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 만든이, 읽는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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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역사 기행을 겸한 지리산 산행 완벽 가이드 - 김명수
- [보도자료]
- 2025-11-16
역사 기행을 겸한 지리산 산행 완벽 가이드 ≪지리산≫ 김명수
책머리에
지리산은 그 웅장한 자연 경관뿐 아니라 유장한 역사의 흐름을 보더라도 우리에게는 크나큰 의미와 영향력을 지닌 산이다. 지리산을 통해 부푼 꿈을 안고 새로운 삶을 기약하고, 지리산에 기대어 서럽게 울기도 하고, 때론 지리산 자락을 부여잡고 피 흘리며 발버둥쳤던 우리 역사가 어찌 한두 페이지이던가. 오늘도 우리는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훈풍에 살찌며,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에 몸을 움츠리면서, 마치 강력한 자장권 안에 갇힌 존재처럼 지리산의 크나큰 문화와 역사의 영향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과거 18개의 주요 산행 코스를 15개의 기점별로 분류 재편하여 소개하였다.
아무쪼록 이 책이 여러분의 지리산행에 알찬 도움이 되길 바란다.
1 주능선 종주 코스
지리산 주능선은 한 마리 소 형상을 닮은 지리산에서 등뼈에 해당되는, 가장 큰 골격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다.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서쪽 노고단까지 동서로 장장 25km에 걸쳐 남한 단일 산으로는 최장(最長), 최고(最高)의 산마루길이 열려 있는데 이 기나긴 고산 능선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주능선 종주 산행이다.
사실 지리산은 몇 차례의 산행만으로 다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넓다. 또 설령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한 번 올라보았을지라도 그 수직적인 올라섬 자체만으로는 감히 너른 지리산을 다 아울렀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주능선 종주를 해봐야만 어설프게나마 지리산을 느껴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주능선 종주 산행은 지리산을 두루 조망하고 효과적으로 느껴보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코스이다. 또한 지리산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지리산을 개략적인 규모나 옆면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인문 코스이자 지리산 산행의 꽃이다.
주능선 종주는 등정과 하산 길까지 합쳐 보통 40km 이상의 거리와 최소 2박 3일 이상의 일정, 그리고 그에 필요한 주ㆍ부식 거리와 산행 장비 등을 갖춘 다소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야 한다. 또 해발 1,300~1,900m의 능선 자락을 따라 숱한 고봉준령을 쉼 없이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기초 체력이 튼튼해야 하며 사전 준비에 빈틈이 없어야 곤란을 면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지리산 주능선길에는 누구나 기본적인 필수 산행 장비만 챙겨 들면 큰 어려움이 없도록 여러 가지 편의 시설이 곳곳에 잘 설치되어 있다.
주능선을 종주하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은 여러모로 볼 때 가을철이다. 지리산 주능선의 가을은 다소 성급하게 일찍 찾아와서 또 일찍 끝나는 게 특징이다. 요란하고 번잡했던 휴가철이 지나가고 어느덧 9월 중순으로 접어들면 멀리 주능선은 울긋불긋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이때쯤이면 대개 산행하기에 가장 쾌적한 날씨일 때가 많고 또 시각적으로도 피곤하지 않으므로 초행자들은 주능선 종주를 한 번쯤 챙겨봄 직하다.
남한 최장 최고 산행 코스, 지리산 산행의 꽃
주능선 종주 코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일본인 식물학자 나가이(中井猛之進)는 지리산 전체의 식물 조사를 행하고 ≪지리산 식물 조사 보고서≫를 편한 적이 있다. 이 책 부록에 첨부된 지리산 전도에는 지리산의 여러 등산로와 함께 주능선길이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때 당시 주능선길이 뚜렷한 산길이었는지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이즈음하여 주능선길이 열리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지리산 주능선 종주는 천왕봉과 노고단, 그 어느 쪽에서 시작해도 모방하지만 여기서는 올라간다는 산행의 묘미를 살리는 차원에서 노고단에서 출발하여 천왕봉으로 가는 여정으로 잡는다.
