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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레닌- [보도자료]
- 2025-06-18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레닌
역자 서문
레닌은 전 생애에 걸쳐 러시아 및 유럽 각국의 수정주의자들과 단호히 투쟁하였다. 그는 이러한 투쟁을 거치면서 부르조아적 쁘띠부르조아적 분파들과의 첨예한 격돌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창조하고 수호하였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들의 세계관을 새로운 역사적 상황에서 실현시켰다.
마르크스주의는 여러 종류의 사회주의와 싸우는 과정에서 창조되었으며, 레닌의 표현대로 처음의 반세기는 마르크스주의와 근본적으로 대립된 이론들과 투쟁을 계속하였다 두 번째 반세기는 마르크스주의 자체 내에서 마르크스주의에 적대적인 경향, 즉 수정주의와의 투쟁과 함께 시작되었다.
레닌은 수정주의의 창시자로 독일사회민주당원인 베른쉬타인을 지적하였다. 베른쉬타인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경제적, 정치적 교의를 수정하였다. 러시아에서는 스뜨루베와 같은 합법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처음으로 수정주의를 지지하였다.
이들 수정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위장하여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근본적 교의를 수정하였고, 그 이론의 근본원칙들을 부르조아적 관념으로 대체시켰다. 말하자면 수정주의자들은 말로는 마르크스주의의 원칙들을 인정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것들을 배격하였던 것이다.
1917년 2월 뻬뜨로그라드에서 대중적 정치파업을 진압하려던 군대는 가두의 노동자들과 합세하여 혁명을 성공시켰다. 2월혁명이 성공하자 모든 사람들은 1905년에 이어 민주주의 혁명이 완성되어 러시아는 서구와 마찬가지 경로를 따라 점진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관측하였다.
그러나 볼셰비끼만은 2월혁명에서 시작된 혁명이 자본가와 소수 중산계급의 대표들에 의해 지배되는 임시정부가 농민과 노동자들의 동맹에 의한 정부로 바뀔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스위스에서 돌아온 레닌은 전쟁(1차 세계대전)이 자신들의 국경을 방위하고 연합군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방어 전쟁이라고 한 께렌스키의 주장을 배격하였다. 러시아가 계속 연합군과 제휴하고 있는 한 전쟁은 여전히 제국주의 전쟁으로 머물게 되는 것이므로, 불만과 불안을 조성하고 자국 정부의 패배와 전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혁명가의 임무라는 것이다.
10월에 레닌의 계획은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짜르정권이 완전히 붕괴하기 전에는 언론과 집회의 자유조차 없었던 러시아에서 도저히 선거의 승리를 통해 사회주의를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볼셰비끼를 중심으로 한 무장봉기를 통해 뻬뜨로그라드를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임시정부는 해체되고 타당의 일부 좌파들과 동맹한 볼셰비끼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완수하였다. 이로써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예상과 달리 후진국 러시아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예언이 실현되었던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멘셰비끼로부터 자유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당은 그 모반을 반역이요, 전제라고 규탄하였다. 이러한 비난에 인터내셔널의 결의를 저버린 서구의 수정주의자들이 가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대표적 인물은 공교롭게도 베른쉬타인을 수정주의라고 비판한 바 있는 독일의 카우츠키이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1918)에서, 사회주의는 경제 조건이 상응될 때 달성시켜야 하며 민주주의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믿고 10월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레닌주의적 개념에 적극 반대하였다.
레닌의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랬듯이, 카우츠키도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의 독재 개념을 통치의 형태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적 형태에 반대했다고 주장하였다. 볼셰비끼는 후진국에서 사회주의를 성공시키기 위해 테러와 압박을 자행함으로써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견해에 반대하였다는 것이다.
