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여름이 온다 / 장 석
- [보도자료]
- 2024-06-17
<여름이 온다> 장 석
정어리 떼와 더불어
여름 한철 살았으면
훌훌 벗어버리고 바다에 들어
윤무로 만드는 둥근 집 안으로 가
나도 손잡고 춤추며 푸르러지리라
천 마리가 모여서 된 색시와 짝을 이루어
빛나는 비린내 속에 몸을 섞으며
바다숲으로 찾아온 햇살 아래서
희고 푸른 그녀 몸의 비늘로 다듬어주리라
한여름을
필사의 속도로 도망치리라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엄습하는 공포를 피해
함께하는 두려움이 만드는
사랑의 힘으로
귤 껍데기처럼
단호한 심장으로
굳은 연대의 악수처럼 단단한 몸으로
저 산호초를 돌아서
한 입 차이로 뒤쫓는 공포를 향해
불꽃을 일으키며 일제히 돌진하리라
여름 바다에 가면
비등하는 표층 아래
우리들이 함께 그어갔던
끊이지 않는 긴 선을 찾아라
은빛으로 적었던
두려움과 사랑의 기록을
가을이 오면
파도 마루에 인광 빛나면
순은과 청금으로 치장한 여인들이
이윽고 내어놓은 알들의 밭에서
늙어버린 다리 사이로
나도 거품을 내어야 하는가
지켜주지도 못할
이어가지도 못할 인연은
시간의 물결에 흩어지리라
가을이 오면
가을 바다에 노을 가득하면
장석 시집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