천년의 제사터 노고단은 운무에 휘감기고
일반적으로 노고단은 신라시대부터 봄ㆍ가을에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국가적 차원의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 있던 곳으로 알려져 왔는데, 노고단은 ‘노고(老姑)’를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의 높임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고단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기층 민중들의 치성과 경배의 장소였으며 그러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노고단은 지리10경의 하나인 운해(雲海)가 단연 유명하다. 노고단의 구름바다는 지리산 남쪽 자락을 휘감아도는 섬진강의 습한 기운 때문에 다른 곳보다 빈도가 높다. 노고단 주변이 고요한 구름바다에 잠길 때면 멀리 봉두산과 조계산 등 남녘의 산들은 하나의 섬처럼 솟아 다도해(多島海) 같은 선경을 연출한다.
초적 두목 임걸년의 전설이 깃들인 임걸령샘
노고단 고개에서 임걸령까지의 3.2km 거리는 대체적으로 아주 순탄하고 부드러운 참나무숲 소로길로 이어져 있다. 큰 굴곡 없이 비교적 탄탄대로의 능선길인데 오죽했으면 노고단에서 임걸령을 향해 화살을 쏘고 말을 타고 달렸더니 말이 더 빨리 도착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올까. 노고단 북서 사면의 숲 속을 가로질러 산뜻한 기분으로 첫발을 내디디며 30분 정도 가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피아골과 심원골 사이의 돼지령에 닿는다. 봄철 이곳 일대는 진달래와 철쭉의 화려한 화원을 이룬다.
임걸년이 활동하던 시기는 조선 선조 27년(1594)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같은 시기 김희(金希), 강대수(姜大水), 고파(高波) 등의 도적들이 지리산과 회문산(回文山), 장성의 노령(蘆嶺) 등 수십 개 군의 산골을 점검하고 서로 내응하기도 했다고 나온다. 그밖에 실록에는 충청도 도적 송유진(宋儒眞)의 세력이 지리산과 속리산, 광덕산, 청계산 등에 2천 명이나 분포했다고 나오는데 이로 미루어 이미 임걸년이 활동하기 전 지리산 주변에는 여러 도적 세력이 횡횡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화엄사계곡 코스
3 피아골 코스
피아골은 그 강렬한 어감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지리산의 대표적인 계곡 중 하나이다. 직전마을에서 주능선까지 8km의 피아골 협곡길은 활렵수림들로 빽빽이 가득 차 있어 그야말로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때문에 피아골은 짙푸른 녹음 속에서 맑은 계류와 벗하며 오르는 여름철 피서 산행 코스로서 가장 이상적이다. 또한 가을철의 단풍은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이다.
피아골의 등산로는 직전마을에서 시작하여 피아골산장까지 약 4km는 비교적 수월하게 계곡을 따라 잘 나 있다. 피아골산장에서 주능선으로 올라붙는 길은 모두 네 군데가 있는데 질매재, 임걸령삼거리, 임걸령,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진 길은 피아골의 본류를 타고 비교적 완만하게 오르는데, 피아골 깊은 계곡의 원시림과 태곳적 분위기가 한껏 느껴지는 한적한 오솔길이다. 그 외 나머지 세 개의 길은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에 비해 거리는 짧지만 다소 투박하고 경사가 심하다.
피아골 산행은 이처럼 상류 쪽에 경사 급한 난코스가 있기 때문에 산행 계획을 세울 때 가급적 하산하는 코스로 맞추는 게 편하다. 그런 면에서 뱀사골로 올라와 피아골로 접어드는 연계 산행을 시도해볼 만하다. 이 경우 당일치기나 1박 2일을 일정이면 넉넉한데 그때가 마침 가을철이라면 두 계곡이 온통 붉게 물든 단풍으로 치장되기 때문에 환상의 산행길이 된다. 여름철 또한 시원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어 피서 산행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그밖에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주능선 종주를 마치고 다시 노고단에서 피아골로 하산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주능선 종주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 피아골만큼 좋은 곳은 없다.
4 왕시루봉 능선 코스
5 서북능선 코스
6 뱀사골 코스
뱀사골은 반야봉과 명선봉 사이의 울창한 수림 사이로 맑은 계류가 북쪽으로 감돌아 흐르면서 아름다운 소(沼)와 담(潭)을 일구어놓은 계곡이다. 실핏줄 같은 작은 지류를 많이 안고 있어 제법 품도 너른 편이다. 또한 모성적인 풍만함으로 가득 찬 반야봉과 끈끈한 탯줄로 맞닿아 있어서인지 보통의 협곡형 계곡과는 달리 안온함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편안한 계곡이다. 때문에 가족 단위로나 혹은 가벼운 마음으로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뱀사골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뱀사골 산행의 큰 장점은 주능선상에 가장 가뿐하고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 있다. 산행 기점인 반섬마을에서부터 주능선 구간의 최저지대인 화개재까지 8.5km는 급경사라곤 전혀 느낄 수 없이 아주 편한 평탄하고 넓은 산길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초행자들도 별다른 위험 요소 없이 안심하고 오를 수 있다.