레닌은 카우츠키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곧바로 반격하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1918)에서 카우츠키가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원칙을 얼마나 배격하였는지 철저하게 추궁ㆍ분석하였다. 수많은 논쟁 중에서도 이 글은 이론을 겸비한 선동가로서의 레닌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국가에 관한 방더벨드의 새로운 저서>(1917)에서는 카우츠키 비판의 주요 문제였던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국가에 관한 방더벨드의 견해가 비판되고 있으며, <제헌의회에 관한 테제>(1917)에서는 러시아의 부르조아 혁명이 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야 하는지가 서술되어 있다. (…) 비록 짧은 글이긴 하지만 수정주의의 사회적 기원과 본질에 관한 과학적 분석이 담겨 있는 <마르크스주의와 수정주의>(1908)를 첨가시킴으로써, 자신의 세계관을 관철시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극복해야 했던 수정주의에 관해 레닌이 어떻게 대처하였는가를 보다 자세히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러시아 및 유럽의 좌우익 수정주의에 대해 투쟁하였던 레닌의 오랜 경험 과정에서 서술된 이 글들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이 수정주의를 비판하는 데 밑바탕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레닌의 수정주의 비판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문
다음으로 1916년에 쓰여지고 1917년 뻬뜨로그라드에서 발행된 나의 저서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에서 나는 제국주의에 관한 카우츠키의 모든 주장에 나타난 이론적 오류를 상세히 검토하였다 거기에서 나는 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제국주의는 고도로 발달된 산업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것은 모든 산업자본주의 국가가 광역의 농업 지대 모두를 거기에 어떠한 민족이 살고 있던 관계없이 자신의 지배 아래 두거나 병합하려는 데 있다.” 나는 이러한 정의가 얼마나 철저하게 부정확한지를, 그리고 그것이 제국주의의 가장 깊은 제 모순을 윤색시킴으로써 기회주의와 일치하는데 어떻게 “개조”되는지를 보여주었다 나는 제국주의 정의를 이렇게 제시하였다.
“제국주의란 다음과 같은 발전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이다. 독점과 금융자본의 지배가 확립된다; 자본 수출이 특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국제적 트러스트 간에 세계 분할이 시작된다; 자본주의의 최대 열강 간에 전 세계의 영토 분할이 완료된다.”
나는 카우츠키의 제국주의 비판이 부르조아적 속물적 비판보다도 더욱 저급한 수준임을 보여주었다
본질적으로 카우츠키가 프롤레타리아에 관한 자신의 팜플렛에서 범한 주요한 이론적 실수는 마르크스 국가관에 대한 그러한 기회주의적 왜곡, 즉 나의 팜플렛, <국가와 혁명>에서 상세히 제시한 왜곡에 있다.
내가 이렇게 서두를 꺼내는 것은, 볼셰비끼가 국가권력을 장악한 뒤 그로 인해 카우츠키로부터 비난받기 오래전에 내가 이미 그를 배신자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바 있었음을 여기서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카우츠키는 어떻게 마르크스를 평범한 자유주의자로 변색시켰는가
카우츠키가 자신의 팜플렛에서 논의한 기본적인 문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본질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모든 나라, 특히 선진국, 그중에서도 전쟁 중인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에 가장 커다란 의의를 갖는 문제이다. 따라서 그것에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조아지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가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쟁취되고 유지되는 지배, 어떤 법률에도 저촉받지 않는 지배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부르조아 국가 체제를 강제적으로 파괴하고 또한 그것을, 엥겔스의 말대로 “더 이상 그 말 본래의 뜻으로서의 국가가 아닌” 새로운 것으로 대체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카우츠키는 자신의 배신자적 입장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안개로 뒤덮듯이 애매하게 만들거나 속이고 있다
카우츠키는 자신의 배반을 은폐시키기 위해 글자 그대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속임수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가 “평화적으로, 즉 민주적인 방식”으로라고 썼을 때 그가 어떻게 무심결에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는지 주목해 보라!
독재를 정의하는데 카우츠키는 이 개념의 근본 특징, 즉 혁명적 폭력을 독자들에게 은폐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 기울였다. 그러나 이제 진상은 드러난다. 즉 그것은 평화 혁명과 폭력 혁명 사이의 커다란 차이에 관한 문제이다.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카우츠키는 오로지 폭력 혁명으로부터 자신을 배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거부 및 자유주의적 노동정책 쪽으로의, 즉 부르조아지 쪽으로 자신의 탈출을 은폐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모든 핑계, 궤변 그리고 왜곡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요컨대 카우츠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을 대단히 유례없이 왜곡시켰으며 마르크스를 평범한 자유주의자로 바꿔버렸다. 즉 그 자신은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근본적 내용을 미화시키고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또한 무엇보다도 피압박계급에 의한 혁명적 폭력의 사용을 회피하면서 “순수 민주주의”에 관해 진부한 문구나 내뱉는 자유주의자의 수준으로 전락하였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을 그 압제자를 향한 피압박계급의 혁명적 폭력을 지워버리고 “해석함”으로써 카우츠키는 마르크스를 자유주의적으로 왜곡시키는 일에서 세계 기록을 세웠다. 배신자 베른쉬타인은 배신자 카우츠키에 비하면 오히려 하찮은 애송이임이 입증되었다.
