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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외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이바라기 노리코   

  • 작성자김동민 이메일
  • 작성일2025-07-03 21:48
  • 조회69
  • [보도자료]
  • 2025-07-03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이바라기 노리코

 

 

추천의 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이 시 한 편으로 1억 일본인들을 패전국 상처에서 구해 희망의 길로 인도했다요미우리 신문이 극찬한 이바라기 노리코 시 속에는 식민 지배 시절 조선의 아픔과 연민이 담겨 있는 시가 많다. 윤동주 사진을 우연히 접한 노리코는 맑고 청아한 모습에 반해 그의 시를 읽게 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평생 한국과 교류한다. 그뿐만 아니라 무려 7년간 문부성(현 문부과학성)을 설득해 윤동주 시인의 시 4편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 “일본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라는 문장을 그대로 살려 일본 교과서에 실리게 한 국민 여류 시인이다.

민윤기 시인(서울 시인협회 회장)

 

 

감상평

 

손에 들고 읽는 것만으로도 이 시인의 힘이 보입니다. 이 정도 뛰어난 시의 입문서를 읽은 적이 없습니다. 추천합니다! kotetsu

 

넘칠 정도로 많은 시 작품 중에서 무엇부터 읽을까 망설일 사람은 많을 터다. 이 책은 시인 자신이 그중에서 선택한 작품집이다. 시가 개재되니 이바라기 노리코가 말을 걸어온다. 시를 잘 모르더라도, 살아있는 데서 오는 기쁨과 외로움을 공유할 수 있는 멋진 책이다. 갤럭시 노 마치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이 사람처럼 상쾌하게 살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메이

 

 

네 감수성 정도는

 

파삭파삭 말라가는 마음을

남 탓하지 마라

스스로 물 주기를 게을리해놓고

 

서먹해진 사이를

친구 탓하지 마라

유연한 마음을 잃은 것은 누구인가

 

짜증 나는 것을

가족 탓하지 마라

모두 내 잘못

 

초심을 잃어가는 것을

세월 탓하지 마라

애초부터 미약한 뜻에 지나지 않았다

 

안 좋은 것 전부를

시대 탓하지 마라

희미하게 빛나는 존엄의 포기

 

네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켜라

바보야

 

 

벚꽃

 

올해도 살아서

벚꽃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은 평생에

몇 번 벚꽃을 볼까요

 

기억하는 게 열 살 무렵부터라면

아무리 많이 잡아도 일흔 번 정도

서른 번 마흔 번 보는 사람도 많겠지

너무 적네

 

더 많이 보는 기분이 드는 건

선조의 시각도 섞이고 포개져 자옥해지기 때문이겠지요

곱다고도 수상하다고도 이상하다고도

할 수 있는 꽃의 색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를 한적히 걸으면

한순간

명승처럼 깨닫게 됩니다

죽음이야말로 정상 상태

생은 사랑스러운 신기루라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꽈르릉하고 무너지고

생각도 못 한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내게 다정한 선물을 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순수한 눈짓을 남기고 다들 떠나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텅 비었고

내 마음은 무디어졌으며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이런 엉터리 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 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다

나는 무척 덤벙거렸고

나는 너무도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될수록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처음 가는 마을

 

처음 가는 마을에 들어갈 때

내 마음은 살짝이 두근거린다

소바집이 있고

초밥집이 있고

청바지가 걸려 있고

모래 먼지가 있고

자전거가 방치되어 있는

특별할 것 없는 마을

그래도 나는 충분히 두근거린다

 

눈에선 산이 우뚝 서 있고

눈에선 강이 흐르고 있고

몇 개의 전설이 잠들어 있다

나는 금세 발견한다

그 마을의 점을

그 마을의 비밀을

그 마을의 비명을

 

처음 가는 마을에 들어갈 때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방랑객처럼 걷는다

설사 볼 일이 있어서 왔을지라도

 

맑은 날에는

마을 하늘에

아름다운 파스텔 색 풍선이 떠다닌다

그 마을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처음 온 나에게는 확실히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마을에서 태어나 그 마을에서 자란 그러나

먼 곳에서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영혼

 

총총히 흘러간 것은

멀리 시집간 한 여인이

고향이 너무도 그리워

놀러 온 것

영혼만이 엄벙덤벙

 

그리고 나는 좋아하게 된다

일본의 작은 마을들을

물이 맑은 마을 작은 마을

참마국이 맛있는 마을 고집 센 마을

눈이 많이 내리는 마을 유채꽃에 둘러싸인 마을

눈을 치켜뜬 마을 바다가 보이는 마을

남자들이 으스대는 마을 여자들이 의욕적인 마을

 

 

식탁에 커피 향 흐르고

 

식탁에 커피 향 흐르고

 

문득 내뱉은 혼잣말

어머

영화 대사였나

어떤 명언 중 한 구절이었나

아니면 내 몸속 깊은 곳에서 일어난 한숨이었나

원두를 갓 볶은 킬리만자로

이제 와서지만 되돌아본다

쌀도 담배도 배급품

집은 농가 창고의 2층 아래서는 닭이 소란 떨고 있다

마치 난민 같았던 신혼 시절

인스턴트 네스카페를 마신 것이 언제였나

다들 가난해서

그러나

심포지엄이다 동아리다라며 열광했다

 

겨우 커피다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대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액체의 향

 

상쾌환

일요일 아침

식탁에 커피 향 흐르고……

라고 중얼거리고 싶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점점 늘어난다

 

 

부록 1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

(일본 교과서에 실린 이바라기 노리코의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 중에서)

 

 

윤동주의 사인은 일본인 스스로 그 전모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 나는 윤동주 존재를 알고부터 그 의 시를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 지 39년째가 되는 1984년에 이부끼 고에 의해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완역되어 나오는 바람에 내 번역 의욕은 꺾였지만 이부끼 고의 훌륭한 번역과 연구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동요까지 일본어로 읽을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일본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1984년 가을에 나는 윤동주의 친동생인 윤일주 씨를 만나게 되었다. 일주 씨는 건축을 전공한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마침 도쿄대학교 생산기술연구소 객원교수로 일본에 와있었다.