뱀사골은 조물주가 빚어놓은 수많은 소와 담의 파노라마, 그 황홀경을 흠뻑 즐기며 오르는 여름철의 전형적인 계곡 산행 코스이다. 그와 더불어 가을철의 은은한 단풍도 지리산 단풍을 대표하기에 충분하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빼어나다. 다만 이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는 어렵다. 뱀사골은 봄철 계곡변을 붉게 수놓은 수달래를 구경하는 맛도 일품이고 또 겨울철 순백의 심설 산행길로서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봄ㆍ겨울에 찾아도 좋다.
7 범왕리 코스
8 대성골 코스
9 남부능선 코스
남부능선은 세석 영신봉에서 동서로 길게 누워 있는 지리산 주능선만으로는 아쉬운 듯 다시금 T자를 이루며 남쪽으로 갈래를 뻗어내린 지능선이다. 남부 능선은 해발 1,200m~1,600m 정도의 비교적 굴곡 심한 능선으로서 그 거리나 난이도로 볼 때 그래도 지리산에서는 꽤나 힘든 능선길에 속한다.
남부능선은 인적 드문 능선이라 줄곧 호젓한 분위기에서 산행을 하게 되며 삼신봉에서 지리산 주능선의 장쾌한 전망을 감당할 수 있다. 또 겨울철 심설 산행 코스로도 그만이기 때문에 대원사에서 치밭목ㆍ써리봉 능선으로 올라가서 남부능선으로 이어지는 겨울철 산행 코스를 꾸려볼 만하다. 그 외 거림골이나 대성골, 한신주계곡을 통해 세석으로 곧바로 올라 1박을 한 후 다음 날 아침 남부능선을 타고 하산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 삼신봉
송정굴에서 나와 오른쪽 휘어진 길을 조금 가면 능선 공터에 도착한다. 여기서 오른편에 청학동으로 내려서는 희미한 길이 보이지만 무시하고 왼쪽 길로 가야 한다. 이제부터는 한동안 평탄하고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진다. 송정굴에서 쉬엄쉬엄 15분쯤 길을 가면 오른쪽에 암벽을 하나 두고 북서 사면을 감돌며 다시 조금 내려서게 된다. 이때 리본이 많이 매달린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두 개의 바위 틈새로 너비 1~2m의 길이 보인다. 배낭을 내려놓고 여길 올라서면 내삼신봉 정상에 가볍게 오를 수 있다. 1922년 6월에 세워진 표석에는 ‘삼신산정(三神山頂)’이라 적혀 있으며 해발 높이도 1,354.7m라고 소수점 이하까지 굳이 표기해 놓아 그 친절함을 엿볼 수 있다. 내삼신봉은 잠시 후 만날 외삼신봉보다 해발고도만 높고 정상의 바위도 비교적 널찍하여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펼쳐지는 지리산 주능선의 전망을 즐기기에 알맞다.
10 거림골 코스
11 중산리 코스
중산리는 천왕봉 남쪽의 가장 대표적인 지리산의 관문이다. 중산리를 기점으로 한 등산로는 장터목 산장으로 치받아 오르는 중산리계곡길과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 두 곳이 있으며, 또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 중간에 위치한 법계사까지 오르는 데는 망바위길과 순두류길 두 코스가 있다.
장터목산장으로 연결된 중산리계곡 코스는 큼직큼직한 바위들로 이루어져 선이 굵고 투박한 느낌이 드는데, 몇몇 안전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지만 장마철과 겨울철에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중산리마을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진 길은 천왕봉을 오르는 가장 짧은 지름길 코스로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그래서 산길 또한 또렷하고, 철계단 등 여러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여름철은 물론 겨울철에도 큰 어려움 없이 산행할 수 있다.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이도 종종 부모와 함께 헉헉거리며 천왕봉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길 또한 암석지대가 많고 또 1,915m의 천왕봉을 곧바로 치받아 오르기 때문에 해발 고도차도 심하여 그리 쉽게 생각할 것도 아니다. 특히 겨울철에는 빙판으로 변하는 것도 많고 또 여름철에는 그늘 없는 길이라 비지땀을 쏟아야 한다.