• 부르조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카우츠키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자유주의나 부르조아지의 마음에 드는 것(중세에 대한 비판, 일반적으로는 자본주의의 그리고 특수하게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진보적 역사적 역할)은 취하고 마르크스주의에서 부르조아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부르조아지를 절멸시키기 위해 부르조아지에게 행사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폭력)은 팽개치고 슬그머니 넘어가면서 그럴듯하게 얼버무른다. 이상이 카우츠키가, 자신을 객관적 입장 때문에 그리고 그의 주관적 신념이 어떠한가에 상관없이, 불가피하게 부르조아지의 아첨꾼으로 판명되는 이유이다.
부르조아 민주주의는 그것이 중세 사상에 비해 대단한 역사적 진보라 할지라도, 제한되고 불완전하고 거짓되고 위선적이며, 부자에게는 천국이고, 피착취자 가난한 자에게는는 함정이며 속임수인 것은 항상 여전하며 또한 자본주의 하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카우츠키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마르크스의 가르침 가운데 대단히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는 바로 이 진리이다. 이것―근본적인 논쟁점―에 관해 카우츠키는 모든 부르조아 민주주의를 부자를 위한 민주주의로 만드는 그러한 제 조건을 과학적으로 비판하지는 않고 부르조아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반대하는 팜플렛을 쓰는 것, 18세기 영국의 휘그당과 토리당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민주주의는 “소수를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미국의 “민주적” 공화제에서의 국제주의자에 대한 포그롬(pogroms, 조직적ㆍ계획적 학살)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것이 부르조아지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박학한 카우츠키 씨는 “하찮은 것”, 즉 부르조아 민주주의에서 여당은 소수의 보호를 다른 부르조아 정당에게만 확장시키지만 반면에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절실하고도 심각한 그리고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소수의 보호” 대신에 계엄령 또는 포그롬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망각”했다―그리고 아마 우연히 망각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더 고도로 발전하면 할수록 부르조아지에게 위험한 모든 심각한 정치적 일탈과 관련된 포그롬 또는 내란은 더욱 절박해진다.
피압박 인민은 가장 민주적인 부르조아 국가에서조차 자본가의 “민주주의”가 선언한 형식적 평등과 프롤레타리아트를 임금 노예로 전락시키는 수천의 실제적 제약 및 사기가 빚어내는 절박한 모순과 어디서나 마주친다. 이 모순이야말로 사회주의 선동가와 선전가가 인민이 혁명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끊임없이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혁명의 시대가 시작된 지금 카우츠키는 그것에 등을 돌리고 사멸해 가는 브르조아 민주주의의 매력을 격찬하기 시작한다. 소비에트를 정부 형태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절대다수를 위해, 피압박 근로인민을 위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확장을 가져왔다.
• 피착취자와 착취자 사이에 평등이 있을 수 있는가
카우츠키는 하늘과 땅 차이처럼 자유주의자와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의 차이처럼 마르크스와 엥겔스로부터 너무도 멀어지고 있다. 카우츠키가 이야기하고 있는 순수 민주주의와 단순한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인민의 국가”를 단지 바꾸어 말한 것에 불과하다. 즉 완전히 헛소리다. 카우츠키는 대단히 책상물림 같은 바보의 박식한 태도로, 혹은 열 살배기 여학생 같은 순진무구한 태도로 다음과 같이 묻고 있다: 우리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데도 왜 독재가 필요한가? 거기에 대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부르조아지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서
― 반동들에게 공포를 불어넣기 위해서
― 부르조아지에 대해 무장된 인민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적들을 무력으로 억누르기 위해서.
카우츠키는 이러한 설명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순수성”에 넋을 잃어, 그것의 부르조아적 성격은 보지 못한 채, 다수는 다수이므로 다수가 소수의 저항을 분쇄할 필요도, 그것을 무력으로 억누를 필요도 없으며ㅡ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사례들을 감추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일관성 있게” 역설한다. 민주주의의 “순수성”에 얼이 빠진 카우치키는 모든 부르조아 민주주의자들이 항상 저지르는 것과 동일한 사소한 오류를 무심결에 저지르고 있다. 즉 그는 형식적 평등(이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단지 사기와 기만일 뿐이다)을 실질적 평등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착취자와 피착취자는 평등할 수 없다.
• 소비에트는 국가조직이 될 수 없는가
• 제헌의회와 소비에트 공화제
• 소비에트 현법
카우츠키는 자본가라는 용어는 법률적으로 애매한 개념이라고 주장하면서, 여러 곳에서 소비에트 헌법의 “독단성”에 대해 몹시 비난한다. 이 “진지한 학자”는 수 세기에 걸쳐서 새로운 (중세에서도 새로운) 부르조아 의회를 만들고 발전시켜 온 영국의 부르조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바로 아첨꾼 과학의 대변자인 그는 우리 러시아 노동자와 농민에게는 어떠한 시간도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몇 달 안에 하나의 헌법을 마지막 글자까지 모두 이루어내기를 기대할 뿐…….
