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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석(성균관대 사학과)교수 역사특강

  • 작성자유미정 이메일
  • 작성일2025-05-18 11:39
  • 조회190
  • [보도자료]
  • 2025-05-18

임경석(성균관대 사학과)교수 역사특강

동고송 역사특강
‘임경석 교수, 흥학관 옛터에서 김재명의 족적을 찾다’ 

4월 25일(금) 오후 3시, ‘아트스페이스흥학관’에서 
임경석(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광주의 항일혁명가 김재명을 찾는다’ 주제로 
동고송 후원 역사 특강을 하였다. 
전라도 출신 항일혁명가 김재명(1900~1930)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전남항일혁명운동 내에서 높은 위상을 가졌던 김재명을 소개한 임 교수는,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려야 되는 주제가 김재명이라는 사람인데 내가 흠모하는 황광우가 두 달쯤 전에 김재명에 대해서 얘기를 해달라고 그래요. 김재명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나이 서른에 세상을 떴기 때문에 학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이렇게 고향의 선후배 여러분들을 모시는 자리이니만큼 최선을 다해 강연하겠습니다. 김재명에 관한 1차 자료들을 일단 조사하고 분석한 결과를 오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략) 김재명은 1928년 여름 검거가 되었구요. 서대문 형무소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폐병에 걸렸습니다. 도저히 회복될 전망이 없어 보석으로 출소했네요. 당시 김재명의 상태를 다룬 기사를 봅시다. “김재명은 정신을 일코 피골이 상접하얏스며 대소변을 바더내는 중이라 하며….” 마침내 1930년 1월 31일 사망합니다. 때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전조선학생독립운동으로 퍼져나가던 절정기였습니다. 김재명의 자리를 이어받은 장석천이 장재성과 함께 거사를 벌여나갔습니다. 저도 이번 강연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좀 더 긴 호흡으로 보아야 하겠구나, 주체 세력의 형성 과정을 더 넓은 시야에서 보아야 하겠구나 그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라는 말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만 30살이 되기도 전에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뜬 김재명의 일대기를 강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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