장터목으로 오르는 선 굵고 투박한 중산리계곡
칼바위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얼마 안 가 오른쪽에서 흘러내리는 지류와 만난다. 여기에 설치되어 있는 30m가량의 철다리를 건너면 곧 경사 심한 비탈길을 올라서게 된다. 비가 오면 미끄럽던 비탈길도 계단길로 정비되어 있고 또 지탱할 수 있도록 밧줄 난간이 쳐져 있어 어렵지 않게 올라설 수 있다. 여길 오르면 노송이 우거진 고대에 서는데 아래로는 아찔한 절벽이고 계곡 쪽으로는 높은 15m 정도의 법천폭포가 보인다.
높이가 15m가량 되는 직폭인 법천폭포는 원래 법계샂족에서 흘러온 지류에 위치한다고 해서, 즉 법계사 쪽에 수원(水原)을 두었다 하여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하지만 실제로 폭포는 장터목 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 본류에 위치하고 있다. 법천폭포는 위쪽에 평편하고 널찍한 암반도 갖추었고 수량이 많을 때는 물소리도 우렁차다.
그동안 그런대로 무난하게 오를 만했던 산길은 유암폭포에서부터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잠시 오른쪽 천왕봉을 바라보면 사태난 깊은 골짜기가 보인다. 바로 접근하기에도 섬뜩한 죽음의 계곡, 통신골이다. 이곳은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의 살점들을 깊게 도려낸 듯한 상흔을 보는 것 같아 사뭇 가슴이 아프다. 등산로는 계곡과 멀어지면서 왼쪽 산비탈로 서서히 올라서는데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울창한 수림 속이다.
중산리계곡 코스는 지리산의 여타 길과는 달리 투박하고 삭막한 느낌이 들어 산행객들은 대개 장터목에서 하산 코스로 이용한다.
12 대원사 코스
13 칠선계곡 코스
14 백무동 코스
15 삼정리 코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는 그동안 인근 백무동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지만 최근 들어 지리산자연휴양림이 들어서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삼정리에서는 주능선으로 붙는 산길이 두서너 군데 있다. 광대골 하류의 지리산자연휴양림에서 벽소령으로 올라붙는 흔히‘소금길’로 불리는 옛 산길과, 또 삼정리에서 벽소령 종단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중간쯤에서 연하천으로 접어들거나 벽소령까지 계속 오르는 길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길들은 모두 경관이 떨어지고 주로 비상시 하산할 만한 길일 뿐이다. 특히 ‘소금길’은 지리산자연휴양림을 찾은 사람들이 종종 오르기도 하는데 시종 가파르게 치받아 오르기만 하는 길이라서 단체나 가족 단위로 찾기에는 다소 부적합하다. 차라리 벽소령만을 목적으로 산행한다면 1970년대 초에 뚫린 벽소령 종단도로를 따라 쉬엄쉬엄 오르는 게 전망도 트였고 또 샘물도 군데군데 있어 어쩌면 나을 듯싶다.
상무주암에서 산불사까지의 암자 순례길
지리산에서 가장 운치 있는 암자들 중 하나인 상무주암은 보조국사 지눌이 1198년 봄부터 1200년까지 머물렀던 것으로 유명하다. 지눌은 이곳 상무주암에서 선객 벗 몇 사람과 함께 바리떼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왔다. 지눌은 상무주암에서 속세의 인연을 털어버리고 오로지 선에만 몰입하였는데, 전남 순천 송광사에 있는 <보조국사비명(普照國師碑銘)>에는 상무주암을 “그 경치가 그윽하고 조용하기가 천하에 제일이라 참으로 참선하기 좋은 곳”이라 적고 있다.
199년 12월에 나온 노가원의 장편 소설 ≪붉은 까마귀≫는 한국전쟁 다시 일어난 지리산 양민학살 문제를 추리극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이 소설 5권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주인공인 오동혁 특별수사부장이 약초를 캐는 촌로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상무주암으로 찾아오는 대목이 나온다. 상무주암에서 그는 양민학살 주범들의 살인 용의자이며 홍어 스님으로 신분을 감춘 달수와 만나 하룻밤을 지내며 결국은 서로 간의 실제적인 화해를 이룬다.