“독단성”! 이 비난 속에는 부르조아지에 대한 비열한 굴종과 대단히 어리석은 현학스러움이 얼마나 깊게 담겨 있나 한번 상상해 보라. 철저히 부르조아적이고 대부분 반동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의 법률가가 수백 년 혹은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을 억압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의 손발을 묶기 위해, 노동하는 평범한 모든 인민 앞에 수천 개의 방해물과 장애물을 놓기 위해 대단히 상세한 규칙과 법규를 작성하고, 수십, 수백 권에 달하는 법률과 법률 해설서를 작성하고 있는데도 부르조아적 자유주의자들과 카우츠키 씨는 거기에서 아무런 “독단성”도 보지 못한다! 그것이 “법”이고 “질서”이다!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기 위한 방법들이 모두 고안되었고 저술되었다. 수천 명의 법률가와 관료들 (카우츠키 씨는 이들에 대해 전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바로 마르크스가 관료적인 기구를 분쇄시키는 것에 엄청난 의의를 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노동자와 일반 농민이 이러한 법률들의 가시 돋힌 철조망을 결코 끊어낼 수 없도록 법률을 해석하는 방법을 아는 법률가와 관료들이 있다. 이것이 부르조아지 측에서는 “독단성”이 아니고, 그것이 인민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 더럽고 이기적인 착취자들의 독재가 아니라니.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더욱 더 순수해지는 “순수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땀 흘리고 착취당하는 계급들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해 국경 너머 자신들의 형제들과 단절되었으면서도 사상 최초로 그들 자신의 소비에트를 세우고, 부르조아지가 습관처럼 억압ㆍ마멸ㆍ마비시켰던 그런 인민들을 정치적 건설 사업에 불러들였으며,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스스로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격렬한 투쟁이 한창일 때에, 내전의 불길 속에서, 착취자 없는 국가의 근본 원칙들의 골자를 마련하기 시작한 지금, 모든 부르조아 악당들, 모든 흡혈귀 패거리들이 “독단성”에 대해 짖어대고 있고 카우츠키는 그들에 호응한다!
• 국제주의란 무엇인가
“사회주의는 제민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한다. 따라서 나는 우리나라가 침공당하면 내 자신을 지키겠다”고 말하는 프랑스인, 독일인, 이탈리아인은 사회주의와 국제주의를 배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오직 자신의 나라밖에 모르며 그는 결국 “자신의”……부르조아지를 다른 그 무엇보다 상위에 올려놓으며, 그 전쟁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만들고 그의 부르조아지를 제국주의적 약탈이라는 사슬의 한 고리로 만드는 국제적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속물들과 멍청이들 그리고 무식한 시골뜨기들은 배신자 일당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적이 우리나라를 침공했다. 그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사회주의자,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자는 다르게 주장한다. 그는 “전쟁의 성격(그것이 혁명적인가 반동적인가 하는)은 공격자가 누구인가 또는 ‘적’이 누구의 나라에 머물고 있는가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것은 전쟁을 어떤 계급이 감행하고 있는가에, 그리고 이 전쟁이 어떤 정치의 연속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전쟁이 반동적 제국주의적 전쟁이라면 다시 말해 그 전쟁이 제국주의적이고 탐욕스러운, 약탈적이며 반동적인 부르조아지의 세계적인 두 진영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라면, 모든 부르조아지(아무리 약속국의 부르조아지일지라도)는 약탈의 참가자가 되는 것이며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한 대변자로서의 나의 의무는 전세계적 살육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로서의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내’ 나라의 관점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왜냐하면 그것은 그 자신이 제국주의적 부르조아지의 손안에 있는 노리개일 뿐임을 깨닫지 못하는 가련하고 어리석은 쁘띠부르조아 민족주의자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준비, 선전과 가속화에 있어서의 나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국제주의의 진면목이며 국제주의자, 혁명적 노동자, 진실한 사회주의자의 의무이다. 그것이 바로 배신자 카우츠키가 잊어버린 기초인 것이다.
• 경제분석을 가장한 부르조아지에 대한 굴종
토지의 국유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가?
여기에서도 역시 카우츠키는 이론적 문제를 정식화시키지조차 못한다. 아니 설상가상으로 카우츠키가 토지의 국유화, 자치제 소유화 (즉 대토지의 지방자치정부 당국으로의 양도) 혹은 분할 문제에 관한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오래된 논쟁을 사람들이 러시아의 문헌에서 보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필사적으로 회피한다는 것이다.
