성 충돌)로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방출되었다. 이것이 바로 온실가스다. 그 결과 열대우림이 모조리 파괴되었고 이들의 유익한 효과도 사라졌으며 이들이 한때 서 있었던 토양은 풍화되었다. 바다는 산소를 잃었다. 지구상에 살고 있던 전체 종의 96%가 사라졌다.

희소식은 지구가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회복에 소요된 시간이 2,000만 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21세기의 북극곰은 충분히 주목해 볼 가치가 있다. 북극곰은 어디에도 없는 섬을 찾아 계속해서 헤엄치고 있다. 우리 모두 그곳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정말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페름기 멸종 사건 당시 지구에 살고 있던 생물과 달리 선택을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대량 절멸의 여부는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절멸 자체의 시작도 우리에게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절멸을 막을 수 있다. 반대로 절멸을 일으킬 수 있다.

지구의 사도인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지극히 간단명료한 말을 남겼다.

우리에게는 아직 모든 것을 되돌릴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이먼 반즈 지음, 오수원 옮김,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 현대지성, 2024

 

사이먼 반즈 Simon Barnes 동물학자

30년 동안 더 타임스에서 수석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야생동물에 관한 다수의 저작을 집필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저작들은 동물을 향한 따뜻한 애정과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특히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에서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어느 학자 못지않게 탁월하고, 베테랑 기자 출신답게 생생한 현장감과 재치있는 위트가 버무려진 필력이 돋보인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새 관찰자 되는 법(Bad Birdwatcher) 3부작, 야생으로 돌아가라(Rewild Yourself), 습지를 살리다(On The Marsh) 등이 있다. 국제 환경 보호 단체 월드랜드트러스트(World Land Trust)’의 위원회 위원, ‘사우스루앙과보전재단(Conservation South Langwa)’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코뿔소 보호 단체 세이브더리노(Save the Rhino)’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2014년에는 야생 보전에 공헌한 공로로 로스차일드 메달을 수상했다.

현재 영국 노퍽에서 가족들과 함께 말을 키우며 살고 있고, 이 지역의 생태계와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수천 평의 야생지를 돌보고 있다.

 

오수원 번역가/통역사영어

서강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료 번역가들과 번역인이라는 공동체를 꾸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역사, 과학, 철학, 문학, 경제경영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실험 100, 면역의 힘, , 걸어다니는 표현 사전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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