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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계 唐詩 四季 夏 여름을 노래하다≫ 삼호고전연구회 편역

  • 작성자김동민 이메일
  • 작성일2025-06-28 07:20
  • 조회69
  • [보도자료]
  • 2025-06-28

당시 사계 唐詩 四季 여름을 노래하다 삼호고전연구회 편역

 

머리말

 

어린 시절의 여름을 생각해 보면 늘 바닷가에서 살았던 탓도 있겠지만 그렇게 더웠다는 느낌이 없다. 더위를 의식하지 않고 놀았기 때문에 여름 더위가 특별하게 기억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여름 한철에도 등이 몇 번씩 벗겨질 정도로 정신없이 놀았다. 입술이 파래지도록 물속에서 놀다 보면 그렇지 않아도 짧은 여름방학은 금방 지나갔다.

여름 내내 시원한 물속에서 지내는 것과 같은 일이 더 이상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지금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당나라 시인의 여름나기를 중심으로 좋은 피서거리를 마련했다. 당나라 시인의 여름나기에 몰입하면서 마음의 더위라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당인(唐人)의 여름나기

 

 

1. 저녁 서호에서 돌아오며 고산사를 되돌아보다 여러 객에게 보내다

西湖晩歸回望孤山寺贈諸客

백거이(白居易)

 

버드나무 늘어선 호수 소나무 우거진 섬의 연꽃 핀 절

저녁에 배 타고 귀가하기 위해 도량을 나오네

비파(枇杷)는 산속에 쏟아진 비로 낮게 드리우고

종려나무 잎은 물 위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떠네

안개 깔린 수면 위로 물결 출렁이며 푸른 하늘 흔드는데

누대와 전각은 들쭉날쭉 석양에 기대어 있네

물가에 이르러 객들에게 돌아보게 하니

봉래궁이 바다 가운데 있는 것 같네

 

감상

 

백거이는 장경(長慶) 2(822) 가을부터 4(824) 여름까지 항주자사(杭州刺史)를 지냈다. 이 작품은 설법을 듣고 난 뒤 돌아가는 길에 본 고산사 주변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읊었다. 생동감 있는 묘사와 풍경에는 시인의 즐거운 감정이 녹아 있다.

 

시 전체가 온갖 감각의 향연이고 그 감각들과 감정이 하나로 융합된 즐거움의 세계다. 여름이라는 덥고 습한 계절에 이러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신선노름이 아닐까?

 

♧ 작자 소개

 

백거이(白居易, 772~846),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ㆍ취음선생(醉吟先生)이다. 하남(下南) 신정(新鄭)에서 태어났다. 현실주의 시인으로 원진(元嗔)과 함께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창도했다. 관직은 한림학사(翰林學士), 좌찬선대부(左贊善大夫)에 이르렀다.

시가의 소재와 형식이 다양하고 표현은 평이하고 통속적이다. ‘시마(詩魔)’ 또는 시왕(詩王)이라 불렸다.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이 세상에 전해지고,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장한가(長恨歌)>, <매탄옹(賣炭翁), <비파행(琵琶行)> 등이 있다.

 

 

5. 나부산인이 갈포를 보내다

羅浮山人與葛篇

이하(李賀)

 

가벼운 갈포 강가 가랑비처럼 투명하게 짜니

유월 빗속에 난대의 바람 불어오는 것 같네

나부산 신선이 어느새 동굴에서 나오니

천년의 베틀이 귀신도 울게 하네

뱀독 짙게 엉겨 동굴도 습하고

물고기도 먹이 찾지 않고 모래 머금고 섰네

상수 물결같이 부드러운 갈포를 재단하고 싶은

오 땅의 미인아! 가윗날 둔하다고 말하지 말라

 

감상

 

풍부한 상상력으로 환상적 세계를 묘사하는데 뛰어난 이하의 시 특징을 볼 수 있는 시다.

 

작자 소개

 

이하(李賀, 791~817)는 자()는 장길(長吉)이다. 하남(河南) 복창(福昌) 사람이며, 27세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 시인이다. ‘귀재(鬼才)또는 시귀(詩鬼)로 일컬어진다.

