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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12월 지혜학교축제참관기

  • 작성자유미정 이메일
  • 작성일2024-01-01 10:46
  • 조회240
  • [보도자료]
  • 2024-01-01

2023년12월 지혜학교축제참관기

지혜 축제 참관기

  2023년 지혜 축제에 나를 초대한 이는 신해준 학생이었다. 늘 보아도 믿음직한 신해준은 마치 약속어음이나 받아 놓은 것처럼 나에게 12월 16일 지혜학교에 올 것과 학생들의 인문학 연구 발표를 참관할 것을 힘주어 당부하였다. 

 나는 지혜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험적 교육을 사랑한다. 이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주류의 가치관을 거절하고, 이 실험적 교육에 뛰어든 학생과 학부모 모두의 결단을 존경한다. 체제의 변방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프고 외로운 선택인가? 비주류로 살아야 하는 자가 겪는 무력감,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불안감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신해준의 초대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고, 세속의 혼례가 몰려드는 날이었다. 꼭 참석해야 할 지인의 결혼식이 광산구에서 있었건만 나는 예식장을 외면하고 지혜학교를 향해 서둘렀다. 만사를 제치고 ‘두 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차를 몰았으나 약속한 시각에서 10분이 지나버렸다. 눈이 한 점 두 점 떨어지고 있었다. 세상에, 10분 늦었다고 지혜학교는 나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런 꼴을 두고 문전박대(門前薄待)라고 하던가? 

 연극이 끝나고서야 나는 델포이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연극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몰려드는 학부모들로 강당 델포이의 현장은 번잡했다. 

  영화는 막이 올랐다. 제목은 <주인을 찾습니다>였다. 하예림 학생이 주연으로 열연한 이 영화는 심상치 않았다. 영상 처리도 군더더기가 없었고, 배경음악도 제법이었다. 고독한 사춘의 여학생들이 서로 만나 마음의 소통을 이루어내는 영화는 내가 그 의미를 충분히 씹기도 전에 자막을 내렸다. 2022년 축제에서는 연극 <방황하는 별들>이 나의 뒤통수를 때리더니만, 2023년 축제에서는 영화 <주인을 찾습니다>가 나의 입을 쩍 벌리게 만들었다. 어떻게 10대 아이들의 손에서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독립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거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혜의 밖에서 지혜의 안으로 달려온 것은 맞다. 그런데 지혜의 안이 이렇게 경이로운 곳이었던 줄 나는 몰랐다. 이어지는 인문학 발표도 모두가 환상적이었다. 어떻게 고교생이 조지 오웰의 『1984』를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공 지능을 고찰한 고현지 학생도 인상적이었다. 발표하기를 부끄러워하는 그 모습이 역설적으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프랑스혁명 당시의 정치를 풍자한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작품을 소개하고, 한국의 정치현실을 해부한, 이름 모를 학생의 발표는 매우 독창적이었다. 한마디로 완벽한 연구 발표였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과연 이곳이 지혜의 축제 현장이었던가? 청소년들의 두뇌와 가슴에 내재된 창의적 역량이 이렇게 높았더란 말이냐? 교육계에 종사하는 분들 모두가 이곳 지혜학교의 델포이 강당에 와서 창조의 현장을 목격하면 얼마나 좋을까....

  지혜의 현장을 만끽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지혜의 축제를 참관한 이의 소감문을 쓰는 것이 아닐까 다짐하였다. 

  해는 지고 지혜의 터에도 어둠이 내렸다. 눈은 줄곧 내리고 있었고, 녹은 눈으로 운동장은 질척거렸다. 운동장엔 천막이 설치되었고, 군데군데 난로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박세천 선생은 그 질척거리는 운동장을 양말도 신지 않은 발로 걸어 다녔다. 맨발로 다닌 소크라테스를 흉내내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2023년 12월 19일

  황광우 작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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