윤동주 시집에 <아우의 인상화>라는 시가 있는데 그의 시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의 실제 주인공인 동생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기뻤다.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띤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1938. 9. 15.)

 

아무튼 윤동주와 일주 형제를 생각하고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고 더없는 행복이었다.

 

 

부록 2

 

한글의 매력에 빠져, 죽을 때까지 윤동주와 한국을 사랑한 이바라기 노리코

(월간시10월호의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 사랑이야기 중에서)

 

 

한글과의 만남

 

쉰 살(1956) 때 남편과 사별한 후 이바라기 노리코는 자기 치유의 한 방법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사실 열다섯 시절부터 있었다고 고백한 그녀는 김소운(수필가) 씨가 이와나미문고에서 펴낸 조선민요선을 읽은 후 그 속에서 실린 한국어 단어들의 소박함과 기지에 끌렸다는 것이다

한글 공부는 10년 동안 계속 이어졌다. 그녀가 배운 한글은 한국인들이 쓰는 언어이상이었다. 한글은 마치 뜨개질 기호 같은 문자였고 그 울림이 낭랑하고 아름다운 언어였다. ‘바람둥이’, ‘공부벌레’, ‘치맛바람’, ‘땅꾼같은 기발한 명사에 놀라는 한편,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 ‘구관이 명관이다’, ‘밤새도록 울다가 누가 죽었느냐고 묻는다는 식의 한국 속담의 표현력에도 감탄하였다.

한국인들이 지닌 독특한 도 그에게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이었다 한국인의 행동에 나타난 장난기와 우스꽝스러움, 박력과 세련미가 미묘하게 혼합된, 복합적인 양식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한국에 끌린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도자기 애호가였던 할머니가 조선에 가고 싶다. 조선에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을 듣고 자란 데서였을까? 한글을 공부하면서 그녀는 한국의 미술품을 사랑했던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과 그 예술에도 감동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국어 학습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마침내 한국문화 전반으로 깊고 넓게 파고 들어갔다. 한국인의 눈에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풍경도 그녀에게는 하나의 문화적 신호등으로 다가오곤 하였다.

 

생전에 준비한 작별 인사

 

 

이번에 저(이바라기 노리코)(2006)(2)(17)(지주막하출혈)로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생전에 써둔 것입니다. 내 의지로 장례ㆍ영결식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집도 당분간, 사람이 살지 않게 되니, 조위품이나 꽃 따위는 아무것도 보내지 마라주세요. 반송 못 하는 무례를 포개는 것뿐이라고 생각되니까. ‘그 사람이 떠났구나하고 한순간, 단지 한순간 생각해 주셨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랫동안 당신께서 베풀어 주신 따뜻한 교제는, 보이지 않는 보석처럼, 나의 가슴속을 채워서, 광망을 발하고, 나의 인생을 얼마만큼 풍부하게 해주신 건가. 깊은 감사를 바치면서, 이별의 인사말을 드립니다. 고마웠습니다. 20063월 길일

 

이 글은 2006217일 지주막하출혈로 별세한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향년 80)이 생전에 교유했던 지인들에게 보낸 하직 인사이다. 이바라기 씨는 이 글을 미리 적어서 인쇄해 두었다가 (사망 일자와 사인만 유족이 기입하게 하여) 별세한 후 지인들에게 보내달라고 조카 부부에게 발송을 부탁한 것이다.

생전에 그녀를 아는 지인들과 언론계 인사들은 과연 그녀다운 작별 인사라면서 그녀의 아름다운 죽음을 추모하였다.

 

 

이바라기 노리코, 윤수현 옮김,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개정판), 스타북스, 2024

 

저자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

오사카 출신의 시인으로 제국여자약전(현 토호東邦대학) 약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제국 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보고 극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 희곡·동화 등을 쓰면서 문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결혼 후, 잡지 등에 시를 투고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했다. 전후 일본인들의 무력감과 상실감을 담아낸 <내가 가장 예뻤을 때>란 시로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국내에선 공선옥 소설의 표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 문학의 번역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1955대화를 시작으로 보이지 않는 배달부≫ ≪진혼가등을 발표하고, 1990년에는 한국현대시선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명시들을 일본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관동대지진 때의 한국인 살해사건을 다룬 <장 폴 사르트르에게>, 고대 일본 이주민들의 차별대우를 고발한 <칠석> 등 한국을 소재로 한 시를 여럿 발표했다. 대표시집으로는 네 감수성 정도는≫ ≪보이지 않는 배달부≫ ≪진혼가등이 있으며, 전후 여성 시인 중에서 가장 폭넓은 사회의식과 건전한 비평 정신을 보여 준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일본의 우경화를 신랄하게 비판한 만년의 시집 기대지 말고는 일본 사회의 반민주적인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며 기록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시인으로 한국의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와 풍속, 역사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의식 있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번역 윤수현 번역가/통역사일본어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하여 통번역의 길로 접어들었다. 기업에서 다년간의 실무 경험을 거쳐 서울외국어대학원 한일통번역과를 졸업했다. ‘윤동주100년포럼에 참여하여 장 콕토 시집, 폴 발레리 시집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전문 통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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