이하는 굴원과 이백의 뒤를 이은 낭만주의 시인이다. 중당(中唐) 시풍에서 만당(晩唐) 시풍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대표 시인으로, 불우한 처지, 마음의 고민을 개탄한 시가 많고, 이상과 포부의 추구, 번진(藩鎭)의 할거(割據), 환관의 전횡, 백성의 고통 등을 노래했다.

먹구름 성을 덮으니 성 무너지려 하네” “수탉 소리에 천하는 밟네”, “하늘이 정이 있다면 하늘 역시 늙네같은 명구를 남겼다.

 

 

여름과 사랑ㆍ그리움

 

 

6. 강남행

江南行

장조(張潮)

 

자고 잎 질 때 서쪽 물구비에서 이별했는데

연꽃 피었는데 돌아오지 않네

나는 꿈속에서도 강가 물을 떠나지 못하는데

사람들 전하길 낭군은 봉황산에 도착했다 하네

 

감상

 

장조의 시는 연밥 따는 여성의 생활을 묘사한 <채련사(采蓮詞)> 한 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상인 아내의 감정을 묘사했다. 그 내용과 형식을 보면 남쪽 지방 민가(民歌)의 영향이 뚜렷하다.

 

작자 소개

 

장조(張潮, 생존년 미상, 張朝로 쓰기도 한다)는 곡아(曲阿,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단양현丹陽縣) 사람이다. () 숙종(肅宗) 연간에서 대종(代宗) 연간 사이에 주로 활동했다. 전당시(全唐詩)에 시 다섯 수가 전한다.

 

 

7. 자야의 오나라 노래여름 노래

子夜吳歌

이백(李白)

 

겨울 같이 맑은 호수 삼백 리

봉오리에 연꽃 피었네

오월 서시가 연밥을 따면

사람들이 구경하느라 약야계는 좁았지

달 뜨기도 기다리지 않고 배를 돌려

월 왕궁으로 돌아갔네

 

감상

 

<자야의 사계절 노래子夜四時歌>라는 제목으로도 불리는 이 시는 모두 4수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을 묘사했다. 육조(六朝) 시대의 악부(樂府) 청상곡(淸商曲) 오성가곡(吳聲歌曲)<자야사시가(子夜四時歌)>가 있는데 오성곡(吳聲曲)에 속하므로 <자야오가(子夜吳歌)>라고도 불렀다.

이 시의 체제는 4구로 되어 있으며 내용은 대부분 여성이 정인(情人)을 그리워하는 애원(哀怨)을 묘사했다.

 

작자 소개

 

이백(李白, 701~762)은 자()는 태백(太白), ()는 청련거사(靑蓮居士)ㆍ적선인(謫仙人)이다. 낭만주의 시인으로 시선(詩仙)이라 불렸으며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었다. 신당서(新唐書)에 따르면, 이백은 흥성황제(興聖皇帝) 즉 양무소왕(凉武昭王) 이고(李暠)9세손으로서 당나라 종실이다. 성격이 밝고 대범했으며 술 마시고 시 짓기를 좋아했다.

대표작으로는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暴布>, <행로난(行路難)>, <촉도난(蜀道難)>, <장진주(將進酒)>, <양보음(梁甫吟)>, <일찍 백제성을 떠나며早發白帝城 > 등이 있다.

 

 

11. 치천 산수를 감상하며

題稚川山水

대숙륜(戴叔倫)

 

소나무 그늘 아래 띠풀 정자는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강가 백사장 안개 서린 숲은 석양 아래 푸르네

길 떠난 나그네, 고향 생각 끝이 없으니

만리타향 강산도 내 고향 같아라

 

감상

 

이 시는 강남의 산수 풍경을 그린 시로서 전형적인 여행시다. 시인은 지방관에 부임하면서 여정 중에 만난 풍경을 시로 썼다. 치천(稚川)에 도착해 소나무 그늘 아래 띠풀 정자에서 잠시 휴식하자니 고향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작자 소개

 

대숙륜(戴叔倫, 732~789), 자는 유공(幼公)이며 윤주(潤州) 금단(金壇, 지금의 강소선 금단현) 사람이다. 사회 모순을 고발하거나 백성의 고통스러운 삶을 이야기한 악부시(樂府詩, 한시의 한 형식)를 잘 썼다. <여경전행(女耕田行)><둔전사(屯田寺)> 등이 유명하다.