지리산이 이 고장 사람들에게는 삶의 근원이지요. 모든 근심 걱정도 슬픔도 기쁨도 지리산에서 비롯됩니다. 하나 지리산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은 산이지요. 지리산은 가만히 있는데……중생들이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날 밤 달수가 오동혁에게 건네는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부록
지리산의 자연
1. 지리산의 어원
지리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신선이 내려와 살았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였으며 일명 방장산(方丈山)이라 일컬어져왔다. 지리산은 또한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 여기에 이르렀다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고, 간혹 남해 바다에 이르기 전 잠시 멈추었다 해서 두류산(頭留山)으로 적기도 한다.
‘智異山’이란 말의 어원은 대개 불교에 근거한다고 보고 있다.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의 지(智)와 리(利)자를 따서 ‘智利山’이 되었는데 문수보살은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하여 갖가지 다른 몸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지혜(智慧)’로운 ‘이인(異人)’이 많이 계시는 산이란 뜻으로 ‘智異山’이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지리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최치원이 887년에 쓴 쌍계사 진감 행사 대공탑비이다 여기에는 ‘知異山’으로 적혀 있다. 반면 삼국시대의 전적을 모두 참조했을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地理山’으로 되어 있으며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智異山’으로 나와 있다. 이런 혼동과 변화 과정은 어떤 연유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여하튼 지리산의 한자 표기는 고려시대를 기점으로 ‘智異山’으로 굳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2. 위치와 면적
지리산은 영ㆍ호남 지방을 경계상에 위치하여 남녘의 지붕 노릇을 하는데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남ㆍ전북ㆍ경남의 3개 도와 남원시와 하동군ㆍ구례군ㆍ함양군ㆍ산청군 등 5개 시ㆍ군, 15개 읍ㆍ면에 걸쳐 있다. 좁은 의미로 국립공원 면적만으로 표현하면 485.00㎢이지만 남쪽 섬진강과 북쪽 엄천강ㆍ경호강을 경계로 하여 그 주변 지역을 모두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보면 둘레가 대략 320km, 약 800리에 이르는 광대한 산악 세계인 것이다.
경ㆍ위도상으로 동경 127도 49분 50초(경남 함양군 금서면)에서 동경 127도 27분 50초(전북 남원시 주천면)까지, 북위 35도 13분 00초(전남 구례군 토지면)에서 북위 35도 27분 00초(전북 남원시 운봉읍)까지 위치하며 동서간의 도상 직선거리는 34km, 남북간의 도상 직선거리가 26km에 달한다.
6. 지리10경
지리산은 그 크기가 장대한 만큼 수많은 절경을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 독특한 자연 경관 10가지를 들어 ‘지리10경’이라 부른다. 지리10경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것처럼 한국전쟁 당시가 아닌 1972년에 지리산악회 우종수 회장이 모 산악 잡지에 발표하면서부터 공식화되었다. 지리10경을 접하려면 당연히 계절과 시간 그리고 날씨와 일정상은 문제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거의 30년 전에 선정한 자연 경관이기 때문에 그동안 여러 사람이 심심찮게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는데 ‘벽소명월’을 ‘향적야월’(香積夜月, 장터목 옆 향정사터에서 보는 달구경)로, ‘세석철쭉’을 ‘바래봉철쭉’으로 대체하자는 의견도 없지 않다. 여기서는 각자 느끼는 감동과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서 참고로 싣는다.
1) 노고운해(老姑雲海) 지리산 서쪽 최고봉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구름바다이다. 멀리 남해 바닷가에서 몰려온 구름이 주변의 산야를 가리고 노고단 산허리를 감돌아 흐르면서 마치 속세를 떠난 천상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노고단 주변의 철쭉ㆍ진달래ㆍ원추리 꽃들과 어울려 그려내는 자연적 조화가 신비스럽다.
2) 직전단풍(稷田丹楓) 매년 10월 중순부터 지리산 제일의 활력수림지대인 피아골은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들어간다. 설악의 단풍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것이 사람들을 압도적인 분위기로 몰고 간다. 산도 붉고(山紅) 물도 물 붉게 비치며(水紅) 사람도 붉게 만든다(人紅) 하여 삼홍(三紅)의 명소로 친다.