대토지를 국가에 양도하고 그것을 소구획으로 나누어 토지를 거의 소유하지 못한 농민들에게 임대하는 것이 “사회주의적인 어떤 것”을 달성하는 것이라는 카우츠키의 주장은 마르크스주의를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것이다. 그것에는 사회주의적인 어떤 것도 없음을 우리는 이미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이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카우츠키의 커다란 불행은 그가 멘셰비끼들을 신임했던 데 있다. 따라서 우리 혁명이 부르조아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고집하고, 부르조아 혁명을 사회주의에로 전진시켜 나아가리라고 믿어버렸다고 볼셰비끼를 비난하면서도, 그 자신은 농업관계에 있어서 모든 봉건적 잔재를 철두철미 일소하는 데까지 자유주의적 개혁을 관철시키지 않은 채, 사회주의라는 미명 하에 그러한 개혁을 제안하는 기괴한 입장이 나타난다! 결국 카우츠키의 주장은, 멘셰비끼 조언자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부르조아 민주혁명에 대한 수미일관한 옹호가 아니라, 혁명을 두려워하는 자유주의적 부르조아지에 대한 옹호가 되고 만다.
부록Ⅰ
제헌의회에 관한 테제
1. 제헌의회 소집 요구는 혁명적 사회민주당 강령에 있어서 완전히 정당한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부르조아 공화국에서는 제헌의회가 민주주의의 최고 형태를 나타내기 때문이며 또한 예비의회를 창설함에 있어서 께렌스끼를 수반으로 하는 제국주의적 공화국은 갖가지 방법으로 선거를 조작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할 준비를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2. 혁명적 사회민주당은 제헌의회 소집을 요구하는 한편, 1917년 혁명이 시작된 이후, 줄곧 소비에트 공화국이 제헌의회를 갖춘 보통의 부르조아 공화국보다 더 고도의 민주주의 형태임을 강조하여 왔다.
3. 부르조아 체제로부터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함에 있어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있어서 (노동자, 병사, 농민 대의원회의) 소비에트 공화국은 (제헌의회로 치장된 부르조아 공화국에 비해) 훨씬 더 고도의 형태의 민주주의 제도일 뿐 아니라 사회주의에로의 가장 무난한 이행을 보증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이기도 하다.
(…)
부록 Ⅱ
국가에 관한 방더벨드의 새로운 저서
카우츠키 일파와 방더벨드 일파는 자본가계급의 지배기관으로서의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지배기관으로서의 국가 사이의 이행 단계가 바로 다름 아닌 혁명, 곧 부르조아지를 타도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국가기구를 파괴 분쇄하는 것을 의미하는 혁명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부르조아지의 독재는 반드시 하나의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로 대체돼야 한다는 것과 혁명의 “이행 단계”에 뒤이어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점진적 소멸이라는 “이행 단계”가 뒤따를 것이라는 점을 카우츠키 일파와 방더벨드 일파는 모호하게 하고 있다.
절충주의자이자 궤변론자인 방더벨드는 카우츠키보다 훨씬 더 능란하고 교묘하다. 왜냐하면 “협의의 국가로부터 광의의 국가로의 이행”이라는 문구는 혁명의 전반적인 문제점, 혁명과 개량의 모든 차이점, 심지어는 마르크스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사이의 모든 차이점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록 Ⅲ
마르크스주의와 수정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정주의의 필연성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왜 민족적 특성과 자본주의의 발전 정도의 차이보다 더 심각한 것인가?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나란히 광범위한 쁘띠부르조아지, 즉 소소유자층이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소생산에서 발생하였고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수많은 새로운 “중간층”은 자본주의이기에 필연적으로 계속하여 발생되는 것이다(자전거와 자동차 산업 등과 같은 대규모 산업의 필요성에 부응하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부품공장, 가내공업, 소규모 작업장 등). 이러한 새로운 소생산자들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위로 다시 떨어지고 있다.
쁘띠부르조아지의 세계관이 계속하여 광범위한 노동자 정당원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급진전하기 전까지는 줄곧 그랬고, 항상 그럴 것이라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왜냐하면 대다수 국민이 “완전히” 프롤레타리아트로 되는 것이 그러한 혁명을 낳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 혁명적 마르크스주의가 수정주의에 감행한 이데올로기 투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대전투의 서막에 불과하며 프롤레타리아트는 쁘띠부르조아지의 온갖 동요나 약점에서 불구하고 자신의 목표의 완전한 성공을 향해 진군하고 있는 것이다.
♠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허교진 옮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소나무,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