 

 

여름과 비애

 

 

17. 여름밤의 노래

夏夜歎

두보(杜甫)

 

길고 긴 한낮 해 질 줄 모르고

찌는듯한 더위 내 마음까지 태우네

어떻게 만리 부는 바람을 얻어

내 옷 시원하게 펄럭이게 할까

아득한 하늘에 밝은 달이 뜨고

우거진 숲속으로 희미한 달빛 비치네

한여름 밤 짧기도 하여

창을 열어 바깥 바람 들이네

밝은 달빛 한 가닥 비추니

밤벌레들 날개 펴고 날아다니네

세상 만물은 크건 작건

편안하려고 하는 것이 본모습이라네

생각건데, 긴 창을 맨 병사들

한 해 다 가도록 변경을 지킨다네

어찌하면 한 번 더위를 식힐 수 있을까

무더위에 괴로워하면서도 서로 바라보기만 한다네

밤새워 순라 돌며 조두* 두드리니

시끄러운 소리 사방으로 퍼지네

청색 자색 관복을 몸에 걸치더라도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감만 못 하리

성 북쪽에 구슬픈 호가 소리 들리니

두루미는 소리치며 날개 펴고 빙빙 도네

게다가 또 더위에 지쳤으니

간절히 태평 시절 바라네

 

* 조두 : 옛날 군대에서 낮에는 취사할 때 사용하고 밤에는 야경(夜警)을 위해 치던 징과 비슷한 물건이다.

 

감상

 

찌는듯한 여름을 잘 표현한 시다. 더위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수자리(국경을 지키는 일) 서는 병사에게 확장시켜 간다. 추기급인(追己及人)*의 시로 두보의 본색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신유학자 마일부(馬一浮)는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두시 <여름밤의 노래>의 뛰어난 점은 밝은 달빛 한 가닥 비추니/밤벌레들 날개 펴고 날아다니네/세상 만물은 크건 작건/편안하려고 하는 것이 본모습이라네네 구절에 있다. 사물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했다. 아랫부분은 긴 창을 둘러맨 병사들의 노고를 흥기시켰으니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다. 자세하게 읽어보면 곱고 낭랑한 음조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당시와 송시의 차이점이다.”

 

 

* 추기급인(追己及人): 자기를 미루어 남에게 미친다는 뜻으로, 유학에서 충()과 더불어 서()를 설명한 말이다.

 

작자 소개

 

두보(杜甫, 712~770)는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이다.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 불렸다. 이백(李白)과 병칭하여 이두(李杜)라고 일컫는다. 뛰어난 문장력과 사회상을 반영한 두보의 시는 후세에 시로 표현된 역사라는 뜻으로 시사(詩史)라 불리기도 한다.

소년 시절부터 시를 잘 지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해 각지를 방랑하며 지냈고, 그 과정에서 이백ㆍ고적(高適) 등과 교유(交遊)하였다.

두보의 시는 부정에 대한 격렬한 분노, 인간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과 성의가 잘 나타나 있다. 근체시의 모범이 되는 율시(律詩)와 당시의 시대적 아픔을 담은 1,500여 수의 시를 남겼다.

 

 

21. 변방의 노래

塞下曲

 

이백(李白)

 

오월 천산에 눈 내리는데

꽃은 없고 춥기만 하네

피리 소리에 절양류곡 들리나

봄 경치는 아직 보지 못했네

이른 새벽 징과 북소리에 출전하고

저녁에는 안장을 끌어안고 자네

원컨대 허리에 찬 검으로

곧장 누란을 베고자 하네

 

감상

 

율시(律詩)는 대우(對偶), 성운(聲韻), 글자 수, 구수(句數), 기승전결(起承轉結)이 내용의 연결에 있어도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시를 짓기가 매우 까다롭고 심지어 내용이 형식에 매몰되기도 한다. 자유와 파격을 추구한 이백은 이런 율시의 형식미도 과감하게 벗어 던진다.