3) 반야낙조(般若落照) 심원계곡 건너 서북병풍이 짙은 암영(暗影)을 드리우면서 하루의 고된 장정을 마친 태양이 휘황찬란한 황금빛을 발산하며 고요히 사라져 가는 모습은 경건함마저 느끼게 한다. 반야봉이 주능선상에서 다소 떨어져 있어 이 황홀경을 접할 때는 호젓함과 함께 사념에 젖어들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4) 벽소명월(碧宵明月) 태고의 정적과 고요함 속에서 주변의 밀림과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벽소령의 명월은 천추의 한을 머금은 듯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 맑은 날 밤 창백한 달과 쏟아질 듯 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의 세계는 적막한 느낌이 드는 벽소령의 독특한 분위기와 만나 신비경을 그려낸다.
5) 세석철쭉(細石躑躅) 매년 5월 말에서 6월 초에 걸쳐 수십만 평의 광대한 세석고원 일대는 철쭉의 연분홍빛으로 곱게 지치장된다. 막바지 봄날에 접어든 때에 수십만 그루를 헤아리는 철쭉은 결코 뽐내거나 호사스럽지 않게 시야를 가득 메우고 꿩들은 한가로이 목청을 돋구어, 고원 특유의 정경이 낭만적이고 목가적이다.
6) 불일현폭(佛日懸瀑) 쌍계사 뒤편 숲길을 거닐다 보면 험준한 협곡 속에 천지를 진동하듯 백척단애(百尺斷崖)에서 포말로 부서지며 쏟아지는 천하절승 불일폭포가 나온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북일폭포는 비말로 흩어지며 떨어지는 물줄기가 일단 학연(鶴淵)에 고였다가 다시 폭포가 되어 쏟아져 내리는 2단씩 폭포인데 온통 바위 절벽으로 둘러싸인 주위의 경관이 장관이다.
7) 연하선경(烟霞仙境) 세석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에는 철 따라 향기 그윽한 꽃들이 만발하고 기암괴석은 천년의 고색창연한 이끼를 입고 서 있다. 한신계곡을 넘어온 운무가 이 봉우리에 잠시 머물면 신선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날 것만 같은 꿈 같은 선경이 펼쳐진다. 탁 트인 전망, 기암괴석, 주변의 기화요초(琪花瑤草)와 고사목,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천연의 조화를 이룬다.
8) 천왕일출(天王)日出) 사방이 막힘없이 탁 트인 천왕봉에서는 동틀 무렵 끝없이 펼쳐진 회색 구름바다 저 멀리서 서서히 서기가 어리다가 오색광채의 거대한 태양이 천지개벽의 순간을 알리듯 떠오른다. 천왕일출의 거대한 파노라마는 예로부터 3대의 공격을 쌓아야만 맞이할 수 있다 할 정도로 극히 만나기 힘든 경이와 감탄의 장관이다.
9) 칠선계곡(七仙溪谷) 울창한 원시림이 하늘을 뒤덮고 시퍼런 옥류는 심연에 잠시 머물다 요란한 포말음을 토해내며 폭포에 쏟아져 내려, 비경의 연속을 이루어내는 지리산 최고의 계곡이 칠선계곡이다. 태고의 신비한 정적을 간직한 거대한 밀림, 하얗고 반들거리는 암반 위로 씻기듯 흘러내리는 시원하고 맑은 계류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천혜의 계곡이다.
10) 섬진청류(蟾津淸流) 섬진강은 전북 진안, 장수 지방에서 발원하여 기름진 평야 지대와 산굽이를 감돌아 하동 포구를 통해 멀리 남해 바다로 흘러드는 300리의 유장한 물줄기다. 지리산 서남쪽을 거쳐 지날 때는 그 푸른 강물 위에 지리산자락을 실어 남국의 낭만과 흥취를 한층 돋운다. 은빛 백사장도 곱거니와 청류 위에 뜬 거룻배가 이채롭다.
⊙ 김명수, ≪지리산≫, 돌베게, 2001
☞ 김명수 1962년 전남 승주에서 태어나 1988년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였다. 1986년부터 지리산의 역사 현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해 지금까지 수백여 차례 지리산을 답사하였고 관련 글을 여러 잡지에 기고해 왔다. 1990년 지리산 등산 안내서를 처음 펴낸 후 10년 만에 이 책 ≪역사 기행을 겸한 지리산 산행 완벽 가이드―지리산≫을 새롭게 집필하였다. 초당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지금도 여유가 생길 때는 언제나 지리산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