 

당대의 변새시(邊塞詩)가 고단하고 외로운 변방 생활 속에서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포부를 밝히는 것이 대체적인 내용인데, 이백은 기()와 승()의 악조건을 길게 묘사하여 전결(轉結)의 포부를 훨씬 돋보이게 했다. 이를 두고 청나라 왕부지(王夫之)마지막 두 구절을 위해 앞의 여섯 구절을 지었다라고 평했다.

 

 

여름 풍경

 

 

22. 절구 즉흥시

絶句漫興

두보(杜甫)

 

오솔길에 뿌려진 버들꽃 흰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고

시내에 점점이 떠 있는 연잎은 푸른 동전을 겹친 것 같네

어린 죽순 보는 사람 없고

모래밭의 새끼 오리는 어미 옆에 쌔근쌔근 잠들었네

 

감상

 

그림같이 아름다운 초여름 풍경을 묘사했다. 앞 두 구절은 풍경을, 뒤 두 구절은 풍경 가운데 있는 죽순과 새끼 오리를 묘사했는데 경치와 오묘하게 어우러졌다.

네 구절은 각각 하나의 장면으로 독립해 있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초여름 교외의 한가롭고 고요한 자연경관을 구성한다. 세밀한 관찰을 기초로 한 묘사는 작가가 숲과 계곡을 느릿하게 걸으며 느끼는 감정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가 평이하고 생생한 시어를 통해 전달되어 의경이 청신하다.

 

 

28 비 멎은 후 넓은 들판 바라보며

新晴野望

왕유(王維)

 

비 멎은 들판 윤기 흐르고

눈 닿는 곳 어디에도 티끌 한 점 없네

성곽 문은 나루터에 닿았고

길가 가로수 시내에 이어 있네

맑은 강물은 들판 너머에 반짝이고

푸른 봉우리는 산 뒤에 솟았네

농사철이니 한가한 사람이 없어

온 식구 남쪽 밭에 나가 일을 하네

 

감상

 

이 시는 마을 풍경을 노래한 전원시다. 초여름 비 갠 후에 마을을 조망하던 시인이 담담하게 마을 풍경을 묘사하듯 글로 옮겨 놓았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맑은 날씨에 마을 뒷산에 올라 직접 촌락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것은 풍경을 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마을이 텅 비고 활력이 없어 보인다. 왕유는 산수시와 산수화의 대가다. 활력 없는 마을 분위기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두 구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매우 정적인 화면 속에 동적인 인물을 가미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농번기의 분주한 분위기를 상상하게 해 준다.

 

작자 소개

 

왕유(王維, 701~761 또는 699~761)는 자()는 마힐(摩詰), ()는 마힐거사(摩詰居士)이다. 하동(河東) 포주(蒲州, 지금의 산서山西 운성運城) 사람으로 원적은 산서(山西) 기현(祁縣)이다. 시인이자 화가이기도 하다.

당 숙종(肅宗) 건원(乾元) 연간에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임명되어 왕우승(王右丞)이라 불렸다.

선종(禪宗)의 이치를 체득했고 장자(莊子)를 공부하고 도가(道家)를 신봉했다. 개원(開元), 천보(天寶) 연간에 시명(詩名)을 날렸는데 오언(五言)이 특히 뛰어났다. 맹호연(孟浩然)과 함께 산수시파로서 왕맹(王孟)으로 병칭되었고 시불(詩佛)이라는 호칭도 얻었다. 서화도 매우 뛰어나서 남종산수화의 시조로 받들어지기도 했다. 소식(蘇軾)마힐의 시를 음미하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평했다.

 

 

삼호고전연구회 편역, 당시 사계 唐詩 四季 여름을 노래하다, 도서출판 수류화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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